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사마리아 방문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그들에게 보냈다. 베드로와 요한은 내려가서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였다. 그들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뿐,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에게도 성령께서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도들이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 (사도8,14-17)
이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왔다고 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에 의해 보내졌다고 표현한다. 이는 두 사람이 사도단에 의해 공적으로 파견되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수위권을 받아 교회 수장(首長)으로서 교회를 통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수위권은 사도단 위에 군림하는 절대적 권한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일인 집권체제에서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식의 권한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만일 그랬다면 베드로가 사도단으로부터 굳이 보냄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수위권과 사도단의 권한 사이에 역학적 긴장관계를 보게 된다. 수위권은 베드로 한 사람에게 주어진 권한이고, 사도단의 권한은 집단에게 주어진 권한인데, 이 둘이 초대교회 통치 안에서 긴장어린 협력관계를 낳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사도단이 왜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파견했을까? 성경 본문은 명확한 대답을 주지 않지만 문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이 파견된 시점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난 후다.(14절) 사마리아 사람들이 누구인가? 핏줄로는 유다인들의 혼혈 동족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이방인들보다 더 싫은 존재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유다인은 사마리아인과 접촉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 사도들 처지에서 그냥 있을 수 없었다. 그대로 허락해서 교회 안에 들어오게 할 것인지, 아니면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인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단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파견한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의 역활은 건물공사에 비교해서 말한다면 준공검사라 할 수 있겠다. 사도들은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의 진정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교회 안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할 경우, 그들의 신앙이 이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사도들은 지역 교회들의 신앙이 이단으로 빠지지 않도록 점검하고, 예수님으로부터 내려온 정통 신앙 안에서 신자들을 육성할 책임이 있다. 그렇기에 복음이 팔레스타인 바깥 지역인 시리아 안티오키아에 전해졌을 때도, 그곳에 대표들을 파견하여 그들의 신앙을 점검하고 신앙의 정통성을 보존하려 한다.
계속-
베드로의 방문이 사마리아인들에게 주는 의미
사도단의 으뜸인 베드로가 사마리아인들에게 온 것은 그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큰 지도자요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가 자기들과 함께 머문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와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일등 국민이라 자처하는 유다인들 앞에서 언제나 이등 국민 또는 열등 국민으로 차별받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그들과 함께함으로써, 사마리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가져다주는 일치와 평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베드로가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했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기들과 유다인들 사이에 깊게 패었던 골이 다 메워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되었음을 깊이 느꼈다. 마치 200년 전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자가 된 이들이 양반과 상놈이란 신분의 차이에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_끝_
출처: 야곱의 우물 / 2011년 09월호 / 초대교회 삶과 영성
출처: 야곱의 우물 2011년 09월호 / 초대교회의 삶과 영성 /
송봉모 예수회 신부.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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