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총장신부님과 부총장신부님이 아프리카에 사목방문을 가시는 길에 이탈리아에 잠깐 들리셨을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막 로마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던 탓에 이탈리아말도 서툴렀었고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은 물론이고 아직 로마도 낯설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먼 길 오신 두 분을 그냥 보내드리기가 너무 섭섭해서 나는 두 분을 모시고 무조건 나폴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사전에 숙소를 예약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가볼만한 곳을 생각해 두었던 것도 아니라서 우선은 나폴리 시내에 숙소를 잡고 그 곳에서 가까운 곳들을 다녀보기로 결정했다. 나폴리 기차역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찾아갔더니 호텔보다 저렴한 민박을 추천해 주었다. 나폴리 여행에 민박이라...... 그것도 괜찮을 듯해서 우리 일행은 길을 물어물어 오후 쯤 민박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관광안내소에서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다짜고짜 어떤 아줌마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지금도 알아듣기 힘든 원조 나폴리 사투리를 하물며 그때 내가 어찌 알아들었겠는가. 그나마 ‘지금 그리로 갈테니 기다리라’는 부분을 알아들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잠시 후 아줌마가 와서 집 안을 소개시켜 주면서 내일 아침 9시 경에 ‘뽈리찌아polizia’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신부님, 내일 아침 9시쯤 경찰이 올 거라는데요?”
“경찰이? 난데없이 경찰이 왜 와?”
“아마 우리가 기차역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소개를 받았기 때문에 나폴리 경찰이 와서 여권 같은 거 간단히 검사하고, 불편사항 없느냐 물어보고, 뭐 그러려고 오겠지요.”
다음 날 아침, 버스를 타고 아말피 해안까지 돌아보려면 서둘러서 나가야 했는데도 우리 일행은 경찰이 온다고 한 시간까지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전날 밤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인지 우리들 모두는 기다리는 동안 깜박 잠이 들었다. 9시가 조금 넘었을까, 어떤 사람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아무리 경찰이라도 노크도 없이 문을 막 따고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하는 의구심이 분명히 들었다. 그런데 정작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우리가 지루하게 기다리던 경찰이 아니라 앞치마를 두른 청소 아줌마였다.
바로 그 순간! 이탈리아어 단어 하나가 번개처럼 내 뇌리를 스쳐갔다. ‘뿔리찌아pulizia’! 하느님 맙소사!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어제 오후 그 나폴리 아줌마가 한 말은 아침 9시 경에 경찰 (뽈리찌아)이 온다는 말이 아니라 아침 9시에 청소 (뿔리찌아)하러 온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한 시간 가량 무료하게 경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셨던 총장신부님과 부총장신부님께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 드릴까. 나는 짧게 말씀드리기로 했다.
“신부님, 경찰들...... 안 올 모양인데 그냥 나가시죠.”
대림시기가 시작되었다. 대림시기는 종말론적으로는 장차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이자, 전례적으로는 아기 예수의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오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구원은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 동안의 애타는 기다림이 현실이 되는 바로 그 순간 완성될 것이다.
이미 2천 년 전에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신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 (재림再臨)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태오 복음서는 주님의 재림을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영광에 싸여오실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복음서에 쓰여 있는 글자 그대로 주님께서는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인가? 만약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 대림시기 동안 하늘에 떠있는 뜬구름들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대림시기는 이렇게 뜬구름만 바라보는 시기가 아니다. 주님의 재림을 물리적인 공간 이동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보다 영성적으로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주님의 구원 역사는 당신께서 인간의 옷을 입고 친히 인간의 역사에 투신함으로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당신의 구원의 역사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 앞서 말한 대로 구원의 완성은 그 분께서 ‘다시 오실 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마태25,13) 그 분이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항상 깨어있는’(마태25,13) 것뿐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야만 우리가 깨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깨어있어야만 그 분께서 다시 오시고 우리의 구원은 완성된다. 잠들어 있는 우리들이 깨어나는 것,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 그리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은 서로 떨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대림시기에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애타게 기다려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스스로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것이다. 깊은 잠에 취해 있는 자가 움직일 수는 없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깨어나게 하는가? ‘이미’ 오신 주님께서 남겨 주신 말씀이 우리를 깨어나게 하고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죽은 것처럼 깊이 잠들어 있는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과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들 안에서 살아나게 하여 우리들의 신앙적으로 또한 영성적으로 깨어나야 하는 때이다. 다시 한 번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내 삶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하는 때이다.
멍하니 하늘에 떠 있는 뜬구름을 바라보며 주님이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 경찰을 기다리는 일 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애초에 오지 않을 경찰은 당신이 잠에서 깨어나서 직접 전화를 걸어 부르지 않는 한 오지 않는다. 흐리멍텅한 눈으로 뜬구름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구름을 타고 오시는 주님도 없다.
그새 몇 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늦게나마 총장신부님과 부총장신부님께 고생시켜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신부님! 그때 경찰이 안와서 서운하셨지요? 언제 다시 나폴리에 한 번 같이 가시지요. 그때는 꼭 경찰을 불러드리겠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항상 깨어 있어라.”(마태25,13)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강론 말씀 (가나다순) > 최 강 신부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사랑은 아무나 하나 (0) | 2012.01.30 |
---|---|
베고니아가 들려 준 이야기 (0) | 2012.01.30 |
형제적 공동생활 (0) | 2012.01.30 |
콩깍지 부부 (0) | 2012.01.30 |
혹세무민 (0) | 2012.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