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아마 6살이나 7살 때의 기억인 것 같다. 내가 살던 동네에 내 또래라고는 몹시 사나웠던 여자 쌍둥이 자매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는 줄 곧 형을 따라다니며 놀았다. 그 날도 해질녘이 가까워올 때까지 형과 형의 친구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에 함께 끼어 놀고 있었는데 저 앞산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더니 잠시 후에는 벌겋게 불이 타올랐다.
형들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주저하지 않고 동네 파출소로 뛰어가 불이 났다고 신고를 했다. 파출소의 경찰관 아저씨는 다소 귀찮은 표정으로 ‘불이 얼마나 크게 났는지 너희들이 뛰어가서 확인을 하고 보고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관 아저씨로부터 명령을 받은 형들은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불 타 입술을 꼭 깨문 채로 불이 난 앞산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맨 날 동네 어귀에서 자기들끼리 임무를 정하고 놀았던 경찰놀이와는 차원이 다른 실제 상황이었던 것이다.
형도 내게 ‘너는 먼저 집에 들어가라’고 짧게 외친 후 임무 수행을 위해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 역시 진짜 경찰관 아저씨가 명령을 내린 실제 상황에서 모든 공을 형들에게 뺏길 수만은 없었다. 산불로부터 우리 조국 금수강산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나도 죽어라 형들을 따라 뛰었다. 하지만 파출소에서 불이 난 앞산까지의 거리가 꽤 됐을 뿐더러 두 살, 세 살씩 많은 형들과 함께 뛰는 것이 내게는 퍽 벅찼던 모양이다. 내가 막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마구 주위로 번져가는 상황을 볼 수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때 이미 불길 가까운 곳까지 뛰어갔던 형들은 반환점을 돌아 다시 파출소로 뛰어가고 있었다.
저만치 앞서 뛰어가는 형들과 나의 거리는 점점 벌어져갔다. 형들 사이에서는 다들 ‘내가 먼저 파출소에 도착해서 경찰관 아저씨에게 상황을 직접 보고하는 영예를 차지하겠다’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뒤쳐지는 나를 챙기고 어쩌고 할 겨를도 없이 오로지 앞만 보고 뛰게 된 것이다. 날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살짝 무섭기도 하고 또 경찰관 아저씨에게 화재 상황을 직접 보고할 희망이 이미 깨진 상황에서 형들에게 뒤쳐져 뛰고 있는 현실이 너무 서러운 나머지 내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체격도 좋았을 뿐더러 타고 난 운동신경을 자랑하던 형은 역시 다른 친구들보다 앞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뒤에 처진 내가 영 신경이 쓰였던지 형은 연신 고개를 돌려 내가 잘 따라 오고 있나 확인을 하면서 뛰고 있었다. 형과 나와의 간격이 점점 벌어질수록 형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는 빈도도 잦아졌고 내가 팔목을 들어 서러운 눈물을 훔치는 횟수도 늘어갔다. 이제 산길이 끝나고 동네 입구에 거의 다다르게 되는 언덕을 막 넘으려는 순간 갑자기 형이 멈춰서더니 뒤로 돌아 나를 향해 뛰어 왔다. 형이 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소리쳤다.
“이 새끼야, 그러니까 내가 먼저 집에 들어가라고 했잖아! 왜 따라와서 생고생이야?”
그 날 형은 언덕을 혼자 넘지 않았다. 만약 형이 언덕을 넘어 갔으면 파출소에 가서 경찰관 아저씨에게 가장 먼저 화재 상황을 보고할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언덕을 넘어가면 고개를 돌려도 저 멀리 뒤쳐진 동생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친구들에 앞서 달리고 있던 형은 바로 그 언덕 앞에서 달리는 것은 멈추고 뒤를 향해, 동생을 향해 달려왔다. 우리 둘은 그렇게 손을 잡고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우리가 동네 어귀에 도착했을 무렵 소방차가 불이 난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어느 수녀원의 피정을 도와주기 위해 갔을 때 ‘형제적 공동생활’을 설명하면서 내가 수녀님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수도회와 사도생활단을 구성하는 핵심요소 중 하나가 바로 회원들의 ‘형제적 공동생활’이다. ‘공동생활’은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다. 공동생활이란 회원들이 한 지붕 밑에서 살면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나누어 먹고, 함께 나누어 입는다는 것이다.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를 똑같은 조건 아래서 해결하는 가운데 공동으로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삶의 형태이다. 하지만 이 공동생활에 ‘형제적fraternal’이라는 조건이 붙으면 문제가 달라진다. 과연 ‘형제적 공동생활’이란 무엇인가?
내게 ‘형제적 공동생활’이라는 명제가 주어지면 나는 언제나 그 날, 그 어린 시절 언덕을 혼자 넘지 않은 형님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 ‘형제적 공동생활’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그렇다. 내게 ‘형제적 공동생활’이란 언덕을 함께 넘는 것이다. 내 살아있는 체험에서 나온 ‘형제적 공동생활’은 그토록 단순하다. 손을 잡고 언덕을 함께 넘는 것! 나 혼자만의 영광을 위해 혼자서 언덕을 뛰어넘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함께 먹고, 자고, 입고 그리고 기도하는 형제들의 손을 잡고 구도의 언덕들을 함께 넘어가는 것이다.
조금 느려도 좋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형제들과 함께 걷는 길이라면.
최고가 되는 것은 과감히 포기할 수 있다.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해서 형제들과 함께 손을 잡고 넘어야 하는 일이라면.
어린 시절, 환하게 불이 밝혀진 동네를 향해 혼자서 언덕을 넘어가는 대신 나를 향해 뒤로 돌아 달려와서 내 눈물을 닦아주며 나와 함께 어두운 산길을 걸어 내려왔던 형님, 내 손을 잡고 기꺼이 맨 꼴찌로 그 언덕을 넘어 주었던 형님을 통해 나는 이렇게 살아있는 ‘형제적 공동생활’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된다. 이제는 나보다 뒤에 쳐져 있는 형제들의 손을 잡고 언덕을 함께 넘는 일이 내게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로마12,9-10)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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