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 들어간 나는
외적으로는 쾌활하고 남이 보기에는 활동적었지만
늘 나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정말 사제가 될 수 있을까?”
제단에서 미사를 집전하시는 교수신부님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매년 새사제들께서 제단에서 미사를 집전하실 때면
부러움과 함께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생활하는 신학교는 서울 대학로에 소재하고 있었다.
교문 밖만 나가면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대학로의 모습은
늘 나에게 유혹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일주일에 한번 외출을 할 수 있었다.
외출 때 나가보면 대학로에는 연인들이 그리고 친구들끼리 나와
맥주도 먹고 영화도 보고 행복한 모습이 가득찼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봉사하기 위해 신학교에 갔지만
혈기 왕성한 나이인지라 늘 묵주기도를 하면서
세상의 유혹에서 지켜주시길 기도했다.
신학교 선배에게 세상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기도 이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물었다.
그는 힘든 봉사를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꽃동네에 가기로 마음 먹었다.
꽃동네에 갔더니여러봉사 메뉴가 있었다.
어린 아기들에게 분유를 타먹이고 아기를 돌봐주는 봉사,
주방에서 식기를 닦는 설거지 봉사,
방을 청소하는 봉사 등이었다.
봉사 담당자를 뽑는데 선착순인줄 몰라 늦게 갔더니
나는 노인들이 배출한 기저귀를 빨래하고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봉사를 맡게 되었다.
맡기싫은 냄새가 온통났다.
인간의 배설물!
일명 똥기저귀 빨래를 몇일 하다보니 나에게 냄새가 배기 시작했다.
반면 어린 아기들에게 분유를 타먹이는 신학생들에게는 아기 분냄새가 났다.
그리고 그들은 남은 분유를 타서 나에게 주기도 하였다.
부러웠다. 그런데 묵주기도를 하고 나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래! 이왕 할 것 더 힘들고 냄새나고 지저분한 것 하는 것이 보람있지!
선배가 그랬잖아 힘든 봉사가 세상 유혹을 이기는 힘이 된다고!”
나는 열심히 했다.
몸살도 났고 손이 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요령과 함께 정이 들었다.
그분들에게! 안타까웠다.
치매걸린 노인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는 어르신들은 제정신일때는 늘 미안해하시고 정겨우시다가도
치매가 시작되면 다른 사람이 되었다.
수녀님이 외출하실 때가 되어 며칠 자리를 비우시면서 나에게 어르신들을 부탁하셨다.
그리고 규정대로 잘 지켜드리리고 당부하셨다.
수녀님이 떠나시고 다음날 마리아 할머니가 갑자기
“뜨거운 물좀 주셔요! 어서요! 몸이 얼어 붙는 것 같아 넘 추워!”
나는 놀라서 가보니 할머니가 벌벌 사시나무 떨 듯 떨고 계셨다.
그래서 뜨거운 물을 컵에 급히 데워 드렸다.
그것을 받자 마자 할머니는 내얼굴에 부어 버렸다.
“으악!” 난 비명을 질렀고 할머니에게 소리쳤다.
“ 아니 미쳤어요! 할머니! 이 할머니 정말 미치셨군!
그래 자식들이 이정도면 집밖에 버릴만 하지 자식만 탓할게 아니야!”
난 너무나 화가 났다.
마리아 할머니의 대소변을 다 받아 내었던 나인데.......
그러나 공든 탑을 무너뜨렸다.
수녀님은 돌아오셔서 나의 언행을 보고 받으셨다.
나는 신부님께 고백성사를 보았다.
신부님은 “누가 오른 뺨을 치면 왼빰마저 내어 놓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학사님은 왜 봉사하러 오셨나요?
그렇게 큰소리 야단친 것은 마리아 할머니 뿐 아니라 어르신 전체에게
한 소리로 다들 들으셨을 것입니다.”
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반성이기 보다 좌절이었다.
이런 내가 정말 사제가 될 자격이 있을까?
신부님은 “살아계신 분을 돕는 봉사를 하기 어려웠으니
그럼 이번에는 돌아가신 분을 위한 일을 보속으로 하여 보십시오!”
그것은 다름 아닌 시신을 염습하는 일이었다.
나는 다음날부터 염을 하는 수사님의 보조자가 되었다.
너무 무서웠다.
그러나 수사님은 염을 하면서 누워계시는 신자들과 대화를 하셨다.
좋은 말씀, 위로의 성서말씀을 해주셨다.
꽃동네에서 돌아가신 분들은 살아계실 때 버림받고 피박 받았던분들이셨다.
나는 이렇게 고백성사에서 받은 보속으로 염습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후 이 보속은 내가 사제가 되어 연령회 지도신부가 되는 계기와 경험이 되었다.
지금은 많은 선종봉사자의 스승이 된 나이지만
내가 염을 하게 된 동기는 매우 부끄러운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는 보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돌아가신 마리아 할머니께 감사드린다.
그분이 내 얼굴에 부어주신 뜨거운 물은
나의 세상에 대한 유혹을 잠재우는 장미의 가시 편태가 되었고
나의 교만을 죽이는 용광로요 참 봉사를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셨다.
그러나 뺨은 다른 쪽을 내어 드릴 수 있어도
뜨거운 물을 맞기 위해 다시 왼 빰을 대는 것은 아직도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직도 내 오른 쪽 뺨에는 화상의 상처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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