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묵상글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느님은 안 계신 것 같아."

김레지나 2011. 8. 11. 17:34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느님은 안 계신 것 같아.”

 

 

  “언니야.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하느님은 안 계신 것 같아.”

  동생이 전화 통화 중에 뜬금없이 내뱉은 말입니다.

 

  동생은 한 대학에서 계약직 교수로 지내다가 정규직을 얻지 못하고, 미국의 한 대학에 연구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박사 학위를 받은 후 3년간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 시절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면서 미국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남편이 미국으로 가게 되었어도 우리나라에 남기로 했다가, 새로 얻은 직장의 근무 조건이 여러 가지로 마음에 들지 않자 차라리 미국에서 다시 몇 년간 연구 경력을 쌓을 생각을 한 것입니다.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떠날 결정을 하게 된 이유가 되었습니다. 몇 달 전 트럭과 부딪쳤는데, 차는 폐차될 정도로 망가졌지만, 놀랍게도 동생은 크게 다친 곳은 없었습니다. 지금은 직장을 그만 두고 쉬면서 매일 물리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다행히 생활하는 데는 큰 불편이 없지만, 아직 혼자서 운전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답니다.

 

  착하고 어른스러워서 제게 영적인 친구 노릇을 해주던 동생은 늘 성체조배를 통해 하느님과 속닥거리면서 힘을 얻곤 했습니다. 하지만 급작스레 평소에 바라지도 않던 결정을 하고 출국 준비를 하면서 아주 심난했던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긴 세월을 바쳐서 쌓아 온 것들이 영영 원하는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될 것 같다고 힘들어하던 차에, ‘신앙은 마음이 약해졌을 때 생기는 뇌의 작용’이라는 말을 어디서 듣고서, 그만 하느님이 계신다는 확신을 더욱 잃어버리고 우울해졌다고 했습니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동생은 화가 날만한 일을 많이 겪었습니다. 저는 오죽이나 힘들까 싶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7월 8일에 동생과 조카가 제 집에 왔습니다. 오랫동안 헤어져있을 생각에 더욱 안쓰러워서 동생의 기운을 북돋아 줄 방법을 궁리해 보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마저 의심이 된다고 하니 무작정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바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저는 동생을 차동엽 신부님의 강의와 미사에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마침 7월 9일은 둘째 주 토요일이라, 미래사목 연구소 후원회원을 위한 미사가 있는 날이었습니다. 동생은 바빠서 차동엽 신부님의 복음묵상은 듣지 못하지만, 차신부님의 책을 읽으면 힘이 난다면서 자기 형편에는 상당액을 미래사목연구소에 후원하고 있습니다.

 

  9일 아침에 늦잠을 자려는 동생을 깨웠더니, ‘비가 많이 오는데 가지 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는 비가 갤 거야.”하고 큰소리치면서 늦지 않게 준비하라고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출발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하늘에 구멍이 난 듯 폭우가 쏟아져서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침 기말고사를 다 치룬 아들 루카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연구소에서 현양을 추진하고 있는 송해붕 세례자 요한께 아들 루카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식별할 수 있도록 전구를 청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흔쾌히 따라나서는 아들에게 남편은 “가서 엉뚱한? 말씀에 휩쓸리지 말아라.”하고 당부를 하였습니다. 아들은 신학교에 갈지 말지 한창 고민 중인데, 남편은 아들이 사제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행여 차신부님의 강의를 듣다가 말씀이라도 꽂힐까봐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자동차 타기를 무서워하는 동생과 다섯 살 조카와 고 1 아들을 태우고 1시간이 넘게 빗길을 운전하고 가자니, 바짝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게다가 내비게이션 거치대가 자꾸 유리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여러 번 위험할 뻔했습니다. 동생이 투덜댔습니다.

“언니야. 출발하기 전에 비가 그칠 거라더니, 더 쏟아지는구만. 너무 위험하다.”

제가 대답했습니다.

“조심해서 운전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큰소리 친 대로 비는 안 그쳤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느님은 계셔.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런 저런 때에 들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어쩜 잘 못 믿는 게 당연해. 증명해보일 수도 없고. 하지만 글을 쓸 때 마다 꼭 필요한 성경구절을 찾게 해주시는 건 객관적이고 확실한 표징이야. 내가 성경을 한 번도 통독한 적이 없는 엉터리 신자잖냐? 루카야. 너도 내 바로 옆에서 봤지? 엄마가 글 쓰고 나서 마무리할 말씀 주시라고 잠깐 기도하고 성경 펼쳤을 때, 금방 쓴 글에 꼭 맞는 말씀을 주셨던 거.”

루카가 대답했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옆에서 봤어. 엄마가 신기하게 꼭 맞는 말씀을 바로 찾는 거.”

“ 00신부님을 위한 똑같은 말씀을 열 번도 넘게 펼쳐보게 하신다거나, 위로가 절실히 필요할 때, 내 상황에 맞는 말씀이라는 것을 의심할 수 없는 글을 책에서 찾게 해 주신다거나.......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누가 그 일들을 내 마음에서 내 필요에 의해 일어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냐? 그건 객관적인 표징이야.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봐도 하느님은 분명히 계셔. 하느님이 계신 걸 어쩌라고.”

동생이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나한테도 지금 꼭 맞는 말씀을 한 번 주시라고 해봐. 언니한테만 말씀 주시지 말고.”

저는 장난스럽게 팔을 들어 흔들어가며 대꾸했습니다.

“너는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있어라. 이것이 내가 너한테 주는 말이다. 사랑한다. 할렐루~야. 믿쓥니다. ”

운전하느라고 거울로 뒷좌석의 동생 표정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대꾸가 없는 것으로 보아 제 장난말에도 여전히 심난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 오늘 차신부님 강의 들을 때, 하느님께서 너한테 필요한 말씀을 전해주실 거다.”

저는 힘들어하는 동생에게 하느님께서 이번 기회를 통해 당신께서 함께 하심을 재차 확인시켜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미래사목 연구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가 거의 그쳤습니다. 그런데 차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알아보니 7,8월에 휴가철이라 미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생이 다시 큰소리로 힘주어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안 계신다니까.”

 “하하하” 루카가 웃었습니다.

저도 하느님께 심술이 잔뜩 나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렇지. 뭐. 하느님께서 매번 모든 일을 다 챙겨주셨다가는 내가 너무 교만해질 것을 아신 거지. 앞으로도 덤벙대지 말고 인간적인 노력을 다하라는 뜻이겠지.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은 바쁜 아들까지 데려오고, 어린 조카도 힘들 텐데, 우리 율리아 미국 가기 전에 꼭 한 번 차신부님 강의를 가까이서 듣게 하고 싶었는데....앞으로 시간도 많지 않은데... 이게 뭐람. 도대체 나 혼자 무슨 말로 위로를 해주란 말이야. 출발하기 전에 연구소에 전화해서 알아 볼 생각이 들게 해주셨거나 후원회 소식지를 꼼꼼히 보게 해주셨거나.. 뭐.. 그런 영감을 미리 주셨어야지.... 하느님도 참.’

  저는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표징들을 잔뜩 체험했던지라, 하루 허탕 치게 되었다고 해서 하느님이 안 계신 것 같다는 동생의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속이 상해서 말했습니다.

“나도 후원회 미사에 다시는 안 와. 앞으로 안 올 거야! 에잇!”

 

  어영부영 하느님께 탓을 돌리고 싶어도 미리 연구소에 전화해보지 않은 제 불찰이 분명한 지라, 동생과 아들과 조카에게 몹시 미안했습니다. 다른 일정이라도 잡아야겠다 싶어서 연구소 문 앞에 잠시 차를 세워두고 어디로 갈까 의논했습니다. 동생과 어린 조카, 고등학생 아들, 연령대가 다 달라서 갈 곳을 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던 길에 63빌딩 있던데, 아이맥스 영화라도 보러 갈까? 토마스한테 수족관 보여줄까? 루카 대학 탐방 숙제를 미리 해볼까? 교보문고에 가볼까? 여기까지 왔으니 강화도에 가볼까?”

  강화도라는 말에 국사를 아주 좋아하는 루카가 반가워했습니다.

  “여기서 강화도가 가까워? 초지진이라는 곳도 있는데.”

  “뭐? 초지진?”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보았더니, 그곳에서 다시 40분을 가야하는 곳입니다.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아서 망설였습니다.

  그때 한 부부가 연구소 입구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우리처럼 후원회 미사가 있는 줄 알고 오신 것 같았습니다. 마침 잘 됐다 싶어서 차 창문을 열고 물었습니다.

  “혹시 이 근처에 가볼만한 곳이 있나요?”

  “강화도에 있는 갑곶 성지에 가보세요. ‘고’에 ‘지읒 받침’이에요. 천주교 신자라면 가봐야지요. 기억에 남을 거예요.”

  “예. 고맙습니다.”

동생이 말했습니다.

 “나는 성지같은 곳 싫은데...”

내비게이션으로 ‘갑곶 성지’를 검색했는데,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갑곶 성지가 안 나오네. 그럼 어디 가지? 코엑스몰에 갈까?”

  “언니 마음대로 정해.”

  “서울이야 언제든 마음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고, 주차하기도 힘들 테고..... 루카는 강화도 유적지 둘러보는 걸 좋아할 것 같은데.....강화도는 언제 따로 가기 힘드니까, 강화도에 가 보자. 어때? 율리아나 토마스는 재미없겠지만....그냥 드라이브한다 생각해라.”

 

 

  비가 그치니 습하고 더웠습니다. 강화도의 초지진을 돌아본 후 다른 유적지들도 돌아볼 수 있는 묶음 티켓을 할인 받아 사서 유적지를 돌아보았습니다. 루카는 신이 나서 저와 동생에게 국사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고려 유적지와 박물관까지 돌아본 후,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을 찾던 중에 우연히, ‘갑곶 순교성지’라는 안내판이 크게 눈에 띄었습니다.

 “갑곶 성지가 여기 있네. ‘순교성지’라고 검색해야 했나? 입구까지 왔는데 안 갈 수는 없지. 잠깐만 들어갔다 오자.”

동생이 말했습니다.

 “결국 왔네.”

 

  기도하는 곳이니 침묵하라는 안내글을 읽으며 성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갑곶 성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세 분의 순교자가 모셔진 곳이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세 분의 순교 성인 묘소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더우니까 짧게 기도하고 가자. ”

제가 한 가운데, 제 왼쪽에 율리아, 오른쪽에 루카가 나란히 장궤하고 앉아서 앞에 적힌 삼위비 기도문을 읽었습니다.

 

 "늘 품어 안으시는 주님,

   갈 길을 찾으러 온 저에게, 가야할 길을 알려주소서. 

 

   목적지가 아니라, 길이라 하신 말씀을 따라

   제 시선을 결과에서 과정으로 돌리게 해주소서. 

 

  박상손, 우윤집, 최순복 3위가 걸어갔던 순교의 여정이

   주님께  맡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길이었듯이

   제가 붙잡고자 했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겨두고 가게 해주소서.

   맡기고 나서 생기는 미련마저도 이곳에 남겨두고 가게 해주소서."

 

  ‘아, 하느님께서 율리아에게 이 말씀을 하고 싶으셨구나.’하는 확신이 들면서 눈물이 나서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율리아야. 눈물 나서 못 읽겠다. 니가 나머지 읽어라.”하고 동생을 보니, 동생도 울고 있었습니다. 저와 동생이 기도문을 더 이상 읽지 못하자, 루카가 남은 부분을 읽어주었습니다.

 

  “주님께 맡겨둔 일이 어떻게 흘러가든지

    그것이 끝이 아니라 소중한 과정임을 믿게 해주시고,

    속단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소서.

    또한, 그것이 주님께서 저희에게 마련해주시는

    최선의 길임을 받아들이게 해주소서.

 

   느낌표를 원했던 저희를 꾸짖어 주시고,

    물음표의 십자가를 지고, 안고 가게 해주소서.

    아니, 생기게 될 물음표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지혜를 갖게 해주소서.

 

   고요한 곳에 오면 더욱 커지는 제 안의 소란함을 죽여주시고,

    이곳 순교자들처럼 침묵하게 해주소서.

 

   마침내 이 순례를 통하여,

    저희의 영역에 주님을 모시려 했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당신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저희 마음을 변화시켜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삼위비 기도문 옆에는 세분의 순교자께서 남기셨을 법한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 ………… ) 쏟아지는 걱정과 의문들은, 우리가 그 배로 가야 할 이유보다, 그 배로 가면 안 될 이유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는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 일로 우리는 결국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목이 잘려 죽임 당했습니다. 게다가 천주학을 믿지 말라는 경고용으로, 인적이 붐볐던 이곳 진해 나루터 주변에, 우리의 잘린 목이 긴 장대에 꽂혔습니다.

   우리를 보러 오신 여러분, 우리는 두렵습니다.

어차피 죽은 마당에 뭐가 두렵겠습니까만, 그들의 의도대로 여러분들이 우리를 보고 혹시라도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하느님을 버리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 ………… )

   마지막 당부가 있다면, 우리가 있는 이곳에 여러분들의 망설임과, 고집, 잣대, 그리고 섣부른 판단을 묻고 가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을 훨씬 뛰어넘어 가슴속에 피어오르기 때문에, 이겨낼 도리가 없습니다.

   그 망설임은, 지니고 가봤자 별로 도움이 못 될 것입니다.

갑곶성지 아무데나 묻고 가셨다가, 나중에 또 오실 때마다 열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성지에 가득한 거룩한 기운이, 기도문 한 구절 한 구절이, 여러 해 애쓴 보람도 없이 원하는 직장을 얻지 못하고, 결과를 알 수도 없는 길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동생에게, 노력하는 과정이 소중한 것임을, 주님께서는 늘 최선의 길을 마련해주시는 분이심을 가슴 깊이 일깨워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십자가가 너무 크다고 느낄 때, 너무 고통스러워서 주님이 안 계신 것 같을 때,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라는 당부임이 분명했습니다.

 

  성지 안으로 더 들어가 보니 물음표를 붙여놓은 십자가가 보였습니다. 그 십자가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말 그대로 모양이 십자 모양이기에 붙여진 이름이지만, 우리가 싫어서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물음표 모양 아닐까 싶기에 십자가 위에 물음표를 붙여놓았습니다.

  나에게 왜?

  세상에 왜 이런 일이?

  하필이면 왜 우리 아이들에게?

  왜 이 시기에?

  왜 우리들에게?

  도대체 왜?

  굳이 이런 방법이어야 했을까?

  언제까지?

  얼마나 더?

성지에 오신 많은 분들이 침묵 속에 그 물음표 십자가를 다시 끌어안고 가시기를 기도합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물음표)를 지고 따라야 한다.(루카 9.23)”

 

  위로의 주님상과 닫힌 문 조형물도 있었는데, 주님은 언제나 팔을 벌리고 우리를 위로해주고 계시지만,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열고 걸어 나오지 않으면 그 위로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또, 십자가의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신비스러운 세 쌍둥이 은행나무와 골라서 져볼 수 있는 다양한 십자가들과 시계바늘을 없앤 시계 등이 설치되어 있었고, 십자가의 길은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님을, 무의미한 길이 아님을 호소력 있게 전하고 있었습니다.

 

  성지 전체가 온통 주님께서 동생에게 주시는 길고 자상한 위로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메시지 모두를 동생에게 기도응답으로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갑곶 성지로 이끄신 게 분명하다면서 감격스러워했습니다.

 

  갑곶진을 잠시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모두 피곤한 것 같아서 음악도 틀지 않고 운전했습니다. 고속도로가 끝나갈 무렵, 차가 많이 막혀서 거의 멎어있다시피 했습니다. 저는 그날 있었던 일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동생이 하느님이 안 계신다고 투덜대던 때부터 써야지, 그럼 제목은 뭘로 할까? 동생이 이런 저런 상황에서 있었는데, 갑곶 성지에 우연히 들르게 되었다고 하고 성지의 말씀들을 죽 적어놓을까?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한데, 사람들은 우연의 일치라고 할 테고, 그 강렬한 느낌을 전달할 길이 없겠는 걸. 마지막에는 뭐라고 쓸까?’

 

  운전석 거울로 자다 깬 동생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심심하냐? 그럼 복음묵상 테잎 들을래?”

저는 여러 개의 테잎 중에서 아무 거나 하나를 골라서 오디오에 넣었습니다.

차가 막힌 탓에 자동차 엔진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차동엽 신부님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흘러 나왔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주님, 헛똑똑한 저희는 곧잘 묻곤 하지요. “주님, 그 때 그 일이 정말 기적이었습니까? 아니면 제 착각이었나요?”

 주님, 배은망덕한 저희는 제법 물었었지요. “주님, 그 때 그 일이 정말 기도응답이었습니 까? 아니면 우연이었나요?”

  주님, 저희로 하여금 주님의 은혜를 허투루 여기는 죄를 짓지 않게 하소서. 아멘!

            (차동엽 신부의 ‘신나는’ 복음 묵상, 가해 성령 강림 대축일 2011. 6.12일 소책자 p.53)

 

  차 안에 있던 여러 개의 복음묵상 테잎들 중에, 그 많고 많은 내용들 중에, 어쩌면 그 순간에 딱 그 말씀을 듣게 되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표징임이 분명해서 테잎을 끄고 씨익 웃었습니다.

  “율리아야. 정말 놀랍다. 하느님께서 마지막 마무리까지 확실하게 해주시네. 너한테 딱 맞는 말씀만 주신다. 나도 글의 마지막 부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

  “그러네. 예전에 하느님 목소리 듣고, 성령체험하고, 기도 들어주셔서 기적이라고 감사했던 적도 많았었는데, 하느님 안 계신다고 했으니.”

  “이 말씀을 끝에 적으면 되겠다. 하느님은 정말 끝장을 보시는 분이시라니까. 오늘 우리를 갑곶 성지로 이끈 것은 주님이시고, 성지의 말씀들 통째로 다 율리아 너한테 주는 위로라는 것을 의심하지 말라고 분명히 알려주시는 거지. 하느님은 늘 그런 식이셔. 우리들이 묻기는 잘 하지만 기껏 답을 주셔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답을 주실 때는 안전장치를 겹겹이 만들어 주시지. 하느님께서는 갑곶성지로 불러서 너를 위로해주고 싶으셨던 거지. 그래서 강화도 가까운 연구소까지 부르실 방법을 찾다가 후원회 미사 있는 날 맞춰서 너를 우리 집에 오게 하셨고, 인적 드문 연구소 마당인데도 갑곶 성지를 추천받게 그 부부를 만날 수 있도록 타이밍을 딱 맞추셨고, 그래도 불안하셔서 강화도 유적지 이름까지 훤히 알고 있는 루카를 데리고 가게 하셨고,.. 루카 아니었으면 강화도 안 갔을 거 아니냐?..... 또 기껏 불러다 말씀을 주셨는데, 우연이라고 안 믿을까봐 복음묵상 테잎을 통해서 확인시켜주신 거야. 또 차신부님 말씀은 내 글을 읽게 될 사람들한테도 주는 표징이기도 하고. .....하느님께서는 가끔은 지나치게 친절하시다니까. 하느님을 우리가 볼 수 없으니까 망정이지 곁에 계셨으면 매사 꼼꼼히 챙기면서 귀가 아프게 잔소리하셨을 거야. 하하하. 그지?..... 너한테도 한 말씀 주시라고 투덜대더니, 긴 답장 받아서 좋겠다. 평생 갑곶성지의 말씀들을 곰곰이 가슴에 새기고 기억하고 살아라. 내가 사진 찍은 것들과 성지 곳곳의 말씀들을 워드로 정리해서 보내 줄게.‘

  동생이 말했습니다.

 “일부러 갑곶성지 오게 하시려고 차동엽 신부님 미사 취소된 날 오게 하셨나보다.”

  

  다음 날 저는 동생에게 신이 나서 전화했습니다.

  “율리아야. 어제 있었던 일을 글로 대충 적었어. 근데, 차신부님의 기도말씀으로 글을 맺으면 되겠다 했었는데, 뭔가 섭섭한 거야. 그래서 또 성령께 덧붙일 말씀 주시라고 기도하고 성경을 펼쳐 봤어. 너한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이 분명해. 성경 전체를 다 뒤져도 어제 일에 대해 그만큼 잘 설명하고 있는 구절은 없을 걸. 들어 봐라.”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이사 40:27~31)

 

   동생이 반가워하며 말했습니다.

   “언니야. 정말 어제 일은 하느님께서 나한테 주신 응답이 맞다. 내가 갈 길을 모르겠다고, 주님만 아시는 길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힘들기만 하다고, 내가 청한 것들 듣지도 않으신다고 투덜댔었는데, 딱 나한테 하신 말씀이네. 또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독수리처럼 새 힘을 얻으리라는 말씀 너무 좋다. 정말로 힘이 난다. 예전에 성령 세미나에서 듣고 책상앞에 붙여 놓았던 말씀이야.”

   제가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말씀을 주실 때, 반복해서 같은 말씀을 다른 경로로 여러 번 주시기도 해. 의심하지 말라고. 나도 같은 말씀을 직접 들려주시고, 어떤 수사님의 예언 안수로 일러주시고, 성경책에서 기도응답으로 찾게 해주신 적이 있어. 또 00 신부님을 위해서 10번도 넘게 펼쳤다는 성경말씀에 대한 묵상을 우연히 무지개 원리 초판에서 읽고 그 의미를 더 잘 깨닫게 되었었지. 하느님이 이렇게 우리와 함께 계시는 거, 정말 신나는 일이다. 그지?”

 

   저는 동생과 통화를 끝내고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언제나 저희를 지켜보고 계시는 아빠 하느님, 동생도 저도 앞으로 더 힘든 일을 겪어도 아빠가 안 계신 것 같다며 삐치지 않을게요. 저희가 물에 빠져 허우적댈 때마다 어김없이, 늦지 않게 손잡아 주셔서 고마워요. 위로의 주님, 언제나 밝히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주님. 동생과 제게, 그리고 저희의 체험을 접할 이들에게 근사한 답장을 한꺼번에 주신 거 맞죠? 저희 각자가 주님께서 일러주신 뜻을 제대로 알아듣고, 저희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지요? 늘 기억할게요. 주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않고 힘낼게요. 주님 짱이에요. 고맙고 고마워요.”

 

 

                                                                                2011년 7월 29일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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