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7.17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지혜12,13.16-19 로마8,26-27 마태13,24-43
"밀이냐 가라지냐?"
밀과 가라지의 비유가 심오합니다.
밀과 가라지가 선과 악이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현실입니다.
우리 안팎을 볼 때 누구나 체험하는 실존적 현실입니다.
밖의 세상 현실만 봐도 온통 가라지밭 같습니다.
우리 내면을 봐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탐욕, 악한 생각 등 부정적인 생각들입니다.
세상에 밀밭만의 순수한 유토피아 공동체도, 마음도 없습니다.
하여 죽을 때 까지 영적전쟁의 수행입니다.
끊임없이 밀 세력을 북돋우고 가라지 세력을 제압하는 수행입니다.
가라지 없는 밀밭만의 세상은 비현실적이고
있다 해도 곧 사람들은 무기력해져 스스로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도전(挑戰)과 응전(應戰) 속에 이뤄져가는 역사처럼
어느 정도의 가라지 세력들이 있어야 밀 세력들도 깨어 분발, 노력합니다.
누가 밀이고 누가 가라지냐 묻기 시작할 때 유혹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분명한 현실이지만
판단과 처리는 우리의 영역이 아닌 하느님만의 영역입니다.
좋은 씨를 뿌린 땅에 가라지들이 드러나자 종들은 주인에게 즉시 건의합니다.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바로 이게 그럴듯한 악마의 유혹입니다.
발본색원한다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범죄를 근절하지 못했습니다.
인류역사상 악의 뿌리를 뽑아버리고자 무수한 피의 혁명이 있었지만
성공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참으로 교만한, 자기 범위를 벗어난 월권행위입니다.
뽑아 버려도 줄기차게 솟아나는 악의 세력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과연 누가 밀이고 누가 가라지입니까?
내 눈에 밀이 하느님 눈에 가라지 일 수 있고
내 눈에 가라지가 하느님 눈엔 밀일 수 있습니다.
참 분별하기 힘든 게 밀과 가라지입니다.
가라지인 줄 알고 뽑았다가 밀이라면 얼마나 당황스럽겠는지요.
사람 눈은 얼마나 불완전한지요.
어떤 때는 사람들이 모두 밀 같이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모두 가라지 같이 보이니 말입니다.
사실 밀과 가라지, 선과 악, 빛과 그림자는 하나로 엉켜있어
분별은 물론 갈라내기도 불가능합니다.
밀이 있어 가라지고, 선이 있어 악이며,
빛이 있어 그림자이며, 장점이 있어 단점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단점의 악인 가라지를 제거하다가
장점의 선인 밀까지 필시 다치게 마련입니다.
또 우리의 영적현실은 고정불변의 실재가 아니라
언제든 밀이 될 수도 있고 가라지가 될 수도 있는 변화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이래서 겸손입니다.
겸손해야 제자리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있든 없든, 순경이든 역경이든,
높은 자리에 있든 낮은 자리에 있든,
늘 제자리의 수행에 충실할 때
가라지 세력도 서서히 자연스럽게 약화되어 균형을 이룹니다.
가라지 세력의 근절이 아니라
밀 세력과 가라지 세력이 적절히 균형 잡힌 삶이
바로 지혜롭고 영육으로 건강한 삶입니다.
다음 주인의 답변은 그대로 지혜롭고 인자하신 주님의 처방입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 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자비가 지혜입니다.
자비하신 주님의 참 지혜로운 처방입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공존의 사랑과 지혜가 함축된 말씀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내외적 현실입니다.
가라지 세력과 지혜로운 공존 속에
독야청청 밀 세력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알려드립니다.
사랑의 길입니다.
사랑할 때, 밀이지만 미워할 때는 가라지입니다.
사랑할 때는 모두 밀 같이 보이지만 미워할 때는 모두 가라지 같습니다.
사랑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완전하지요.
가라지 밭 같은 세상을 탓하기에 앞서
내 사랑 부족한 가라지 밭같은 마음을 탓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힘의 주인이시므로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우리를 아주 관대하게 통솔하십니다.
우리는 새벽부터 하느님의 이런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을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부단한 하느님 찬미와 감사가 공동체 밭은 물론 내 마음 밭을
사랑의 밀밭으로 만들어 줍니다.
가라지 세력이 자라지 못하고 약화되도록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입니다.
이 공동전례기도를 그쳐 버린다면 공동체는, 각자의 마음 밭은
머지않아 가라지 우거진 잡초 밭이 될 것입니다.
이래서 평생 사랑의 수행입니다.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주님 말씀대로 내버려 두는 게 사랑입니다.
방치의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눈으로 지켜보고 바라보는 사랑입니다.
자꾸 건드리고 간섭하고 참견하지 말고
주님 안에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이런 하느님의 사랑을 항구히 배우고 실천해 갈 때
하느님의 은총으로 치유되는 악이요
가라지 세력 역시 서서히 밀 세력으로 변모되는 기적이 발생합니다.
말 그대로 사랑의 기적입니다.
믿음의 길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볼 때는 모두 밀 같지만
불신의 눈으로 볼 때는 모두 가라지들 같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눈 역시 얼마나 불완전한지요.
이래서 판단을 유보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믿음을 두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신뢰할 때 사람도 신뢰합니다.
믿는 대로 밀도 되고 가라지도 되는 사람들입니다.
탓해야 할 것은 내 믿음 부족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한계를 알아
하느님께 맡길 줄 아는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안팎의 끊임없이 솟아나는 가라지들, 우리의 영역 밖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 하되 결과는 하느님께 맡겨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며 하느님께 맡기는 자가 구원입니다.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역시 믿음의 분발을 촉구하는 충격요법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모두 구원 받기를 바라십니다.
불편해 보이는 내 안의 가라지 경향들을,
밖의 불편해 보이는 가라지 세력들을
자신이 해결하려 안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후
그대로 하느님께 맡기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깊어가면서 안팎의 가라지 세력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서서히 밀 세력으로 변모되어 갈 것입니다.
희망의 길입니다.
희망의 눈으로 볼 때는 모두가 밀 같지만,
절망의 눈으로 볼 때는 모두가 가라지 같습니다.
이토록 불완전한 인간의 눈입니다.
희망 넘치는 곳이 밀 밭 같은 천국이요
희망 없는 곳이 가라지 밭 같은 절망의 지옥입니다.
수확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것은 희망 때문입니다.
우리만 하느님을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도 우리를 희망하십니다.
매일매일 희망으로 하루를 열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철 되면 피어나는 들꽃들 역시 하느님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가라지를 뽑지 말라는 것은 밀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가라지 같은 사람들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끝까지 희망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사전에 없는 낱말이 절망이며 절망보다 대죄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희망의 사람들입니다.
내 안팎의 가라지 세력들에 결코 절망해선 안 됩니다.
희망의 승리입니다.
희망하는 대로 됩니다.
세상의 보이는 것들이 아닌 보이지 않는 우리 삶의 중심,
하느님 안에 희망의 닻을 내려야
항구히 인내하며 하느님 수확의 때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희망과 더불어 하느님의 은총으로
서서히 안팎의 가라지 세력들은 밀 세력으로 변모되어 갑니다.
농사를 풀과의 전쟁이라 합니다.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우리 삶의 농사는 가라지 세력과의 전쟁입니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부족한 믿음을, 부족한 희망을 간구하십니다.
사랑과 믿음과 희망으로 성장, 성숙해 갈 때
왕성한 밀 세력으로 살 수 있고,
안팎의 가라지 세력을 흡수하여 밀 세력화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말씀의 겨자씨로 우리의 내적 성장을,
당신 성체의 누룩으로 우리의 내적 성숙을 촉진시켜 주십니다.
사랑과 믿음과 희망의 내적성장이요 내적성숙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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