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송영진 신부님

☆★☆ 빵만 보지 말고, 기적만 보지 말고 - 송영진 신부님

김레지나 2011. 5. 6. 22:07

<부활 제2주간 금요일>(2011. 5. 6. 금)(요한 6,1-15)

 

<빵만 보지 말고>

 

'리스트라' 라는 곳에서 바오로 사도가 어떤 장애자를 고쳐 주는 기적을 행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신들이 사람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내려오셨다.' 라고 하면서

바오로를 헤르메스신이라고 부르고 바르나바를 제우스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도시의 제우스 신전의 사제는

군중과 함께 두 사도에게 제물을 바치려고 했습니다(사도 14,8-18).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자기들의 선교활동의 목적을 말하면서

자기들에게 제물을 바치지 못하도록 겨우 군중을 말립니다.

 

5월 6일의 복음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요한 6,15).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피해서 혼자서 산으로 가십니다.

 

이천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종교를 찾는 사람들 중에는 성경에 나오는 군중과 같은 모습들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다닌다는 교회에 다니면 자기도 뭔가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

(실제로 그렇게 한 자리를 나누어 주는 것이 더 큰 문제인데...)

평소에는 거의 신앙생활을 하지 않다가

선거 때만 되면 열성적인 신자인 척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

대규모 사업을 성공시키고 한 번에 천여 명씩 입교시켜야만

제대로 사목을 한 것처럼 평가하는 모습들.

자기가 다니는 성당에서는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어디선가 무슨 기적이나 계시가 있었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이

결국에는 타락하고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세 가톨릭교회가 타락한 것도

먹고살기 힘들어서가 아니라 돈과 권력이 너무 많아서였습니다.

세속의 권력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가난하고 힘들 때가

그리스도교의 정신이 순수하게 살아 있는 때이고,

돈과 권력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을 때 타락하게 된다는 것은 영원한 교훈입니다.

 

복음 말씀의 빵의 기적을 보면 제자들에게는 빵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섯 개의 빵은 어떤 어린이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만일에 제자들이 오천 명이 넘는 군중을 먹일 빵을 가지고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가진 돈과 권력이 충분히 많아서 아쉬운 것이 전혀 없다면

예수님께 기도를 할 필요가 없고,

기도를 할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게 된다면,

예수님이 안 계셔도 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던 군중은

예수님의 복음은 듣지 않고 기적만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은 뒤에는

날마다 계속 그런 기적을 행하라고 강요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예수님은 보지 않고 빵만 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빵을 섬기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를 신으로 생각하고 제물을 바치려고 했던 리스트라 사람들도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듣지 않고 기적만 본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이란

빵이 아니라 그 빵을 주시는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기적을 섬기지 않고 그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들으라는 말씀은 듣지 않고 기적만 바라고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 빵만 보고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어린이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빵 다섯 개를 제자들에게(사실은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그 어린이가 과연 빵의 기적을 예상할 수 있었을까?

그걸로 기적을 행하라고 드렸을까?

또 그 어린이가 뭔가 대가를 받기를 기대하고 드린 것일까?

아닙니다. 그건 그냥 드린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잡수시라고 드렸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진정한 봉헌입니다.

 

지금 우리가 행하는 헌금과 희생과 봉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반성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인지, 예수님을 위해서인지.

만일에 예수님께서 그 빵 다섯 개를 받아서 잡수셨다면,

이야기가 많이 이상해지긴 하는데, 그 어린이는 그래도 기뻐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드린 빵을 예수님께서 잡수시는 것을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니까.

바로 그 어린이의 마음에서 기적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빵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볼 때 기적이 생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아니라 빵만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떠나가십니다.

아니, 우리가 예수님을 잃게 됩니다.

(기적은 신앙의 목적이 아니라 보조수단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