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주간 토요일>(2011. 5. 7. 토)(요한 6,16-21)
<두려움, 사랑>
5월 7일의 복음 말씀은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두려워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께서 풍랑을 가라앉히신 이야기와는 다른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모시고 배를 저어서 호수를 건너갈 때
거센 돌풍이 일어서 물이 배에 가득 차고 가라앉을 정도가 되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시고
제자들은 자기들이 다 죽게 되었다고 소리를 치면서
예수님을 깨웁니다(마르 4,35-41).
그 장면에서 제자들이 두려워한 것은 바람과 파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장면에서
제자들이 두려워한 대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물 위를 걷는 게 누구인지 몰라서 두려워했습니다.
그 장면에서는 제자들을 두렵게 한 분도 예수님이고,
겁에 질린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신 분도 예수님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 6,20)."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처음에는 두려워했습니다(루카 24,37).
그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우선 먼저 제자들을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바로 나다(루카 24,39)."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면 두려워하게 되고, 알아보면 안심하게 됩니다.
단순히 안심하는 정도가 아니라 평화와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꼭 그렇게 나타나셔야만 했을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나타나신 일은 아마도
당신이 어떤 분인지 가르치시기 위한 일종의 시청각 교육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하느님의 권능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어둠 속에서 물 위를 걷는 시커먼 그림자를 보고
유령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부활 후에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돌아가신 분이 갑자기 방 한가운데로 나타나면
누구라도 유령이라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이 그런 상황에서 두려워한 것은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두려움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을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자들을 두렵게 했던 초자연적인 현상이
사실은 스승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이 이야기의 반전입니다.
(유령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이었다는 것이 이야기의 반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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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은
죄에 물들어 있는 자신의 실체를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비천함을 깨닫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어떻든 인간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을 때부터였으니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죄의식이 두려움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분 앞에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으려면
우선 먼저 회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는 그 방법으로 '회개'가 아니라
'사랑'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18)."
다시 말해서 사랑하면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워한 것은
아직 사랑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미신의 바탕에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의 바탕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굿을 하고 제물을 바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사랑하기 때문에 기도를 하고 봉헌을 합니다.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사랑은 없고 두려움만 있다면
뭔가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만큼이나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실 사랑한다면 회개는 저절로 됩니다.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 하는 회개는 이기적이고 소극적인 신앙생활로 이어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회개가 진짜입니다.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사랑하는 그분이 계신 곳에 함께 있고 싶어서) 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두려움만 있는 그곳이 지옥이고, 사랑만 있는 그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해야 할 무서운 분이 아니라 사랑하는 애인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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