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
제자들은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면서 무서워합니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새벽에 호수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을 때
제자들이 겁에 질려서 '유령이다!' 하며 소리를 질렀던(마태 14,26) 장면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제자들은 그게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새벽에 물 위를 걸어오는 시커먼 그림자의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유령이라고 생각하고 무서워한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에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알아보긴 했는데, 돌아가신 분이 갑자기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것도 진짜로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나셨기 때문에 유령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 위를 걷는 장면에서 제자들의 두려움은 무엇인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장면에서
제자들의 두려움은 저쪽 세계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셨음을 알고 있고,
예수님은 이제 저승 세계에 속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두려움은 이승과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
저승이라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고, 그 저승 세계가 뜻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보통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탓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몸을 만져 보라고 하시기도 하고,
먹을 것을 달라고 하셔서 잡수시기도 합니다.
이것은 모두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이렇게까지 강조하시고 증명하시는 것은
부활이란 저승에 속한 일이 아니라 이승에 속한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바로 그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은 꿈이나 환상 같은 일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신 후에 저승에 가시긴 가셨는데 이승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생긴 상처가 남아 있는 그 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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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우리 자신의 부활을 너무 먼 미래의 일로만 생각합니다.
부활신앙의 힘으로 지금의 고통과 시련을 잘 참고 견디긴 하는데,
이승에서의 부활이 아니라 저승에서의 부활로,
또는 종말 때의 부활로만 생각합니다(요한 11,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무슨 상징이나 비유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글자 그대로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이 세상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겨자씨처럼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고,
아직도 더디게 자라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든 우리는 죽은 다음의 저승만 바라고 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은 다음에 천당에 가는 것은 죽은 다음의 일이고,
지금은 바로 이곳에서 천국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말의 부활은 종말 때의 일이고,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부활은 이곳에서의 부활입니다.
"지금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어떻게?"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들의 모습이 정답입니다.
사도들은 글자 그대로 엄청나게 변화된,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래서 부활을 믿게 되었고,
믿는 대로 증언했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령강림절 때, 뭘 모르는 사람들은 사도들이 술에 취했다고 비웃었습니다(사도 2,13).
그러나 사도들은 술이나 마약에 취한 것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에 사로잡혀 있었고,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변화된 사도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은 이미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하느님 나라는 저승이 아닙니다.
바로 이곳,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있는 나라입니다.
내세를 믿는 것은 기본 신앙이지만,
내세만 믿고 현세를 부정하는 태도는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저쪽 세상에 계신 유령 같은 분이 아니라
이쪽 세상, 바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계신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그 예수님을 만나서 사도들처럼 변화되어야 하는 것은
죽은 다음에 저승에서가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지금, 이곳에서입니다.
-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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