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반영억 신부님

☆ 주님 만찬 성 목요일 - 사랑은 지치지 않고 - 반영억 신부님

김레지나 2011. 4. 24. 21:48

2011년 4 21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요한 13,1-15)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시기 전날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양이나 염소를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신다. 그날 밤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과 맏배를 칠 때 문설주에 발린 양이나 염소의 피가 구원의 표지가 된다. 그리고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서둘러 먹도록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역사적인 날을 대대로 기억하며 파스카 축제를 지낸다(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에 주님의 최후 만찬을 기억하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거룩한 성찬을 거행하고 주님의 죽음을 전하라고 가르친다(2독서).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다. 그리고 성체성사의 참된 의미를 몸소 보여 주시면서 제자들에게도 종이 되어 섬기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신다(복음).

 

 

   

 

사랑은 지치지 않고

  -*반영억라파엘 감곡성당 주임신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은 가슴을 애달프게 합니다. 사랑 하는 이와의 이별은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서로 떠나기 전에 더 잘해 주려고 합니다. 저며 오는 아픔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의 헤어짐을 안타까워하시며 평소보다 더 간절히 그들에게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사랑은 어떤 생각이나 이론, 말이 아니었습니다. 구체적 행동이었습니다. 

거창하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 더러워진 발을 씻어 주시고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당신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발은 가장 더러운 부분입니다. 사랑이 큰 만큼 그곳을 닦아주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더러운 곳을 깨끗이 씻어주는 구체적 행위입니다.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씻어주는 것, 닦아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서 사랑을 하겠다고 하면 그는 평생 사랑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정체를 파악하고 난 뒤에 하느님을 믿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결국 하느님을 섬기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느님의 정체를 다 파악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면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이 깊어집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13,15)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언행일치의 삶으로 모범을 보여주셨으니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다 알아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안 만큼만이라도 실천하면 복이 옵니다. 그리고 더 깊이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알았다면 아는 바를 미루지 말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민첩하게, 그리고 후회없이!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고 하셨습니다. 바로 허리를 굽혀 발을 씻어주는 모습에서 그 일치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바닥으로 내려오심은 곧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행하는 봉사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닦는 행위는 용서와 자비를 드러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더러운 발뿐이 아니라 더 추악한 죄를 씻어주십니다. 발을 내밀기도 전에 먼저 물과 수건을 준비하셨습니다. 

 

마리아가 순 나르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붓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리며 사랑과 존경을 표현 하였는데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그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하늘같은 스승이 제자들의 발치로 내려 오셨고 그분은 용서와 자비, 사랑과 봉사의 행위가 계속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성체성사를 설정해 주시고 성체 성사를 통하여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주십니다. 성체는 당신의 살과 피를 몸소 내어 주시는 사랑 덩어리입니다. 그 사랑을 먹는 사람은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으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성체성사로 우리에게 영적인 양식이 되어 우리를 풍요케 하십니다.

 

그리고 성체성사를 비롯하여 다른 성사와 더불어 은총의 전달을 위해 성품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사제는 주님의 도구입니다. 당신의 살가운 사랑의 전달을 위해 사제를 선택하셨습니다.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성격의 소유자를 뽑아 당신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서 일을 하시기에 하느님의 능력이 더 간절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성체성사와 더불어 성품성사가 제정된 날이기에 사제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제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제를 영적인 아버지라고 합니다. 과연 아버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권위만 내세우고 무작정 따라오라는 식의 아버지, 자기중심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열린 아버지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예수님처럼 아래로 내려가 무릎을 꿇고 자녀의 발을 씻겨주는 겸손의 아버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모두를 품고 끝까지 사랑하는 가슴이 넓은 아버지를 그리워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요한13,1)하셨습니다. 자신을 팔아먹는 제자 유다까지도 사랑할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그분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밤에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겠습니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차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앞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13,35) 따라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만큼 주님의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스승이 사랑의 길을 걸으셨으니 제자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더 깊이, 더 넓게, 더 높게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지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모쪼록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 하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마음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