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것을 요구하기에
사람의 마음은 흔들비쭉입니다.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으면 여한이 없을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루고 나면 언제 그랬는가 싶게 잊어버리고 맙니다. 한번 깨우침을 얻었다든지 소망을 이루었으면 그 감사함을 오래도록 지켜야 하는데 마음 같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그들이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라 기적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11,29) 하고 말씀하시며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귀를 막고 있는 사람에게는 천둥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리 표징을 보여줘도 마음을 닫아건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습니다.
니너베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모두 자루 옷을 걸치고 하느님께 부르짖어라. 저마다 제 악한 길과 제 손에 놓인 폭행에서 돌아서야 한다.”(요나3,8)는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시대 사람들은 요나보다 훨씬 능력 있고 권위 있는 하느님의 아들이 오셨는데도 회개하기는커녕 또 다른 기적만을 요구하였습니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옛 말이 있습니다.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는 정성을 들이지 않고 딴 곳에만 마음을 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군중들이 그랬습니다. 참된 신앙과 회개에는 무관심한 채 표징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징을 통하여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해 주시고 당신의 권능을 일깨워 주심으로써 새 삶으로 인도하려 했지만 사람들은 그것에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표징을 일으킬 수가 없으셨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사참례를 하여 성체를 모시면서도 주님의 삶을 살기를 다짐하기 보다는 이상한 현상이나 신비로운 표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우리를 위한 생명의 양식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모실 수 있다는 것이 표징중이 표징이요, 기적중의 기적이지만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모두를 주시지만 우리는 그저 밀떡하나 받아먹는 것으로 만족하니 주님의 역사하심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으로 준비하지 않은 나를 보지 못하고 더 큰 것을 요구하기에 급급해 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번 사순절에는 더 큰 것을 바라기에 앞서 지금 내가 주님 앞에 서 있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기적은 내가 지금 살아있음이 기적입니다.
많은 실수와 잘못, 허물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이기는 자비에 힘입어 이렇게 살아있음이 사랑이신 주님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쫓기보다 내 삶의 자리를 표징의 자리로 만들어야겠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주님을 영성체를 통해 모실 수 있음을 기뻐하며 우리도 주님처럼 이웃을 위한 빵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빵을 먹을 때마다 생명의 양식이 되신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반영억 신부님의 복음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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