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이수철 신부님

아름다운 죽음

김레지나 2011. 3. 25. 14:5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3.21 사부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

창세12,1-4 요한17,20-26

 

 

 

 

 

"아름다움 죽음"

 

 

 

혼자의 믿음은 불완전하고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문이나 가통이란 말이 있듯이

천주교 믿음의 가문 안에서 믿음의 가통을 잇는 우리들입니다.

성인성녀들의 믿음이 하나로 녹아 있는 교회의 믿음에 뿌리 내릴 때

우리는 계속하여 성장하는 믿음의 나무들이 됩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우리 믿음의 자양분이 됩니다.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시 두 번 째 후렴이 참 아름답습니다.

 

“의인의 길은 동트는 여명의 빛살 같으니

  그 빛은 점점 밝아져 한 낮이 되는 도다.”

 

‘동트는 여명의 빛살 같다’는 표현에서

성 베네딕도가 임종 시 수도원 밖에 있는 두 제자들이 본

환시의 내용(그레고리오 교황의 대화 집2권37장3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대로 인용합니다.

 

‘그들은 그분 방에서부터

  동쪽을 향해 하늘에 이르기까지 똑바로 나 있는 길을 보았는데,

  그 길에는 양탄자가 깔려있고 수없이 많은 등불이 켜져 있었다.

  그러자 그 위에 빛나는 옷을 입은 존엄한 분이 나타나시어

  이 길이 누구를 위한 길인지 알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들이 모른다고 하자,

 “이 길은 주님께 사랑받는 베네딕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다”라고

  그분께서 말씀하시더라는 것이다.’

 

참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죽음은 삶의 요약입니다.

아름다운 삶에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죽음을 통해 환하게 들어나는 삶입니다.

대화집 37장에서 성 베네딕도의 임종 장면이 참 감동적입니다.

절로 ‘참 아름답다’라는 찬탄이 나옵니다.

어느 고승의 죽음보다 큰 울림을 줍니다.

임종을 직감하신 성인은 자기의 무덤을 열어놓으라 명하신 후

열병을 앓기 시작한 후 엿새째 되는 날

제자들에게 자신을 성당에 옮겨 달라 하십니다.

성인은 성당에서 주님의 성체와 성혈을 영하심으로써

당신의 임종을 준비하시고

쇠약해진 몸을 제자들의 손에 의지한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를 하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참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아름다운 죽음보다 공동체에 큰 선물은 없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기도하는 성인의 모습은

오늘 복음에서 역시 죽음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기 전

우리 믿는 이들을 위해 바치는 예수님의 기도와 흡사합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주님의 간절한 기도는 그대로 이루어져

매일 성전 안에서 주님 안에 일치의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우리들입니다.

성인처럼 성당에서 영성체 후 맞이하는 선종이라면

얼마나 복된 죽음이겠는지요.

새삼 아름다운 선종에, 마지막 떠남의 죽음에,

정성껏 바치는 매일미사와 더불어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라는

끝기도의 강복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의 갑작스런 아름다운 선종은 없습니다.

매일의 크고 작은 이런저런 봉헌에, 순종에, 떠남에 충실할 때,

마지막 봉헌이자 순종인, 떠남인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여정은 떠남의 여정입니다.

오늘 1독서의 주인공

아브라함과 성 베네딕도 부단한 ‘떠남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집을 떠나 순례 여정에 오른 아브라함에게

주님은 복을 내리시어 모든 사람들이 그를 통해 복을 받게 하십니다.

아브라함 역시

'주님께 복 받은 이'라는 이름 뜻대로 ‘베네딕도’가 되었고

미사 때 마다 주님의 축복을 받고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들 역시

또 하나의 ‘베네딕도’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성 베네딕도의 삶 역시

끊임없는 ‘떠남의 여정’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로마로, 로마를 떠나 수비아꼬로,

수비아꼬를 떠나 몬테카시아노로,

오늘은 몬테카시아노의 세상을 떠나 마침내 하늘 길의 여정에 오릅니다.

 

떠남의 여정에 이정표와 같은 성체성사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를 당신과 일치시켜 주시어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주님을 향한’

떠남의 삶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 모두 주님께 복 받은 ‘베네딕도’로 세상에 파견하십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