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2.7 연중 제5주일 월요일
창세1,1-19 마르6,53-56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은 삶"
질서(cosmos)를 추구하면서도 혼돈(chaos)으로,
빛을 추구하면서도 어둠으로,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전쟁으로 향하는 역설적 인간입니다.
혼돈에서 질서로,
어둠에서 빛으로,
전쟁에서 평화로 우리를 부단히 이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제가 수도원을 방문할 때 마다
우선 확인하는 것이 그 수도원의 일과표입니다.
부산수녀원을 방문했을 때 발견한 ‘일과표’ 대신
‘날 질서’란 말마디가 참신한 느낌이었습니다.
기상하여 취침까지의 펼쳐지는 하루 일과를
‘날 질서’로 명명한 것입니다.
어느 정치가에 대한
‘예측 가능한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란 평가의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외적질서에 상응하는 내적질서요,
사람도 내적질서가 잡혔을 때 예측가능하며 안정감과 신뢰감을 줍니다.
반면 무질서한 내외적 삶으로 예측이 불가능하여
도대체 뭔지 모를 때 불안하고 신뢰감이 가지 않습니다.
날 질서의 일과표가 좋아야 하고 이 날 질서의 습관화가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요셉 수도원의 날 질서인 일과표는
1992년에 만들어져 19년 동안 검증된 좋은 일과표입니다.
영성생활은 습관입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날 질서의 궤도에 충실할 때 내적안정과 평화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삶입니다.
여기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나 수도자를 만났을 때의
고향에 온 듯 편안한 느낌도 수도원의 확립된 날 질서 덕분입니다.
잘 조화되고 균형 잡힌 날 질서가
외적질서와 더불어 내적질서를 세워줍니다.
하여 저는 만나는 이들 마다
나름대로 날 질서를 세워 그 질서에 충실한 수행을 강조하곤 합니다.
질서의 하느님이요 가톨릭교회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전례력이나 미사를 봐도 그 질서가 잘 드러납니다.
‘년 질서’를 잡아주는 전례주년이요
하루의 날 질서를 잡아주는 잘 질서 잡힌 미사의 구조입니다.
무질서로 인한 불균형, 부조화에서 파생되는 온갖 문제들이요 질병들입니다.
오늘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의 창조 역시
혼돈에서 질서를 세우는 과정으로 전개됩니다.
혼돈의 어둠을 환히 비추는 빛을 창조하신 후
이어 말씀으로 질서 있게 창조하십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말씀으로 창조하신 후
그대로 되면 이름을 부르시고
그 경계와 제자리를 정해 주시어
조화와 균형으로 만물의 질서를 잡아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하느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조화와 균형으로 질서 잡힌 세상을 관상하시며 흐뭇해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과연 좋은 세상이요 우리 삶인지 살펴보게 됩니다.
인간의 탐욕과 무지로 인한 무분별한 개발과 낭비로
자연의 조화와 질서가 무너지면서 파생되는 폐해는 얼마나 큰지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에워싼 모든 병자들 그대로 혼돈의 어둠을 상징합니다.
“과연 그것에(예수님의 옷자락 술)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질서의 회복이 구원입니다.
생명이자 빛이신 주님을 만남으로
심신의 질서가 회복되어 치유, 구원된 사람들입니다.
가끔 고백상담을 하면서도 체험하는 진리입니다.
사제 앞에 장시간 동안 내면의 혼돈의 어둠을 털어놓으면서
은총의 빛 가운데 질서를 회복함으로
내적치유의 구원을 받는 신자 분들입니다.
하느님을 중심으로 균형과 조화의 질서 잡힌 삶을 때
저절로 치유의 구원입니다.
반면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신 하느님을 잊을 때
불균형과 부조화의 무질서로 인해 파생되는 온갖 낭비요 질병들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 말씀으로 우리를 재창조하시고
내적질서를 잡아 주시어 안정과 평화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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