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감정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2)
지금까지는 가까운 사이에서 왜 화를 표현하지 못하는가를 서술하였는데,
이제는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 얘기해 보자.
일반적인 관계에서 사람들이 화를 감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화를 표현하면 갈등이 빚어지고,
갈등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화를 내면 안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갈등이란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부산물이란 것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갈등은 관계를 맺어 나가는 데 필연적인 것이기에
갈등이 있어야 제대로 된 인간관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울 수 있다.
예수께서는 여러 차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그리고 제자들에게 화를 내시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해서는 '사기꾼, 위선자'라고 하면서
화를 표현하였고 그들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수제자인 베드로를 향해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면서 화를 내셨다.
예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지만 동시에 참 인간으로서,
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결코 화를 억누르지 않으셨다.
그러니 우리가 화를 낸다는 것은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부정적 감정과 내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내가 불같이 화가 난다 해도 그 화가 내 자신은 아니다.
지금 내 안에 짙은 슬픔이 있다 해도, 그 슬픔이 나는 아니다.
어떤 감정이 우리 마음을 차지하고 있을 때 그 감정과 나 자신을 분리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들려주어야 한다.
"화는 나지만 그 화가 내 자신은 아니다"
"내가 외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그 외로움이 내 자신은 아니다."
"지금 내가 실망하고 있지만 실망이 내 자신은 아니다."
만약 내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과 내 자신을 동일화시키면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풀어가지 못한다.
감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자기를 칭찬해 주면
온 세상을 얻은 듯이 기뻐 날뛰다가,
누군가가 자기를 비판하면 살 가치가 전혀 없는 인간처럼 주눅이 들어 버린다.
감정과 자신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한 부분에 불과한 부정적 감정 때문에
자기 자신을 형편없는 존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 안에 어두운 감정이 있어도 내 존재 자체가 어두운 것이 아니기에
나를 비하시켜서는 안 된다.
만일 누가 강의를 하였는데 그 강의에 대해 비판하자 두번 다시 강의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강의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또 정성 들여 음식을 하였는데, 가조들이 맛이 없다고 조금밖에 먹지 않았다고 해서
다시는 음식을 만들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음식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안의 부정적 감정 때문에 나의 인격 자체를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내 안에 있는 부정적 감정이 내 자신은 아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안에 있는 것이지 내 밖에 있는 것이 아님을 유념하라.
내가 불쾌한 것이지 다른 사람이 불쾌한 것이 아니다.
만약 이 점을 구분할 줄 모르면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내가 몹시 화가 나 왔다갔다하다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쳤다고 하자.
이때 책상은 아무 잘못이 없다.
책상은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다만 내가 화가 나서 몸의 균형을 잃어 부딪혔을 뿐이다.
그런데 "이놈의 책상" 어쩌구 하면서 그 책상을 걷어찬다면,
나는 화나는 감정을 밖에까지 확대시키는 것이다.
처음 책상에 부딪쳤을 때 아픈 것은 무릎뿐이었는데 이제는 발마저 아프다.
상처받은 사람은 마치 치통을 앓는 사람처럼 자기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이가 아플 때 누구를 생각하는가?
이가 아플 때 생각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상처받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기만을 생각하기에 다른 이와의 관계에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면,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된다.
자기 안에 벌어진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다른 상처를 받는 것이다.
상처가 계속되다보니 이제는 누구를 만나든 더이상 다치지 않겠다고
자기를 보호하게 된다.
자신을 보호하기에 급급하다 보니 여유가 없고 상대의 말 한마디나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해진다. 상처의 악순환이다.
우리는 모든 행동에 있어서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여유있게 선택해야 한다.
많은 경우 우리의 행위는 자동적으로 그리고 거의 반복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환경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
"보나마나 뻔해!" "아무튼 칠칠맞기는!"
"너 옷 입은게 왜 그렇게 촌스러우니!" "왜 그렇게 얼굴이 망가졌냐?"
등등의 말을 들을 때, 흥분해서 반응하기보다는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선택된 행동을 하여야 한다.
자유와 해방을 살아가는 최선의 길은 매 행위 때마다 깨어 있으면서
선택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반응하게 되면 반응하는 그만큼 우리는 평화를 잃는다.
하지만 반응하지 않고 선택한다면 우리는 상처를 덜 받으면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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