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책에서 옮긴 글

[스크랩] 카이요 주교의 증언 ; 1. 마더 에우제니아의 견실한 덕행들

김레지나 2010. 5. 1. 16:40

 

 

카이요 주교의 증언

 

 

 

 

 

교회법에 의거하여

마더 에우제니아에 관한 조사 과정에서

작성된 보고서가 나온 이후,

그리노블 교구의 알렉상드로 카이요 주교가 공지한 증언

 

 

그르노블 교구의 주교인 본인이

마더 에우제니아의 일을 조사에 붙이기로 결정한 지도

어언 10년이 되었습니다.

 

충분한 자료를 입수한 이제,

본 주교는 교회에 다음과 같이 증언하는 바입니다.

 

 

 

 

1. 마더 에우제니아의 견실한 덕행들

 

 

 

이 조사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분명히 드러난 확실성은

견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마더 에우제니아의 덕행들이었습니다.

 

에우제니아 수녀는 수도 생활 초기부터

깊은 신심과 순명과 겸손으로 장상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수련을 받던 시기에 특별한 성질의 일이 그녀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난처하게 여긴 장상들이 수녀원에서 내보낼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수녀가 워낙 모범적으로 처신했으므로 결국 그 계획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이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에우제니아 수녀는

큰 인내와 더할 수 없는 유순함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의학적인 테스트를 할 때마다 아무 불평 없이 순종했고,

신학적인 조사와 의학적인 조사를 담당한 위원들이 흔히 던지곤 하는

장황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모든 질문에 응답하면서

어떤 반박이나 시험도 묵묵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조사위원 전원이 수녀의 그 놀라운 단순함을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그녀로 하여금

영웅적이라고 할 만한 덕행을 실천하게 한 계제들도 있었는데,

신학자들의 의견에 의하면,

1934년 6월에 오귀스트 발랑생 신부의 조사를 받는 동안

그녀가 보인 순종과,

비통한 날이었던 1934년 12월 20일에 보인

겸손이야말로

그녀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수녀가 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얼마나 헌신적으로 그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는지를 증언할 수 있습니다.

이 임무는 미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받은 것이었으니만큼

분명히 더 힘들어 보였지만,

수녀는 영혼들과 그녀의 수도회와 교회에 대한 큰 사랑으로

그토록 헌신적으로 일했던 것입니다.

그녀를 가까이서 접해본 사람들은,

본 주교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에 직면하는 그 강한 정신력에

깊은 감명을 받을 것입니다.

 

 

본인은 이 수녀의 덕행뿐만 아니라

그녀가 권한을 행사할 때 드러나는

그 탁월한 자질에도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한 비교적 교육을 받지 못한 편인 그녀가

수도회의 최고 장상으로서의 직무를 다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감동적인 일이 아닐 수 없으니,

여기에 벌써 비상한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서 본 주교의 총대리인 몬시뇰 게리가

수도회 총장 선출일에 관해서 조사를 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겠습니다.

모든 참사원들 곧 (각 지역 수녀원) 원장들과 여러 선교단체 대표들의 대답에 의하면,

그들은 마더 에우제니아의 연소한 나이라든지,

통상 그 임명이 기각될 수 있는 교회법상의 저촉 사항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판단력과 균형잡힌 기질과 힘찬 정력 및 굳건한 품성을 보고

원장으로 선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에우제니아 수녀는

그녀를 총장으로 선출한 사람들이 걸었던 기대를

훨씬 능가하는 총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인이 이 총장 수녀에게서 특히 눈여겨 본 점은

그 명석하고 기운차고 통찰력이 있는 지성이었습니다.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이미 말했지만,

그것은 그녀로서 어쩔 수 없는 외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오랜 병환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도 집안 살림을 맡아야 했으니

학교에는 결석하기 일쑤였으며,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도 수년 동안

베짜는 직공으로 일하며 고된 나날을 보냈던 것입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이 기본적인 결함

-- 그 결과가 그녀의 문체나 철자에 드러나지만 -- 에도 불구하고,

마더 에우제니아는 자신의 공동체에서 수많은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주목할 만한 것은

총장 자신이 수도회의 회람을 작성했으며,

"사도들의 성모회" 수녀들에게  맡겨진 구호기관 설립을 위하여

시(市)당국이나 지방 행정 위원회와의 접촉에 필요한 서류도 직접 작성했고,

긴 지침서를 쓰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마더 에우제니아는 모든 상황을

마치 양심의 문제인 것처럼 분명하고 정확하게 보았으며,

올곧고 명확하고 실제적인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1400명에 이르는 수녀들을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다 알고 있었고

그들의 적성과 덕행들도 알고 있었기에,

각종 임무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수녀들을

적재적소에 선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수도회의 요구 사항들과

재원에 대한 정확한 지식도 가지고 있었고,

각 분원의 형편도 알고 있었으며,

선교 본부들을 빠짐없이 방문하곤 하였습니다.

 

 

마더 에우제니아에 대해 또 강조하고 싶은 점은

선견지명이 있는 그녀의 정신입니다.

자질이 있는 수녀들을 구호소나 학교에 있게 하고

그들이 생활하면서 진보하는 데 필요한 것을 얻어 주기 위한

모든 조처를 취했던 것입니다.

특히 흥미있는 것은

그처럼 과단성 있는 정신을 지닌 그녀는

또한 현실 감각 및 창조적인 의지의 소유자이기도 함을 주목하는 일일 것입니다.

6년 동안 무려 67개소나 되는 분원을 세웠고,

수도회 전체에 유익한 개선(改善)책을 강구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와 같이 에우제니아 수녀의

지성과 판단력과 의지와 관리 능력의 특성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그런 특성이 본인으로 하여금

환각증, 망상, 강신술, 히스테리 혹은 정신 착란에 대한

모든 가정(假定)을 결정적으로 배제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에우제니아 수녀를 조사하는 동안

이 모든 증상에 대한 검진이 있었지만,

그 무엇으로도 그녀의 이 엄연한 특성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을 뿐입니다.

 

 

그녀의 생활은 정신적인 면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볼 때도 항구한 안정성을 드러내고 있어서

관찰자의 눈에는 이 안정성이

오히려 두드러진 특징으로 보였습니다.

다른 가정들,

이를테면 그녀가 암시에 걸리거나 조종당하기 쉬운 기질인지 아닌지를

조사하고자 했던 사람들도 결국,

모든 영향과 암시를 다 반사하는 다면적인 거울처럼

매우 감수성이 강한 그녀의 기질을

그런 가정하에서 다룰 수 있겠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그녀의 일상 생활을 보더라도

그런 가정들은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마더 에우제니아는

민감한 기질과 감성을 타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사람을 특별히 편애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결코 없었고,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 좌지우지되기는커녕,

홀로 그 자신의 계획과 활동을 결정하고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능력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평가보다도 이를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사실이 있으니,

그것은 그녀가 총장으로 선출된 다음 날에 일어난 일입니다.

총장은 이날 수하 원장들을 선출하기로 되어 있는데,

그 전날 자기에게 표를 던져 준 원장들 가운데 한 사람을

주저없이 다른 사람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원장은 수녀원이 있는 에집트에 도착하자마자

항공편으로 날아온 경질(更迭)통지서를 받았던 것입니다.

 

 

 

 

 

 

 

 

-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삶」中 

 

지은이 : 마더 에우제니아 ;

펴낸곳 : 가톨릭출판사 ;

1999년 10월 15일 교회인가

 

 

 

 

 

 

출처 : 십자가의 신비로...
글쓴이 : 밀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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