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프란치스코 저는> 중에서
"때는 1205년 가을,[...]
리보 또르또 강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마음에 쏙 드는 곳이 한 군데 있었어요.
그것은 아름답게 펼쳐진 풀밭에
그냥 맨돌로 쌓아 올린 조그맣고 가난한 성당 하나가
적막한 고요 가운데 서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이름은 성 다미아노 성당이었는데,
가난한 사람들 뿐 아니라 가난한 것들을 찾아 나선 저 같은 사람에게 꼭 어울리는 듯 했어요.
그 작은 성당 바닥에 앉거나 무릎 꿇고
저는 처음으로 여러 피정을 했는데,
가만히 보니 벽과 지붕이 상당히 금이 가 있었어요.
성당이 무너질 지경이더군요.
그리고 제대 위로는 매우 훌륭한 비잔틴풍 나무 십자고상이
고딕 궁륭으로부터 드리워 있었는데,
그 십자고상이 제게 말씀을 하시는 거였어요.
그것은 그리스도의 왕다운 위엄과 어울려 그분의 더없이
겸허하고 온유한 두 눈이 보이는 눈길이었어요.
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저 바라보며 기도하며 울었어요.
어찌나 많이 울었던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프란치스코야,너는 계집아이로구나'하고 혼잣말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마냥 울면서 눈물을 쏟았더니 후련하더군요.
하루는 그 십자고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분명 입술이 움직이는 인상을 받았고,
동시에 제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어요.
'프란치스코야,내 집 좀 고쳐다오. 너도 보듯이 다 망가졌단다.'
제가 받은 인상이 어떠했는지는 말하지 않으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저에게 들려오는 전갈 같았고,
오랜 세월에 걸친 방황과 시도와 모색의 기나긴 세월을 마감해 주는 것이었어요.
어떤 무한한 감미로움이 저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 들어
그 십자고상에 입맞추러 다가갔지요.
거기에는 저 혼자만 있었으니까
예수님을 온몸으로 끌어안으려고
겁 없이 제대 위로 뛰어 올라갔어요.
그러고는 그리스도를 만지고 깨끗이 닦아내고 바라보고 하느라
얼마나 오래 거기 머물러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눈물과 한숨 사이사이에 손과 발과 옆구리의 상처에 입을 맞추면서,
제 손으로 마치 사랑에 빠진 이가 애무하듯이
그분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그처럼
기쁨에 겨워
정신이 나간 상태로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한참을 그러다가 손바닥만큼이나 넓은 틈이 벽에 나 있는 걸 보고는
예수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이 문득 생각났어요.
'프란치스코야,내 집 좀 고쳐다오.
'저는 미장이도 아니고 평생 일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는데,
그 순간에는 성 루피나 주교좌성당처럼 커다란 성당도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러니 성 다미아노 성당쯤이야!
상상해 보세요.
밖으로 뛰쳐나가 돌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어요.
특히 네모난 돌을. 그런데 즉시 멈추어야 했어요.
가위 눌린 듯 누가 악을 쓰는 거예요.
" 돌이 거전 줄 알아? 이 돌들은 다 내거야. 다른 데 가서 찾든가 해 " [...]
아시시에 가서 돌을 구걸할 생각을 했어요.
제가 분별없는 자라는 평판은 벌써부터 나 있었지만
이번 구걸 행각으로 아주 엉망이 돼 버렸어요.
“저것 좀 봐. 삐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 아들 녀석이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나!
정말 미치고 말았군!“
“ 예,그래요, 아시시의 친구분들, 그래요,
저는 미쳤어요.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미쳤는지 제발 좀 아셨으면.
저는 사랑으로 미쳤단 말이에요.
더는 어쩔 수가 없어요.
멈추려도 멈출 수가 없어요.
저 예수님을 눈앞에 바라보기만 하면 속이 온통 타오르는걸요.[...]
아시시의 여러분,
동정해 주세요.
돌 좀 주세요.
하느님의 성당을 제가 손질해야 하니까요.“
그러고는 뛰어갔지요.
성 다미아노 성당으로 뛰어갔지요.
그곳에서, 그 십자고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가 없었거든요.
아예 거기서 살기로 했어요.
언제나 거기 머물기로, 동냥과 노동으로 살아가기로 했어요.
그 성당에서 전례를 집전하는 신부님에게
십자고상 앞에 켜 놓은 등잔불을 절대로 끄지 말아 달라고 여쭈었지요.
거기 쓰일 기름은 제가 대겠다고 약속하면서.
제 피가 탈 수만 있었다면
그 십자고상 앞에 등불을 밝히는 데 기꺼이 바쳤을 거예요.
저에게 온 우주의 신비를 풀이해 주었고
또 그리스도와 보이지 않는 세상의 진리 안으로 들어가도록
저를 도와준 십자고상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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