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삼용 신부님

마리아야! 스승님!

김레지나 2010. 4. 11. 17:54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8부 축제 내 화요일 - 마리아야! 스승님!

 

 

 

저희 어머니는 제가 신학교 때 유학을 나오고 나서 제가 보고 싶을 때는 가끔 인천 공항을 왔다 갔다 하셨다고 합니다. 공항에 간다고 해서 제가 오는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 떠난 자리에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4년 만에 그 공항으로 제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없는 빈 공항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공항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로라면 첫 번째 예수님의 발현을 목격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 마리아 막달라는 계속 남아 울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체취가 묻어있는 무덤을 떠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 빈 무덤은 부활의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이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인천 공항으로 떠났다면 돌아올 곳도 인천 공항인 것처럼 빈 무덤에서 당장 주님을 만날 수는 없을지라도 결국 그 분을 만나게 될 곳은 그 곳이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시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리아!’라고 부르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의 어머니까지도 ‘여인’이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서 마리아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신랑’으로서 ‘신부’를 부르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고 합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안다는 것은 완전하게 안다는 뜻이고 완전하게 안다는 것은 완전하게 사랑한다는 뜻이고 완전한 사랑은 바로 신랑으로서 신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절정입니다.

요한은 고의적으로 에덴동산과 아가서에 나오는 ‘동산’이란 단어를 씀으로써 우리의 신랑이요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이며 하와를 하늘나라에서 만나는 것으로 형상화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교회의 상징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이름 대신 ‘랍뿌니’, 즉 ‘스승님’이라 부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이름을 정확하게 아시지만 인간은 이 지상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그 분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 할 뿐입니다. 즉, 우리의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랍뿌니’인 것입니다. 그분을 알아가는 노력이 바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이들의 모범입니다. 알려고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애인 사이에 “우리가 안 지 얼마나 됐지?”하는 말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된지 얼마나 됐지?”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렇게 ‘안다’는 의미는 ‘사랑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알기 시작한 것은 어렸을 때부터가 아닌 사랑하기 시작한 때부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다는 뜻은 참으로 사랑한다는 뜻이기에 예수님을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려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즉,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삼고 그 분께 배우려고 하는 이는 그 분을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뜻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 분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빈 무덤은 성경입니다. 그러나 성경만 보고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빈 무덤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성경을 떠나지 않고 말씀 안에 오래 머무르는 사람은 성경을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에 5분씩만이라도 성경을 읽으면 천천히 읽어도 5년이면 신구약 한 번 완독 할 수 있음에도 평생 단 한 번도 읽지 못하는 신앙인들도 많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마지막 날에 그 분 앞에서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였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빈 무덤인 성경 말씀을 떠나지 않으려는 결심이 꼭 필요할 것입니다.

 

 

<<짧은 묵상>>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가장 처음에 발현하십니다. 그녀의 믿음에 대한 보상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마리아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면 예수님을 보고 동산지기로 착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세상에 성모님이 없으셨다면 성자께서는 사람이 되실 수 없으셨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온전한 믿음만이 하느님을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한 그리스도의 발현이 믿음에 대한 보상이라 한다면 완전하지 못했던 믿음의 소유자인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첫 번째로 발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태어나실 때도 성모님의 믿음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셨듯이, 부활한 그리스도도 성모님의 온전한 믿음을 통하여 세상에 보여지게 된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늘의 통로이고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모님을 가장 처음에 만나야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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