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8일 축제 내 월요일 - 마음이 깨끗한 이는 행복하다
김연아 선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 선수가 잘 할수록 기분 나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사다 마오에게 지나친 애정을 지닌 팬들은 김연아 선수가 받은 높은 점수를 받아들이려하지 않고 또 안 좋은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한 번 안 좋게 보기 시작하면 아무리 잘 해도 안 좋게 보이는 것이 사람의 눈인가 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만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는데 예수님은 당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순차적으로 당신을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쁘지 않다면 그것은 어쩌면 아직 부활한 주님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번 주 복음은 예수님께서 발현하시는 장면들이 계속 나옵니다. 누구에게 발현하시고 어떻게 발현하시는지 한 주 동안 잘 묵상하면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더 빨리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셔서 여인들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떠는 여인들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라고 이렇게 일러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사실 이 말씀은 실제로 갈릴래아로 가라는 말씀이 아니십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그들에게 발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갈릴래아로 가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 말씀을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하고 좀 더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를 한 번 펴서 보십시오. 맨 위에 갈릴래야 호수가 있고 그 호수 밑으로 요르단강이 흐릅니다. 요르단강은 사해에서 끝나게 됩니다. 차를 타고 갈릴래아 호수에서 사해로 계속해서 내려왔습니다. 때는 2월 말이라 가장 아름다운 봄철이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그야말로 에덴동산을 연상시켰습니다. 꽃과 나무와 물고기들이 풍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물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물이 풍부하니 아무리 요르단강으로 물을 흘려보내도 계속 채워집니다. 주위에 높은 산들이 있어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내려와 모이고 비도 적당히 와 주기 때문입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해수면보다 210미터 정도 더 아래에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사해가 더 낮기 때문에 물이 사해로 끊임없이 흘러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해는 해수면보다 390미터 정도나 낮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모든 물을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더 낮은 곳이 없기 때문에 그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습니다. 마치 지옥을 연상시킵니다. 물이 계속 흘러들어와 빠져나가지 못해서인지 그 곳은 온통 소금으로 뒤덮여졌습니다. 소금 사막입니다. 물에도 염분이 너무 많아 생물이 살 수가 없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사해가 있는 자리에 이전에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고 그 주위에 유황불이 떨어져 그렇게 죽은 땅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리적으로도 갈릴래아는 천국을 나타내고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 즉 지옥을 나타냅니다. 그 차이는 물에 있습니다. 갈릴래아에 있는 물은 생명의 물이고 사해의 물은 죽음의 물입니다.
성경에서 생명의 물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내가 생명의 물을 거저 주리라. ... 이 생명의 물은 예수님께서 주실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즉,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하느님나라요 갈릴래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성령님을 충만하게 받아 그 안에 하느님나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입니까? 바로 죄 없는 사람입니다. 오직 원죄 없이 잉태되신 티 없으신 성모님만이 ‘은총이 가득’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은총이 가득 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죄가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은총은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즉, 인간은 죄 때문에 성령님의 선물을 잃게 되었지만 성모님만이 깨끗하시어 성령님으로 충만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이 갈릴래아가 되려면 성모님처럼 깨끗한 마음을 먼저 지녀야한다는 뜻입니다. 죄 없이 깨끗해진다면 그 사람은 자신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활과 성탄 이전에 꼭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 성모님이 성경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번째로 뵌 분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조건은 성모님처럼 죄 없이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하신,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는 말씀은, “마음이 깨끗한 이는 행복하다, 그는 하느님의 얼굴을 뵈올 것이다.”라는 말씀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입니다.
<짧은 묵상 - 완전한 봉헌>
오늘 복음에서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을 때는 당신이 아버지께 가셔야한다고 그녀가 당신을 만지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시간상으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발현하시고, 아버지께 가셨다가, 다시 오늘의 여인들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가시기 위해 아무리 깨끗한 인간이라도 당신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성인이라도 성모님을 제외한 누구나 죄의 더러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먼저, 당신의 ‘흠 없는’ 부활한 몸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흠 없이 깨끗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되돌려 드려야 할 것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작게는 성체 앞에 무릎을 꿇을 때마다, 혹은 마지막 날 우리 자신을 그 분께 봉헌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아버지께 돌아가기 위한 예수님의 자세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얼마나 깨끗하게 가꾸어 나가야할지를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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