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신부님들 말씀

버린다는 것 - 임문철 신부님

김레지나 2009. 8. 24. 14:24
8월24일 버린다는 것 ~ 새로운 한 주간 평화를 빕니다

2009년8월24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그때에 필립보가 나타나엘을

만나 말하였다. “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나타나엘이 당신

쪽으로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저를 어떻게 아십니까?”

하고 물으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나타나엘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엘에게 이르셨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앞으로 그보다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다.”

이어서 그에게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의 묵상

 

컴퓨터가 잠시 고장이 나서

어제는 전체멜을 보내지 못하였습니다

이럴 때 참 난감하고 어렵습니다.

어제 전 토마스 모어 형제님의 국장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살아있는 우리들의 증인이 되어주신 것 같습니다.

故 김대중 토마스 모어 대통령은

대전교구 제10차 꾸르실료를 체험한 꾸르실리스따로서

어두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의 영혼이 편히 쉬도록

주님께서 두팔벌려 안아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참으로 버린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과 통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목적 없이 비우는 것이 아니라

채우려고 비우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더구나 비워야 할 때를 알고 대처한다면

위대한 사람이 됩니다. “와서 보시오.”

필립보의 이 한마디에 나타나엘은

자신의 뜻을 비우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질보다는 양을 내세우고 있는 요즈음 세상입니다.

무엇이든 많아야 하고, 숫자가 높아야

안심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교회마저 그러한 분위기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또 언론이 권력층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난한 민심의 마음을 외면하고 있어도

깨어있지 않으면 귀멀고 눈먼 신앙인으로

하느님의 뜻을 식별해낼 수 없습니다.

비우기보다는 닥치는 대로 채우려 든다면

어찌 주님의 큰 힘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의 뜻  

   

-임문철 신부-


 이제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사제 서품을 한 달 남겨 놓고서도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가꿔온 사제의
꿈이었건만 그것이 혹시 저의 인간적인 소망이 아닌지 싶어 늘 불안했습니다.
그러다 성령기도회에서 비로소 확신과 감사를 드릴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냐며 필립보를 타박하던 나타나엘은
“필립보가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는
이 한 말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겁니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선 나무 그늘을
찾게 마련이고, 어쩌다 흔한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걸 맞출 수도 있는 것인데,
나타나엘은 곧바로 예수께 스승이라 부르며 제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하느님의
아드님이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나타나엘은 조그만
징표에도 승복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큰 징표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원의와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은 하느님께서 당신 뜻을 천둥으로
울려주셔도 알아듣지 못하지만, 늘 성령의 이끄심에 깨어 있는 이들에게는
막 피어난 꽃잎 끝에 맺힌 한 방울의 맑은 이슬만으로도

하느님의 뜻을 헤아림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거짓이 없는 순결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