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교실(신약) : 자료 - 04
세상 끝까지 전파된 복음
* 안티오키아 교회
교회 역사상 최초로 이방 지역에 세워진 유다인 ․ 이방인 혼성 교회로, 이곳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로 불리었다. 바오로는 세 차례에 걸쳐 선교 여행을 하게 되는데 모두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한다. 예루살렘이 팔레스티나 지역 유다인 선교의 중심지라면 안티오키아는 지중해 연안 지역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라고 말할 수 있다.
* 바오로의 제 1차 선교 여행(45-49년, 사도 13,4-14,28)
안티오키아 - 키프로스 섬 - 살라미스 - 파포스 - 페르케 -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 이코니온 - 리스트라 - 데르베 - 아탈리아 - 안티오키아.
* 구원의 보편주의
바오로는 선교지에 도착하면 안식일에 유다교 회당을 찾아 유다인들게 설교를 했다. 바오로의 선교 방침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크게 반발했고 바오로는 복음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겠다고 선언한다.(사도 13,46 ; 18,6 ; 28,28). 구원의 복음이 유다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전해진다는 ‘구원의 보편주의’가 사도행전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이다.
* 예루살렘 사도회의
이방인 신자들의 할례와 율법 규정 준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열린 회의로 그리스도교 최초의 공의회라고 말한다. 이 회의에서 유다인 신자들은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 곧바로 그리스도교에 입교하는 것을 인정하고, 이방인 신자들은 유다인 신자들에게 혐오감을 줄 만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결정되었다.
* 바오로의 제 2차 선교여행(50-52년 경, 사도 15,36 - 18,22)
안티오키아 - 데르베 - 리스트라 - 이코니온 - 트로아스 - 네아폴리스 - 필리피 - 암피폴리스 - 아폴로니아 - 테살로니카 - 베로이아 - 아테네 - 코린도 - 에페소 - 카이사리아 - 예루살렘 - 안티오키아
* 바오로의 제 3차 선교여행 (53 - 58년경, 사도 18,23 - 21,16)
안티오키아 - 에페소 - 제 2차 선교 여행 때 갔던 길을 따라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에 있는 교회 공동체들을 방문 - 코린토 - 트로아스 - 밀레토스 - 로도스 섬 - 띠로 - 프톨레마이스 - 카이사리아 - 예루살렘
* 바오로의 체포
바오로는 선교 여행 때 유다교를 비방했으며 성전 안으로 이방인들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죄목으로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다. 바오로는 로마의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곧 풀려났지만, 유다인들의 살해 음모 때문에 카이사리아로 호송되었다. 그곳에서 2년 동안 미결수로 감금되어 있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호송될 위기에 처하자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황제에게 상소한다.
* 바오로의 로마 호송 여정(60-61년, 사도 27,1-28,16)
카이사리아 - 시돈 - 리키아의 미라 - 크레타 섬의 ‘좋은 항구들’ - 페닉스 항구로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 몰타 섬까지 밀려가서 좌초 - 시라쿠사 - 레기움 - 푸테올리 - 로마
* 로마 선교의 의미
바오로의 로마 선교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내리신 교회의 보편적 사명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교회의 선교 활동은 예루살렘에서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까지 이르는 대장정을 이룬 것이다.
* 사도행전의 교훈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삶을 생생하게 소개하면서 몇몇 문제점들도 부각시키고 있다. 즉 외적 팽창과 내실의 불균형, 빈부 격차, 인종과 관습과 문화의 장벽, 참다운 목자의 부재, 세상 권력으로부터의 박해 등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회가 존재하는 곳이면 언제 어디나 따라다니는 문제들이기에 사도행전은 여전히 오늘의 우리에게 실천적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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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주 주제 : 주님의 재림 때까지
* 읽어야 할 성경 : 테살로니카 1 ․ 2서
* 성경 구절 쓰기 : 1테살 3,13 ; 4,13-18 ; 5,12-18 ; 2테살 1,5-7 ; 2,2-4 ; 3,10-12
< 이하 김양진 선생님의 2008년 10월 8일 강의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세상 끝까지 전파된 복음
로마제국의 도로망
그리스어 :국제적인 통용어
바오로 사도가 선교여행을 떠나는데 지도를 보시면,, 이 일대를 헤집고 다닙니다. 지금 같으면 비행기, 버스, 유람선을 타고 다니며 선교했겠지만, 2000년 전에 어떻게 이렇게 넓은 지역을 다닐 수 있었을까요? 마차도 있었고 말도 있었고 배도 탔겠지만 대부분 걸어 다녔을 겁니다. 중요한 시대적인 선물이 있었기 때문에 바오로사도가 그 넓은 지역을 선교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로마제국의 도로망과 국제적인 통용어였던 그리스어 덕분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은 식민지를 만들면 도로부터 깔았습니다. 적당히 길을 낸 것이 아니고, 포석(돌)을 길에 깔고, 길 양쪽으로 배수로를 깔고, 신속하게 군대를 이동하고 수송하기 위해 마차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홈까지 파놓았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빨간 선이 로마도로의 간선도로입니다. 지선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이렇게 잘 정비된 도로를 통해서 바오로사도가 다닐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언어입니다. 이미 로마제국 이전시대에 알렉산드로스가 이 지역을 장악해서 헬레니즘 문화를 심어 놓았고 그리스어가 공통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스어를 쓰면 어디를 가든지 다 통했습니다. 로마제국의 도로망과 공통어인 그리스어 덕분에 사도 바오로는 그 많은 지역에 선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안티오키아에 교회를 세우다.>
안티오키아 : 시리아 속주의 수도, 인구 50만 명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점점 팔레스티나지역을 벗어나 사라미아, 시리아 등지로 전해집니다. 그 중에서 맨 처음으로 이방인 지역에 세워진 교회공동체가 안티오키아 교회입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사도 11,20)
(십자가의 길 8처에 키레네 사람 시몬이 등장합니다. 아프리카의 리비아 오른 쪽에 키레네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키레네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예수님 시대에 키레네에도 디아스포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와 있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것입니다. )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 중에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이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요즘 시리아의 수도는 다마스커스입니다.) 로마제국시대에는 안티오키아가 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시리아는 로마제국의 속주였습니다. 안티오키아는 굉장히 큰 도시였습니다. 당시에 인구 50만이상의 큰 도시는 알렉산더와 로마와 안티오키아 셋 뿐이었습니다.
안티오키아 교회 : 이방지역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뒤섞인 교회
안티오키아에 사는 유다인들은 물론이고 안티오키아에 사는 그리스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공공연하게 복음이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예루살렘 팔레스티나에서 유다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코르넬리우스 백부장이 유일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공공연하게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에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섞인 혼성 교회공동체가 최초로 생깁니다. (그 공동체 안에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시 교회공동체의 문제점과 그 해결방법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바르나바 파견
예루살렘 모(母)교회와 일치의 유대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사도 11,23)
안티오키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이 예루살렘 공동체에 전해졌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 공동체와 유대를 갖고 올바른 믿음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바르나바를 파견합니다.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바르나바를 보낼 때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교회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안티노키아 교회를 공인해줍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가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사도 11,26)
지금까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유다교 일파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안티오키아인들이 볼 때는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르나바와 사울 : 안티오키아에서 1년 동안 선교활동
바르나바가 고향에 있던 바오로를 불러들입니다. (바오로가 회심한 후에 예루살렘에 갔을 때, 바르나바가 바오로를 소개해줬습니다.) 바르나바가 사울을 데려와 함께 1년간 안티오키아에서 선교활동을 합니다.
기근 때 생계 위협 받는 유다지방 신자 돕기
공동체의 친교와 나눔, 다른 공동체에도 실천
" 그래서 제자들은 저마다 형편에 따라 유다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호 헌금을 보내기로 결의하였다."(사도 11,29)
안티오키아는 대도시여서 그곳 신자들은 경제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들어서 생계 위협을 받는 유다지방 신자들을 돕습니다.
지금 우리도 다른 본당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성전 건립하거나 교육관을 짓는 데 기쁜 마음으로 돕습니다. 다른 지역의 교회 공동체와 친교를 맺고 나누는 공동체를 실천해야한다는 것을 초대교회 때부터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고보 순교와 베드로 투옥>
헤로데 아그리빠 1세 (37 ~ 44년 재위)의 박해
루카는 본격적인 바오로의 선교여행을 적기 전에 예루살렘 교회에 닥친 박해를 정리해줍니다. 이 박해는 헤로데 아그리빠 1세가 시작합니다. 세례자 요한을 죽인 사람은 헤로데 안티파스였습니다. 헤로데 아그리빠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조카입니다. 그가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투옥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사도 12,2-3)
유다의 임금들은 로마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에 충성합니다. 집권자들은 으레 '지지도'를 신경씁니다. 헤로데 아그리빠도 권력유지를 위해, 유다인들의 호감을 얻기 위해, 유다인들이 이단으로 여겼던 그리스도교를 박해합니다. 그는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인 야고보를 죽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잡아 가둡니다.
베드로 : 감옥에서 빠져나옴, 헤로데 : 벌레에 잡아먹힘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빠져나오고 헤로데는 벌레에 잡아먹혔습니다. 아마 벌레에 쏘여서 죽었을 것입니다.
어떤 장애물로도 막을 수 없는 복음
이 사건을 소개하는 루카는 “하느님의 복음은 헤로데 정도가 박해해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힘차게 뻗어나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사도 12,24)
복음은 어떤 장애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 바르나바와 사울이 선교사로 파견되다.>
안티오키아 : 예언자와 교사 등, 직무 담당자들을 둘 만큼 성장
기도와 안수로 선교사 파견
안티오키아 - 바오로의 세 차례 선교여행 출발지
예루살렘 - 유다인 선교의 중심지, 안티오키아 -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
안티오키아는 인구 50만 대도시였습니다. (00동성당과 명동성당은 경제력과 인적자원이 차이가 납니다. 명동성당이 조직도 활발하고 직책도 다양할 것입니다.) 안티오키아도 경제력이 있었고 인구가 많았기 때문에 예언자와 교사 등, 직무 담당자들을 둘 만큼 빨리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성장하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선교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3,2)
“따로 세워라”= “성별한다“ 즉,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 특별한 일을 하도록 성별하라는 소명이 안티오키아교회에 내립니다. 바르나바와 사울은 이방인들을 위해 선교할 수 있는 선교사로서의 소명을 받습니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바르나바와 사울에게 기도하고 안수해서 선교사로 파견합니다.
안티오키아는 바오로의 세 차례 선교여행의 출발지입니다. 그만큼 재정적인 후원을 할 수 있었고 탄탄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유다인 선교의 중심지라면, 안티오키아는 이방인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바오로의 제 1차 선교여행>
사도 13,4 - 14,28 (기원 후 45~49년)
안티오키아 - 키프로스 섬 - 살라미스 - 파포스 - 페르케 -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 이코니온 - 리스트라 - 데르베 - 아탈리아 - 안티오키아.
주로 소아시아쪽 (터키 쪽)입니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선교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 로마령 갈라티아 프리기아 지방의 도시, 갈라티아서의 수신처
1차 선교여행지 중에서 피시디아 안티오키아가 중요합니다.
로마시대에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라고 불렀는데, 갈리티아의 프리기아 지방의 도시였습니다.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는 우리 성경의 갈리티아서의 수신처입니다.
안식일에 유다인 회당에서 설교
바오로의 설교 : 이방인들은 받아들인 반면에 유다인들은 반발
바오로 사도는 안식일에 유다인 회당에서 설교합니다. 바오로도, 당시 사람들도 스스로를 정통 유다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종교를 창설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가서 예수가 메시아이고 주님이시라고 선포했습니다.
" 그 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사도 13,44)
예수님을 메시아라는 것을 가장 반겨야 될 사람이 유다인들입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최고의회가 하느님 모독죄로 죽인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 사도의 말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그리스 사람들이 더 호응합니다. 역전이 된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비방하고 모함하니, 이때부터 바오로사도는 유다인들에게 공격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13,46)
구원의 보편주의
바오로의 선교 방침은 먼저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크게 반발했고 바오로는 복음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바오로사도는“내가 당신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당신들이 먼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살아왔으니, 당신들에게 먼저 전했지만 당신들이 거부했다. 그래서 기쁜 소식을 다른 민족에게 전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같은 이야기에 사도행전에서 세 번 반복됩니다. 13장 46절과, 2차 선교여행 때 고린토에서 (사도18,6), 3차 선교여행 때 로마에서 (사도28,28), 세 번 나옵니다.
(사도 13,46 ; 18,6 ; 28,28)에서 세 번 반복되는 주제는 구원의 복음이 유다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세상 모든 민족들에게 전해진다는‘구원의 보편주의’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은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구원은 이스라엘 사람들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고 온 인류가 다 먹을 수 있는 과일이라는 것이 구원의 보편주의입니다. 이 구원의 보편주의는 사도행전에서 일관되게 이야기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구원의 보편주의를 선언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선교합니다. 지금까지 야훼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은 온 인류의 하느님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도회의가 열리다.>
예루살렘 사도회의 : 제 1차 예루살렘 공의회
바오로가 1차 선교여행을 갔다가 안티오키아에 돌아왔는데 일이 생깁니다.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사도 15,1)
예루살렘 모교회가 공식적으로 안티오키아로 보낸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방인들에게 유다교로의 개종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할례 : 하느님 백성의 표시
구원 : 예수께 대한 믿음과 복음 실천으로 충분한가?
율법의 규정을 다 지켜야 하는가?
지난 시간에 코르넬리우스 개종을 공부할 때 설명했습니다. 코르넬리우스 개종 이전에는 유다인들이 그리스도교인이 되려면 먼저 유다교로 입교하는 절차를 거쳐야했습니다.유다교로 개종하려면 할례를 받고 율법준수 서약을 해야했습니다. 그런데 그 절차가 무시되고, 이방교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절차도 없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보수적인 유다교 출신의 그리스도교신자들은 이방인출신신자들이 아무런 제제절차 없이 세례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유다교신자들은‘저 상놈들 그렇게 해서 구원받을까? 우리는 가장 하느님 백성답게 살았는데 저들은 할례도 받지 않았는데, 하느님의 백성이라고?“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다인들에게 할례는 하느님 백성의 일원이 된다는 표시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도 하례 안 받으면 하느님 백성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보수적인 유다인들은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할례를 안 받고 율법준수 서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적인 유다인들이 안티오키아 교회에 가서 구원받으려면 하느님 백성이 되는 절차를 밟으라고 이야기합니다. 구원의 문제라서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이방인들로서는 열심히 예수님 믿고 있는데,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니 불안하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안티오키아 교회가 바오로와 바르나바 를 사절단으로 파견합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예루살렘에 가서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이방인 신자들의 할례와 율법 규정 준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열린 회의로 그리스도교 최초의 공의회라고 말합니다.(제일 유명한 공의회는 최근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 공의회는 전 세계의 주교들이 모여서 교회에 당면한 신학적문제와 중요한 신자들의 문제를 다루는 회의입니다.)
베드로 : 코르넬리우스의 개종사건을 상기시키고
이방인 입교 문제는 하느님의 결정으로 일단락되었음을 일깨워
으뜸 사도인 베드로 사도가 먼저 연설을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코르넬리우스 개종 때 성령께서 절차를 무시하고 이방인들을 하느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음을 상기시킵니다.
야고보의 지침
베드로 사도가 분위기를 먼저 잡은 후에 야고보가 이야기합니다.
여기 나오는 야고보는 순교한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성경에 예수님의 형제로 나오는 야고보입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원로였고,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를 이끄는 실질적인 책임자입니다.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사도행전 15,19-20)
야고보는 양쪽을 향해 이야기합니다. 유다인 신자들은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 곧바로 그리스도교에 입교하는 것을 인정하고, 이방인 신자들은 유다인 신자들에게 혐오감을 줄 만한 행동을 자제하도록 결정합니다.
더러워진 음식물 : 이교신전에 제사를 바친 다음 내다파는 음식
유다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더러워진 음식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음식에 대한 규약이 까다로웠습니다. 특히 이방인들이 제우스 신전 같은 곳에서 제사 지낸 다음에 내다 파는 음식은 불결한 음식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인에게는 고기잡는 법이 따로 있었습니다. (아랍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비행기 타면 국적을 물어서 이스라엘 방식으로 잡은 고기를 제공하고, 아랍인들에게는 아랍식으로 잡은 고기를 제공합니다.)
불륜 :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성행하던 근친결혼
여기서 말하는 불륜은 근친결혼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사촌간 뿐만 아니라, 이모, 여동생, 고모 등과 결혼하며 엉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엄격하게 가릅니다. 유다인들은 이방인들의 결혼풍습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야고보는 이방인출신 신자들에게 그런 결혼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뒤섞인 공동체들에서 발생하는 사목적 문제
피를 빼지 않은 고기, 피 : 피는 생명을 상징, 유다인들의 금기식품
짐승을 잡을 때 목을 졸라 잡으면 피가 배어있게 됩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하므로, 유다인들은 반드시 목을 베서 피를 흘리게 한 후에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런 문제는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섞여 생활하는 안티오키아 교회 공동체의 사목적 문제가 됩니다. 예루살렘교회 공동체에서는 공동식사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지역의 교회 공동체에서는 유다인 출신 신자들이 이방인 출신 신자들과 같이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공동체인데 실질적으로는 배타적으로 살게 되고 공동체 일치가 안되었습니다. 그런 사목적인 문제를 해소시키려 안티오키아 지역에 편지를 보내자고 합니다.
유다인 신자들 :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일 것
이방인 신자들 : 형제애를 발휘할 것
유다인 신자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방인 신자들은 형제애를 발휘하라는 권고를 안티오키아 공동체가 받아들입니다. 루카는 성품이 착하고 평화주의자라 원만하게 해결된 것처럼 부드럽게 묘사했지만 그 문제는 잠복되어 있었습니다. 불같은 성격의 바오로 사도는 나중에 갈리티아서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시 언급합니다.
< 바오로 제 2차 선교여행 >
사도 15,36 - 18,22(기원 후 50 - 52년)
안티오키아 - 데르베 - 리스트라 - 이코니온 - 트로아스 - 네아폴리스 - 필리피 - 암피폴리스 - 아폴로니아 - 테살로니카 - 베로이아 - 아테네 - 코린도 - 에페소 - 카이사리아 - 예루살렘 - 안티오키아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로이아.
2차 선교여행 때 처음으로 유럽지역을 선교합니다.
2차선교 여행 때 최초로 유럽에 세워진 그리스도신자 공동체가 필리피입니다. 바오로는 필리피에서 로마인들에게 핍박을 당하자 테살로니카로 도망가서 선교합니다. 다시 데살로니카에서 핍박을 당하자, 베로이아로 가서 선교합니다. 바오로사도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필리피와 테살로니카와 베로이아에에 공동체를 설립할 정도로 열성적이었습니다.
아테네에서 선교하다.
아테네 - 회당과 광장에서 토론
아테네 - 그리스 사상과 문화의 중심지
2차 선교여행에서 중요한 곳이 아테네입니다.
아테네에는 광장문화가 발달했습니다. 바오로 시대에는 인구 5000 정도의 중소도시로 전락했지만 아테네는 알렉산더 대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철학을 세웠던 도시였습니다. 아테네인들은 문화적인 자긍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레오파고 언덕 : 시의회와 법정으로 이용
아테네인들은 아레오파고 언덕으로 바오로를 불러서 토론을 합니다. 아레오파고는 시의회와 법정으로 이용되던 언덕입니다. (사진을 보시면) 아레오파고 언덕으로 올라가려면 이런 돌계단을 올라가야했습니다. 성지순례를 가보시면 이 돌계단 옆에 바오로 사도의 설교문이 새겨져있습니다.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사도 17,23)
복음선교의 기본틀을 보여준 사례
“알지 못하는 신” - 생명을 주시는 참된 하느님
그리스적 용어와 사상을 도입하여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
예수님의 부활이야기 : 이성적 사고의 그리스인들은 거부감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바오로가 설교를 합니다. 그리스는 다신교입니다. 시내 곳곳에 비너스 신전, 제우스, 아폴로.등등의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이름도 모르는 신에게 바치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바오로는 아테네 사람들의 다신교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심을 바탕으로 해서 설교를 시작한 것입니다. 바오로는 아테네인들이 알지도 못하고 섬겼던 신이 바로 하느님이시라고 말합니다. 그 하느님은 생명을 주신 창조주이시라고 말합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구약을 모릅니다.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라고 설명해도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그리스 시인들이 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논리전개 하듯이 하느님과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리스 사람들은 죽은 이의 부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이론적, 논리적, 질서정연한 사상체계를 가지고 있던 그리스인들에게 메시아의 부활은 정말로 먹혀들어가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아테네 선교는 크게 성공하지 못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아테네 선교에서 배울 점은 선교사가 다른 나라에서 선교할 때 우월의식을 가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제사를 못 지내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제사는 신을 숭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효’의 의미가 더 강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선교사들은 바탕에 깔려있는‘효’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금지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박해를 자초했음을 선교학적으로 반성해야 합니다.)
바오로는 문화와 관습이 다른 곳에서 어떻게 선교하는지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린토에서 선교하다.
바오로는 아테네에서 큰 성공을 못하고 코린토로 가서 선교합니다.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무려 18개월간 머물면서 선교했습니다. 긴 기간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선교활동 - 유다인들의 반대와 모욕
안식일에 회당에서 선교활동을 했는데, 코린토에서도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반대하고 모욕 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에서 악전고투할 때 꿈을 꿉니다.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바오로에게 이르셨다. “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사도 18,9-10)
코린토에서 유다인들이 반대가 많았지만 많은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바오로는 나중에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씁니다. 코린토 교회는 바오로가 18개월 동안 선교하면서 애착을 많이 가졌던 교회입니다.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바오로의 코린토에 대한 애틋한 마음, 준열한 꾸짖음이 담겨있습니다. 사랑을 쏟았는데 잘못되면 더 마음이 아프고 더 질책을 하게 되지요.)
유다인들의 고발을 무시하는 로마당국
코린토에서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고발합니다. 로마당국은 유다인들의 율법싸움이 싫증나서 유다인들끼리 해결하라고 문제삼지 않습니다.
<바오로 제 3차 선교여행>
사도 18,23-21,16 (기원후 53-58년)
안티오키아 - 에페소 - 제 2차 선교 여행 때 갔던 길을 따라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에 있는 교회 공동체들을 방문 - 코린토 - 트로아스 - 밀레토스 - 로도스 섬 - 띠로 - 프톨레마이스 - 카이사리아 - 예루살렘
에페소에서 선교하다.
에페소 : 소아시아의 수도
에페소는 로마에서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가장 중요한 도시
에페소는 알렉산드리오와 함께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입니다. 에페소 유적으로 거대한 도서관이 남아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도 거대한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두 도시는 학문의 전당, 사상적으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석달동안 회당을 드나들며 설교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석달 동안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이 회중 앞에서 주님의 길을 헐뜯으며 고집스럽게 믿지 않으려 하자, 바오로는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데리고 날마다 티란노스 학원에서 토론을 벌였다.”(18,9-10)
바오로는 유다인들에게 석달 동안 공을 들였는데 유다인들이 거부하니까 티란노스 학원으로 갑니다. 티란노스 학원은 그리스사상교육을 하는 아카데미입니다.
유다인 회당은 그리스도 복음을 선포할 장소에서 제외되고, 그리스 사상을 전하던 아카데미에서 그리스도 복음이 선포되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변화입니다. 복음은 점점 온 인류로 퍼지며 이방인들이 중심이 되게 됩니다.
병자치유과 구마
바오로가 에페소에서 병자치유와 구마를 하니,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믿게 됩니다. 에페소의 마술쟁이들도 믿게 되고 이런 해프닝이 일어납니다.
“또 마술을 부리던 자들 가운데 많은 이가 자기 책들을 모아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라 버렸다. 그 책들을 값으로 따져 보니 은돈 오만 냥 어치나 되었다.”(사도 19,19-20)
당시의 마술가는 오늘마술사처럼 카드마술 따위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모세를 파라오에게 보냈는데 지팡이를 던지면 뱀이 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마술은 특별한 권능, 신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그 시대에 신들을 팔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들의 장사밑천이 그런 책입니다. 그 책을 값으로 따지면 오만냥이었다고 합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팔고 은전 30냥을 받았는데, 비교해보면 얼마나 큰 돈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그리스도의 복음은 금전, 눈속임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페소 은장이들이 소동을 벌입니다.
“ 그래서 우리의 사업이 나쁜 평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전도 무시를 당하고, 마침내 온 아시아와 온 세상이 숭배하는 이 여신께서 위엄마저 상실하실 위험에 놓였습니다.”(사도 19,27)
아르테미스 여신은 풍요의 여신으로 에페소의 수호신이었습니다. 가슴이 18개인 여신이었습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원전 560-546년경부터 120년 걸려 완성되었습니다. 아르테미스 신전을 기리는 신전이 고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입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기원전 356년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 규모로 재건됩니다. 아르테미스신전이 불에 타자, 에페소 사람들은 그 당시 가장 유명한 신전인 파르테논 신전의 두배 규모로 재건했습니다. 높이 20미터짜리 대리석 기둥을 126개 세웠습니다. 화려했던 아르테미스 신전은 지금은 기둥 하나 남아있습니다. 이 아르테미스 신전이 화려하고 좋으니까 은세공업자들이 기념품으로 팔려고 은으로 조각을 했습니다. (석가탑 다보탑 조각을 팔듯이) 은세공업자들이 아르테미스 신전 조각을 만들어 돈을 많이 벌었는데 바오로가 우상이라고 하면 장사를 못하게 되니 소동을 일으킵니다. 은세공업자들이 바오로를 처벌해달라고 합니다. 로마총독이 알아보니 바오로가 잘못이 없고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어서 바오로를 풀어줍니다.
에페소 원로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다.
“바오로는 밀레토스에서 에페소로 사람을 보내어 그 교회의 원로들을 불러오게 하였다.”(사도 20,17)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설교한 후에 밀레토스에 가서 에페소의 원로들을 부릅니다. 바오로가 에페소 바로 갈 수도 있었는데 예루살렘에 급히 가야했습니다. 에페소로 가면 시간이 걸리니 가까운 밀레토스 항구에서 원로들을 부릅니다.
원로들 Presbyteros에서 사제 Priest (신부님을 영어로 부르는 말)라는 말이 나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지역교회에서 일을 하는 원로들을 세웠습니다. 원로들이란 말은 Presbyteros입니다. 신부님, Priest의 어원이 됩니다. 즉, 바오로가 에페소의 원로들을 부른 것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주교님이 본당 신부님들을 부른 것과 같습니다.
성직자들을 향한 설교
바오로는 원로들에게 목자로서 교회공동체를 잘 이끌어가라고 당부합니다.
“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사도 20,28)
바오로는 밀레토스에서 애절한 마음으로 고별설교를 합니다. 성직자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성전에서 체포되다.>
바오로 죄목 - 유다교 비방, 성전에 이방인 동행
에페소 원로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난 후에 바오로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갑니다. 터키지역에서 선교할 때 바오로를 해쳤던 사람들이 바오로를 고발합니다. 그들이 바오로를 고발하고 죽이려고 끌고 나옵니다. 소동이 벌어지면 진압할 책임이 로마 천인대장에게 있습니다. 천인대장이 난동이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로마 천인대장 : 유다인들의 살해 음모로 바오로를 카이사리아로 호송
로마 천인대장이 바오로를 보니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오로에게 변호할 기회를 주니, 바오로가 회심한 이야기와 예수님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도 유다인들은 바오로를 죽이라고 합니다. 천인대장은 바오로가 로마시민권이라서 풀어주려고 했는데, 유다인들이 암살하려 합니다. 천인대장은 로마시민권자가 죽게 될 것이 두려워서 바오로를 로마총독이 있는 카이사리아로 보냅니다.
카이사리아에서 2년동안 미결수로 감옥생활
예루살렘으로 압송될 위기에 처하자 로마황제에게 상소
바오로는 카이사리아에서 2년 동안 미결수로 감옥생활을 합니다. 카이사리아에 주둔한 총독이 처음에는 호의적인 사람이었다가 유다인들에게 비위 맞추는 총독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총독이 바오로를 예루살렘으로 송환시키려고 합니다. 송환되면 죽을 것이니, 바오로는 로마 황제에게 상소합니다. 바오로는 로마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러 로마로 갑니다.
<로마로 호송되다.>
사도 27,1-28,16 (기원 후 60-61년)
카이사리아 - 시돈 - 리키아의 미라 - 크레타 섬의 ‘좋은 항구들’ - 페닉스 항구로 가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 몰타 섬까지 밀려가서 좌초 - 시라쿠사 - 레기움 - 푸테올리 - 로마
로마로 가는 도중에 배가 풍랑에 휩쓸립니다. 지중해 지역은 바람이 셉니다. 몰타섬까지 흘러가서 그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간신히 로마에 도착합니다. 로마에서 바오로는 셋집을 얻어 살았는데, 경비병하나 딸리기는 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을 제한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 죄수로 갔지만 선교를 하게 됩니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사도 28,30-31)
바오로는 죄인의 몸이였지만 자유스럽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렇게 바오로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사도행전에서 첫 부분에서 했던 이야기. 교회의 보편적인 선교사명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회의 보편적 사명 성취>
바오로의 로마 선교는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내리신 교회의 보편적 사명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선교 활동은 예루살렘에서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까지 이르는 대장정을 이룬 것입니다. 바오로의 로마선교로서 예수님께서 승천 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명령이자 예언이 되었습니다.
“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
사도행전 맨 첫머리에 얘기했던 교회의 사명이 베드로와 바오로로 인해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사도가 함께 로마교회를 세웠다고 합니다. 둘 다 로마에서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64년 로마 대화재 때 네로황제의 교회 박해가 있었습니다. 네로가 방화책임을 그리스도 신자에게 뒤집어 씌워서 대대적인 박해를 했습니다. 네로는 그리스도교인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베드로는 반역자들을 죽이는 로마법에 의해 십자가에 처형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처럼 똑바로 박힐 수 없다고 하여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바오로는 로마시민권자였습니다. 로마시민권자는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형에 처하지 않습니다. 십자가형이 당시 가장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바오로사도는 참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사도행전의 교훈>
초대교회의 삶과 문제점
외적 팽창과 내실의 불균형
빈부격차, 인종과 관습과 문화의 장벽
세상권력의 박해를 생생하게 묘사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삶을 생생하게 소개하면서 몇몇 문제점들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즉 외적 팽창과 내실의 불균형, 빈부 격차, 인종과 관습과 문화의 장벽, 참다운 목자의 부재, 세상 권력으로부터의 박해 등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교회가 존재하는 곳이면 언제 어디나 따라다니는 문제들이기에 사도행전은 여전히 오늘의 우리에게 실천적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시간부터는 서간문을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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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신부님 말씀입니다. 지중해지역의 지도가 이제 상당히 익숙해졌지요?.... 중략...한국은 2000년 전에 석기시대였습니다. ....중략......신약공부하면서 세계사를 보면 좋을 것입니다. 낼 아침부터 1독서에 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미사의 독서를 들으면 영성적으로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
많은 분들이 성지순례를 신청하셨습니다. 저도 내년 1월에 성지순례에서 지중해의 자연경관과 풍요로운 문화를 곧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설레였는데,,,,,, 요즘 우리나라의 경제상황 때문에 고민하다가 해외 성지순례는 무기한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신청하신 분들께 죄송합니다............... )
♡♡♡♡♡김양진 선생님, 햇살 신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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