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의 복음서 [The Gospel According to Mark]
신약성서의 두 번째 책.
구분 복음서
저자 마르코
마르코가 67~70년 무렵 개종한 이교도와 로마 교회 신자를 위하여 쓴 복음서이다. 《마가복음》이라고도 한다. 《마태오의 복음서》 《루가의 복음서》와 함께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로 불린다. 16장으로 되어 있어 공관복음서 중 가장 짧으나, 복음서 가운데 맨 먼저 쓰여져 다른 복음서들이 이를 참조한 것으로 추측된다.
베드로에게서 들은 자료를 근거로 하여 그리스어로 쓴 것으로, 문체가 소박하고 간결하며, 수식이 없어 문장에 박력이 있다. 내용은 예수의 전도 전야부터 시작하여 그가 부활하는 아침까지를 다루고 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나타난 하느님의 아들임을 전제하고, 이를 예수가 세례받을 때(1:9~10), 변화산 위에서(9:2), 백부장의 고백(15:39), 또 사탄까지도 복종하는 등의 이야기를 통하여 확증시키려 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종의 자세로 봉사하다가(1:1~10:52), 희생되고(11:1~15:47), 승리하는 사실(16:1~20)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마태오 ·요한과는 달리 예수탄생은 물론 그의 설교내용도 일체 쓰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의 업적만을 생생히 묘사한 데 있다. 2007-07-03
08:08:07
김 레지나
마르코 성인은 사도행전과 바오로 사도의 편지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편지를 통하여 생애가 알려져 있는 복음사가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바르나바 성인의 사촌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콜로 4,10 참조). 그는 바르나바와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행에 함께하며 복음을 선포하였고(2티모 4,11; 필레 24 참조) 베드로 사도와 함께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마르코는 자신보다 더 잘 알려진 사도들과 동행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보다는 이들 사도들의 뒤에서 봉사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렇게 봉사자로서 복음을 전한 마르코는 70년경, 베드로가 로마에서 펼친 교리교육의 자료들과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자료를 모아 마르코 복음을 기술하였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필체와 신학 사상을 가지고 복음서를 저술하였으며, 이는 이후 100년경 마태오와 루카 복음을 탄생하게 하는 기틀이 됩니다. 마르코 성인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창립자로 알려져 오고 있습니다 2007-07-03
08:14:23
김 레지나
마르코 행적---베드로에게 아들 이라고 여겨질정도로 친근하였다. 라는 구절이 있네요. ^^
마르코는 본래 리비아 근교 펜타폴리스의 시렌 출신의 이교도 출신으로 나중에 사도들의 설교로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다고 한다. 신약성서에는 마르코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되는 요한 마르코라는 인물이 열 번 나오는데(사도 12,12.25;15,37) 요한은 이스라엘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라틴어·그리스어식 이름이다. 비슷한 예로 일부에서는 개명한 이름으로 오해하는 사도 바울로도 바울로라는 그리스어식 이름과 사울이라는 히브리어식 이름을 모두 갖고 있다. 하여간 마르코는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 집에 그리스도인들이 모이곤 하였다. 바울로와 삼촌인 바르나바를 따라 45년-49년경 제 1차 전도 여행을 함께 했는데 키프로스 섬까지 동행한 후 그 다음 목적지인 소아시아의 주요 지역 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에 대해서 일부 성서연구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 최후의 만찬 장소를 제공할 정도로 부유한 집에서 자란 마르코가 힘겨운 전도 여행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이에 곧은 성격의 바울로가 50년-52년경의 제2차 전도 여행 때 동행하기를 거부하자 마르코는 삼촌인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 섬으로 가 전도하였다. 그러나 53년-58년경의 제2차 전도 여행 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울로가 에페소스에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마르코는 바울로의 곁에 있어서 위로가 되어 주었다. 한편 바울로가 마지막으로 로마에 투옥당해 있을 때 디모테오에게 마르코를 데려오도록 부탁한 적이 있다. 베드로의 일행으로 로마에 있었던 마르코는 베드로에게 ‘나의 아들’이라 여겨질 정도로 친근한 동료였다.
성 마르코의 순교마르코는 베드로의 통역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언행과 행적에 관해서 가르친 것을 기억나는 대로 충실히 기록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서학자들은 19세기 이후 마르코 복음서를 비롯한 복음서들이 역사적 예수가 아닌 교리적 예수를 소개한다는 점에서 과연 사도들에게 직접 예수의 언행과 행적을 듣고 쓴 역사성을 가진 문서인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마르코는 다른 복음사가인 루카처럼 사도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예수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는지 현재로서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어떤 학자들은 그가 복음서에서 게쎄마네에서 예수의 체포에 관해 적을 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이라는 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몸에 고운 삼베만을 두른 젊은이가 예수를 따라가다가 사람들에게 붙들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마르 14,51)
전승에 의하면 마르코는 58년과 62년 사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을 때 이곳에 복음을 전했으며 교회를 설립하여 그 곳의 초대 주교를 역임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68년에 복음 전파를 막으려는 이교도들에게 끈에 의해 목이 묶여 도시 전체를 끌려다니며 돌팔매질을 당하는 고문 끝에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9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한 성당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며, 828년 베네치아 공화국의 상인들이 시신을 돼지고기 밑에 몰래 숨겨 들여와서 베네치아에 옮겼다. 그리고 산 마르코 대성당의 제단에 안치하여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 성인이 되었다. 베네치아의 깃발은 마르코를 상징하는 앞발로 성서를 잡은 날개가 달린 사자가 그려져 있으며, 산 마르코 광장을 비롯하여 베네치아의 세력이 미친 곳에는 지금도 날개가 달린 사자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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