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기억할 글

언젠가 떠나야 할 그날에.....- 홍윤숙

김레지나 2008. 8. 28. 22:30

언젠가 떠나야 할 그날에.......



내가 지상을 마지막 떠나는 날은

꽃 피는 춘삼월 어느 아침이거나

만산 홍엽으로 물들어 불 타오르는

가을 햇빛 속이면 좋겠다.



머리 맡에 사랑하는 가족들 둘러 앉고

부엌에서 한 생애 손때 묻은 놋주전자

달달달 물 끓는 소리 들리고



그레고리안 성가 한 소절 잔잔히 흐르는

향불 사이 사이 슬로우 비디오로 돌아가는

한 생애 필름 간간히 끊어지는 순간순간들

흰 벽지 위의 예수님 고상을 바라보며

스르르 문풍지에 바람자듯 잠들면 좋겠다.



마지막 순간까지 묵주알 손에 쥐고 성모송

외우다 창호지에 저녁 햇살 지워지듯

그렇게 고요히 지워지면 좋겠다.



예수님이 보내신 천사의 손을 잡고

어둡고 긴 묘지에 터널을 지나면

산과 들을 건너 비로소 열리는

광활한 빛의 나라



애정도 이별도 생사고락도 다시는

없는나라 주님 홀로 지키시는 천국의

문으로 들어가면 좋겠다.



세상의 덧없는것들 부귀 영화 허영

따위 허물처럼 벗어놓고

영원히 불변하는 혼 하나로

아버지의 집으로 가야한다.



한 생애 무거운 빚 죽음으로

청산하면 새로 떠날 영원의

나그네길 가벼우리라.



그 길 함께 동행하실 분이 계시니

더욱 천상의 여로는 따뜻하리라.

머지 않아 떠날 천국의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오늘도

나의 지상의 삶은 분주하다.



홍윤숙 님의 글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