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신부님들 말씀

레지오 단원 교육 - 김민석 신부님

김레지나 2008. 8. 28. 22:22

레지오 단원 교육 (강의 듣고 정리한 내용입니다.^^)


김민석 (루도비꼬) 신부님


레지오는 무엇을 하는 단체인가?

레지오는 아일랜드인 프랭크 더프에 의해서 창설되었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원래 빈첸시오 회원이었습니다. 빈첸시오회는 1차 세계대전 후에 많은 활동을 했는데 산부인과 병원에 남자들을 보낼 수가 없어서 여성회원을 모집하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한 여성이 성모마리아상을 가지고 왔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그때 사명을 느끼고, 모인 12명의 여성회원들과 함께 레지오 마리애를 결성했습니다.


빈첸시오회는 기도하고, 몸으로 봉사하고,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털어서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는 단체입니다.

레지오는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통해 이웃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은총을 받게 하려는 단체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입니다. 레지오는 성모마리아를 통해서 뭐든 이루려는 단체입니다. 성모님을 통하면 하느님께 직접 청하는 것보다 더 잘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이치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한테 무엇을 부탁하려면 직접 하는 것보다 그 사람과 잘 아는 사람을 통해서 부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53년에 목포 산정동 성당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레지오 가 생겼습니다. (그 당시 계시던 골롬반회 신부님들 중에는 아일랜드인들이 많았습니다. )


레지오가 많은 외적인 팽창을 했지만, 양적으로 팽창되어 있다고 해서 그 조직이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속도 꽉 차야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레지오가 활성화될 수 있을까요?

레지오 사명이자 목적은 선교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이 선교하지 않는다면 레지오는 친목단체에 불과합니다. 죽집에서 2차 주회하는 등, 친목을 다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레지오의 요구를 요약하는 첫째 가는 명령은 기도와 활동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명령은 수도자들의 정신과도 같습니다. 기도는 레지오 단원들의 가장 1차적인 의무입니다. 교우라면 숨을 쉬듯이 기도해야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참 하느님이심을 순간순간 인식해야 합니다.

단장님들은 단원들의 영적성숙상태에 따라서 기도의 단계를 구별해서 규율과 의무를 단원들에게 지워야합니다. 레지오 단원들에게는 매일 미사참례할 것, 성무일도할 것, 묵주기도 할 것,이 권장됩니다. 특히 매일 성체를 모시기를 바랍니다. 성체는 우리 영적인 양식이라는 의식이 뿌리박혀 있어야 합니다.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께서는 “우리가 성체가 무엇인지 안다면 얼마나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인가?......(못 받아썼습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안다면 성체를 모심으로써 영적인 성숙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미사참례는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수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보다 성체성사의 신비에 가까운 분은 없습니다. 루도비꼬 성인께서는 “성체를 영한 후에 예수님을 마리아 안으로 맡겨라........(못 받아썼습니다.) 얼마나 복된 대리행사인가?”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부모님께 전화할 때 아빠가 받으시면 엄마를 바꾸어 달라고 합니다. 엄마가 아빠보다는 친하기 때문입니다. 엄마에게는 자초지종 설명을 안 해도 다 알아들으십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어머니의 좋아하시는 일을 하면 기뻐하십니다. 살기 바쁘고, 내 가정 챙기기 바빠서 우리는 성모 마리아의 마음을 못 헤아리고 있습니다.

성모님은 변하기 쉽고, 변변치 못한 우리의 애정보다 더 나은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가 아빠한테 선물을 드리면 “뭐, 이런 걸” 하시지만 엄마를 통해서 아빠에게 선물을 드리면 “우리.. 막내가 지 살기도 힘들 텐데.. 어렵게 구해서 가져왔어요..” 하고 말씀하시면서 전해주십니다. 선물을 받는 아빠는 엄마말씀에 더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인간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성모님을 우리의 엄마처럼, 인간적인 감정으로 대하면 우리는 성모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성체를 영하고 영적인 활력을 얻어야 합니다.

관상의 최고 경지는 신적인 합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과의 합일은 평생을 기도하고 노력해도 얻기 힘듭니다. 하지만 누구나 하느님과 하나될 수 있는 방법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성체입니다. 우리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우리들 안에 오시는 것입니다.

다만, 성체를 우리 영혼을 성숙시키는 일용할 양식이라는 믿음을 갖고 모시는가?

     성체를 모시기에 합당하도록 나 자신을 꾸미는가? 가 중요합니다.

영성체 하는 모습을 보면 성체에 대한 마음자세를 읽을 수 있습니다. 성체에 다가갈 수록 설레이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오늘도 부족하고 비천한 내 안에 예수님께서 오시는구나.’하구요. 미사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미사성제를 제대로 못 드리는 사람이 레지오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기도는 미사입니다. 하느님을 가장 찐하게 만나는 것이 영성체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느님으로 꽉 채우는 일을 마리아를 통해서 하는 것일 뿐입니다.

레지오 미사에 빠지고 주회만 참석하면 안 됩니다. 미사가 더 중요하지 레지오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전교의 목적과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사지향으로 ‘아무개의 합격’을 위해서‘라고 미사봉헌을 합니다. 기도지향으로는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개가 시험에 붙으면 대신 다른 한 사람이 시험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선교를 할 때에도 기복신앙을 앞세우면 안됩니다. “너 성당 나와서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는 식으로 선교해서, 그런 자세를 갖고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살다가 어려움이 닥치고, 하느님께서 그 어려움을 해결해주시지 않으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현세적인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현세에서 잘되고 잘못되고,, 하도록 개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에 하느님께서 현세에 개입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살아남을 자가 한 명도 없습니다. 인간들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신다면 살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확실한 방법은 죽음입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껍데기를 벗고 죽음 이후에야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거룩한 것을 만나면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죽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우리의 현세의 삶에 개입하시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합니다.

선교할 때는 성체성사를 이야기하십시오. 카톨릭만의 매력은 성체성사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서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는 성경만 붙들고 삽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은 자기식대로입니다. 카톨릭에서는 교회가 요구하는 대로의 만남이 성체성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성체성사와 성사의 은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선교해야합니다.

미사드리면 좋으니까 , 미사 드리면 하루가 기쁘니까. 매일 미사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매일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묵주기도 각 단의 신비를 묵상하고 그 신비 속에 내 마음을 합치하고 고무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황 비오 10세 께서는 “묵주기도만큼 아름답고 은총을 많이 내리게 하는 기도는 없다..... (못 받아적었습니다.).. 묵주를 사랑하고 정성스럽게 바치십시오. 내가 마지막 남기는 유언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환희의 신비 1단은 하느님과 마리아의 일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영광의 신비 5단도 하느님과마리아의 일치입니다. 묵주기도의 맨 처음 신비와 마지막 신비는 하느님과 마리아의 일치에 대해서입니다.

분심이 드는 것을 억제하고, 정성과 절실함을 가지고 묵주기도를 해야합니다.

카톨릭의 기도문들은 낱말 하나 하나에 신학과 신앙이 깃들어 있습니다. 보고하기 위해서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향을 갖고 정성을 다해서 기도하십시오. 묵주기도가 하나의 신비인 것은 그 기도가 우리의 기도라기 보다는 마리아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묵주알을 굴리면 마리아는 우리기도를 하느님만이 들을 수 있는 노래로 바꾸어주십니다.

축음기가 돌아가면서 바늘 끝에서 음악이 나옵니다. 들을 줄 아는 사람은 아름다운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음악 소리가 방에 가득 차게 됩니다.  묵주기도는 축음기에 바늘을 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묵주기도를 하면..... 성모님께서 나를 위해  하느님께 ‘알렐루야’ ‘이루어 지소서’,, ‘영광’.,,...‘아멘’,,을 노래하십니다. 묵주기도의 신비를 마리아와 함께 노래하는 것입니다.


레지오 단원들은 충실하게 봉사할 것을 서약합니다.

선교는 하느님의 사업입니다. 봉사한다는 것은 가족들끼리 모여있는 단란한 저녁시간일지라도 외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교하면서 상대방이 어떻게 대할지 모르면서도 이 문 저문 두드리는 것, 거절당하는 것을 웃음으로 받아들이고,,,,, .. 선교할 때는 자존심을 버려야합니다. 환자방문이나 연도는 가장 쉬운 활동입니다. 냉담자 회두권면, 외인 권면이 대표적인 활동이 되어야합니다. 냉담자나 외인들을 상대하면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낚시에서 대어를 잡으려면 매일 같은 시간에 포인트에 가서 밥을 줍니다. 열흘 쯤 그렇게 하다가 낚시를 드리우면 큰 고기가 잡힙니다. 2인 1조로 대상자를 선정하여 꾸준히 권면하십시오. 그 사람이 주로 오가는 길목, 한가한 시간대, 무엇을 좋아하는가.. 등등을 파악하시는 것이 우선입니다. 처음부터 성당 나오라고 하지 말고, 또 한 번 말해서 안된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먼저 그에 대해 알아보고, 차 한잔을 나누거나 집을 방문하게 되면 50%는 성공한 것입니다. 혹시나 그들이 그들의 애환을 이야기하면, 그 때 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나는 신앙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잘못되었을 것이다. 하느님을 믿으니까 정말 좋더라...... 등등... 그런데,, 같이 성당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나? 지금 당장 가자는 말은 아니다.. 마음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 해라......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좋겠지요. 중요한 것은 선교하실 때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구전의 힘은 기도에서 나옵니다. 기도하시고 선교에 임하십시오.


한 쁘레시띠움에서 부활이나 성탄 때에 1사람 씩을 대상자로 선정해서,,, 세례 받을 때까지 관리해야하고, 세례 받은 후에도 그 쁘레시띠움에 입단을 권유하는 등,,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예비자 입교식 때 보면 신자들끼리 모여서 아는 사람끼리 수다 떨고, 예비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미사 때에도 전례가 너무 복잡해서 어려운데,, 아무도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 관심 부족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성당에 나왔다가도 포기하게 됩니다. 서로 전화번호도 나누고, 전례도 가르쳐주시고, 전화하셔서 “다음 주에도 나오실래요? 저는 어디 어디 살고 있어요..” “미사에 안 보이시대요. 저녁미사 하셨어요? 다음 교중미사때에는 기다릴께요..”라고 챙겨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야합니다.


레지오 단장님들은 단원들을 컨트롤을 잘해야 합니다. 레지오 활동의 생명은 순명하는 것입니다. 레지오는 군대입니다. 레지오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간부를 해야합니다. 경험이 풍부해야 많은 사람을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레지오를 3년 이상은 해야 단장을 할 수 있습니다. 세례 받은지 얼마 안되는 사람에게  “너 젊고 눈 좋은께 니가 서기해라...”하면 안됩니다.

레지오는 계속 커져서 5년 안에 분가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멤버가 5년 이상 모여서 계모임 하듯이 지내면 안됩니다.

단장은 매주 활동할 거리를 주어야합니다. 입교 대상자 선정도 함께 하고, 활동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엮어주어야합니다.

자식들이 장성해서 앞가림하고 사는 것처럼 뿌듯한 일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쁘레시띠움에서 입교시킨 신자들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능력과 축복을 주신 것은 내가 이쁘거나 잘나서가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너를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정신이고, 하느님께서 수난하고 죽으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축복을 전하지 않으면 우리가 받은 축복과 달란트 때문에 “내가 가진 것마저 뺏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있는 자에게 더 주십니다. 나누는 사람에게 더 많은 축복을 주십니다. 충실한 활동을 하지 못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하느님 앞에서 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