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기억할 글

하느님, 제 사랑 받으셨지요? / 최희 마리나 아나운서

김레지나 2018. 6. 29. 16:42

  지난해 청년 성서 모임을 통해 창세기와 탈출기를 함께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천주교 방송인 모임을 통해서 알게 된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성서 공부를 했습니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비슷한 고민에 서로 공감하며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매주 주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이 주신 또 하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저는 인간관계의 허탈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친구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상대에게 사랑을 주었는데, 그 관계가 끝나버렸을 때 드는 허무함은 저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시간과 정성의 낭비라 여겨졌고,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랑을 준다 하여도 관계가 끝나면 모든 것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이 슬펐기에,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들으신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상대에게 주었던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나요?” “네, 모두 사라졌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한참 동안 저를 바라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사라지지 않았어요. 마리나 자매님이 준 사랑은 상대방을 통해서 하느님께 다 전달되었습니다. 상대방이 그 사랑과 마음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 상대를 거쳐 하느님께 그대로 전달되었고 하느님은 이미 그것을 다 받으셨습니다.” 저는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제가 손해를 보고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랑을 주님께서 다 받으셨다니 정말 기뻤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사랑을 저에게도 다시 베풀어 주실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두려움도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설픈 계산을 하게 됩니다. ‘내가 너에게 이만큼을 주면 너도 나에게 이만큼을 돌려줘야 해’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곤 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줄 거야. 네가 이것을 나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해도 나는 상처받을까 두렵지 않아. 하느님께서 나에게 돌려주실 거니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사랑을 주는 것도 마음을 나누는 것도 더 이상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내어주는 것에 행복한 마음이 생깁니다.

   마태오 복음서 제22장에서는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대표하는 두 가지 계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두 번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느님은 분명 우리가 베풀었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내려주실 것이기에 우리는 상처받을까 두려워할 필요도, 손해를 볼까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늘도 저는 하느님께 묻곤 합니다. “하느님, 제 사랑 잘 받으셨죠? 사랑합니다.”

 

2018년 6월 10일 서울교구 주보, 말씀의 이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