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예수 오빠께서 누이야 부르시면’ 중에서 (백 젬마마리 수녀 지음/ 소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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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린 조지 여사와 나의 의심 (1)
20여 년간 전 세계 가톨릭 성령은사쇄신을 체험한 쉰 명이 넘는 강사들의 피정과 신학, 성서신학, 심리학 강의들을 통역을 한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해는 1986년 5월이었다. 전국 성령은사쇄신봉사회 총무로부터 아일린 죠지 Eileen George여사의 통역을 부탁받은 것이다. 나는 9일기도Novena를 하기로 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승천하신 다음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지 열흘 만에 성령의 강림을 체험한 이후로 9일기도의 전통이 생겨 2,000년 간 교회 안에서 계속되어 왔다.
’84년 한 달반 동안 로마에서 우리 수도회 ‘국제 만남의 주간’ 영성쇄신 프로그램 통역을 하였고 ’85년 9월 서울에서 제 7차 아시아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AMOR(Asian Meeting Of Religious) 전례위원으로서 열흘간 미사 및 전례를 위해 일하긴 했어도 전국을 순회하는 피정 통역은 처음이고 한 번에 몇 천 명, 또는 몇 만 명이나 되는 하느님의 백성 앞에 서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성령께 지혜와 힘을 구하는 기도를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봉사회 총무로부터 온 독촉 전화에 그제야 “예(Fiat)”를 하고 이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5월 18일 동대구역에서 아일린 여사를 만나 인사를 나누어보니 8남매의 어머니로서 임파선 암으로 네 번이나 수술을 하고 여전히 약을 복용하고 있는 분이었지만 고요하면서도 명랑한 성품으로 도무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대구효성여대(당시 선목신학교와 통합되어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강당에 섰다. 그곳은 ‘66년 수녀원 입회와 동시에 편입, 3년 간 공부하고’ 69년에 졸업한 나의 모교였다. 강당에 꽉 들어찬 천여 명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성령은사쇄신피정charismatic renewal retreat 강의를 통역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쉬운 말과 단순한 표현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열정적으로 강의한 한두 시간은 아주 흥미로웠고 아무 문제없이 지나갔는데 갑자기 아일린 여사가 “내 아빠하느님-My daddy God ”이라는 표현 - 그녀와 함께 있는 열흘 동안 수백 번도 더 들었다 - 과 함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로 시작하여 암, 백혈병, 당뇨, 고혈압, 가족들 관계, 두통, 복통, 전립선 등 온갖 병명을 들어가며 아픈 이들이 다 주님의 은총으로 치유되었다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환자 본인들이 여기저기서 무리 지어 두 손을 쳐들고 일어나 천여 명과 함께 환호하며 하느님을 찬양하는 뜨거운 성령의 열기에 휩싸였다.
- 백 젬마 마리 수녀 -
아일린 조지 여사와 나의 의심 (2)
하지만 나는 돌연 심한 의심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정말 사실인가? 만약 아니라면 저 신자들, 아픈 이들이 집에 가서 다시 병이 낫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어떻게 되나? 오순절 복음교회 개신교 신자들이 쓴 열 몇 권의 영어책에서 읽어본 적이 있는 현상이지만, 이게 정말 사실일까? 천주교 수녀인 내가 무지무지 엄청난 사기극에 휘말려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빠져나갈 수도 없고 큰일났다!”
그때부터 어떻게 무슨 정신으로 통역을 한 건지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나갔고 병이 나은 이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할 마음도 생기지 않고 걱정만 가득했다. 대구, 부산, 마산 피정과 대회를 치루는 동안 자연히 내 얼굴이 어두워지고 진퇴양난에 빠져 가능하면 혼자 있으려고 하였다.
마산 성지여고 강당에서 통역 중에 의심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져서 내가 여러 번 “다시 말씀해주세요.”를 반복하게 되자 아일린 여사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더니 손으로 마이크를 막고 찡그린 얼굴로 “도대체 뭐가 문제입니까? What's wrong with you?” 하고 좀 크게 소리를 질렀다. “Do you really love Jesus?” 라는 단순한 문장도 못 알아듣고 다시 물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아차! 이 사람이 내 속을 알아버렸구나. 쉬는 시간에 예수님과 담판을 지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앉아서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오빠예수님, 더는 못 참겠어요. 이분이 정말 하느님의 성령에 의해 말하고 행하는 건가요?” 하고 묻는 순간 거짓말처럼 모든 의심이 다 사라지고, 내가 그리스도의 적인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서 계속 의심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바로 나였구나! 하느님 사랑의 새로운 방식과 손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미적거리는 내 마음속 깊은 곳의 약점을 간파하고 마귀가 내 정신을 가지고 놀았구나! 오빠예수님, 아빠하느님, 죄송합니다. 한 순간도 방심을 할 수 없군요!”
그러자 다시 기쁨이 돌아와 강사인 아일린 여사와 환자들, 신자들과 함께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시며 사람들의 고통을 달래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찬양했고, 더욱 이런 하느님을 신뢰하도록 이끄는 아일린 여사의 능력과 경륜에 감탄하며 목포와 광주, 전주와 순천 피정까지 기쁨 중에 마쳤다.
아일린 조지 여사와 나의 의심 (3)
그런데 전주시 뉴 코어 호텔에서 짐을 풀고 피로한 몸을 누이려는 순간 갑자기 무겁고 슬픈 느낌이 들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슬픈 일이 없고 이유를 모르겠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도무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지난 번처럼 며칠씩 나 혼자 끙끙댈 게 아니라 온 존재가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한 아일린 여사에게 솔직히 말해보는 거다.” 라는 결심을 하고 “죄송하지만 5분만 만나 줄 수 있나요?” 하고 옆방으로 전화를 했다.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방문을 열어주는 아일린 여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 있는 나를 보더니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 “까닭도 모르면서 자꾸 눈물이 나서 잘 수가 없어요.” 하고 호소를 했다.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그녀가 정색을 하더니 “나를 공격할 수 없으니 마귀가 너를 쏘아 떨어트렸구나! The devil shot you down! 그토록 여러 도시에서 몇 만 명이 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성공적으로 전한 다음 눈물이 웬 말입니까? 감사하고 행복해야죠!”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동이 터오듯 이해가 되며 나도 모르게 “아!” 짧은 탄성이 새어나왔고 그때까지도 줄줄 흐르던 눈물이 거짓말처럼 싹 그쳤다. 믿음이 약하고 너무도 놀랍고 새로운 체험에 정신이 없는 내 마음을 이렇게 마귀가 가지고 놀다니! “오빠예수님, 사악한 영이 사람의 성품에도 영향을 끼치고 올바른 이성의 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하도록 속이기까지 할 수 있다는 걸 두 번이나 알게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정말 성경 말씀대로 마귀는 거짓의 아비로군요! 이 체험도 감사합니다!”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내 방으로 돌아와 즉시 단잠을 잤다.
대전, 음성 꽃동네, 증평을 거쳐 서울로 올라와 400명이 넘는 성직/수도자 세미나에 나도 참석할 예정이었는데 봉사회 총무가 다시 제의를 해왔다. 그동안 아일린 여사와 호흡을 맞추었으니 전체 진행, 세미나의 강의와 찬양 기도회를 총괄하는 MC가 되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경험도 없지만 성령께 맡기고 하자는 마음으로 쾌히 승낙했다.
- 백 젬마 마리 수녀 -
아일린 조지 여사와 나의 의심 (4)
아일린 여사가 강의를 시작하기 전 강사와 통역자를 위한 짧은 기도와 영가를 부르고 강의가 끝나면 400명 앞에서 그들과 함께 찬미의 기도회 중 노래하고 손뼉치고 찬양의 춤을 추는 일까지 해냈다. 여고 3학년 무용 시험을 쳤을 때 ‘수우미양가’ 평가에서 ‘양’을 받은 이후 남 앞에서 팔을 들어올리거나 흔드는 것을 지극히 부끄러워하고 영락없이 도망치곤 했는데 어쩐 일인지 뻣뻣한 대로 그냥 자연스럽게 흔들어대며 이틀 간 주님을 찬미하러 명동주교좌대성당 문화관에 모인 400여 명의 사제들, 수녀들 앞에서, 하느님 앞에서, 천진한 아이로 돌아가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면 제일 앞줄에 앉아 들었는데 갑자기 아일린 여사가 나에게 너무나도 다정한 시선을 고정시키더니 “하느님께서 너에게 자신감과 성령의 큰 힘을 넣어주고 계신다.” God is infusing you self-confidence and the great strength of the Holy Spirit!” 하고 말했다.
그것은 마치 18일부터 여사와 함께 한 두 주일 간 여러 도시에서의 내 모든 행동과 생각, 느낌과 경험, 그리고 그 때부터 20여 년간 내가 만난 모든 세계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과 그들을 통한 모든 은총의 사건과 체험을,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십여 개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난 은혜로운 만남과 경험들, 그 후 십여 년간 한 수녀회에서 행한 다섯 차례의 8일 피정지도와 전국 여러 본당에서의 성령세미나와 향심기도 강의의 모든 체험을 압축, 확인, 예언(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함: 코린토 1서 14,3)을 한 것이었다.
오묘하고 신비로운 손길로 제 내면에서 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인도하시고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일을 계속하고 계시는 아빠 하느님, 오빠 예수님, 위로자 성령님, 감사합니다! 찬미와 흠숭을 드립니다. 아멘. ( ‘흠숭하고, 경배드리다’는 의미의 영어 ‘adore’는 라틴어로 ‘ad=향하여’ ‘ora=입’의 합성어로서 ‘입을 향하여, 즉 하느님께 입맞춤을 드린다는 애정 어린 표현이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 무엇으로 주님께 갚사오리. 구원의 잔 받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 주님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채워 드리리이다.”(시편 116,17-19).
우리 수녀원에서 하루에 적어도 세 번 바치는 이 식사 후 기도로써 마음을 다하여, 생각을 다하여,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느님과 이웃과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지상최고의 계명과 목표, 내 마음의 열망이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 백 젬마 마리 수녀 -
<사람들> 브라질 선교 떠나는 60대 수녀 연합뉴스 | 입력 2008.03.05 18:16
‘환갑을 넘긴 나이에 이역만리 브라질 땅에 선교사로 파견된다. 그것도 수녀의 몸으로….’
다음달 중순 브라질 상파울루 남쪽 소로카바 수녀원에 영어 교사 선교사로 파견되는 백 젬마마리(63·본명 백순희) 수녀. 지난해 10월 자신이 소속한 서울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로부터 브라질 파견 제의를 받고 “하느님이 새롭게 열어주신 길이니 감사하며 따르겠다.”며 4년간의 선교사 소명을 승낙, 막바지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소로카바 수녀원에 살고 있는 브라질 수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특별한 소임.
● 떠나기 전 ‘예수 오빠´ 그림전 열어
60대 수녀가 해외 선교사로 파견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60년을 넘게 살아온 고국을 떠나 낯설고 먼 나라에서 나이든 수녀가 새로운 삶을 살기가 쉽지만은 않겠지요. 정든 이들과 헤어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요. 하지만 마음을 정하고 나니 빨리 가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최근 백 수녀가 펴낸 ‘예수 오빠께서 누이야 부르시면’ 출간 기념으로 이 책의 본문 삽화를 그린 주정연(바오로)씨의 삽화 그림들을 모은 ‘예수 오빠 작은 그림전’이 열린 서울 정동 품사랑 갤러리에서 7일 만난 수녀는 나이를 짐작키 어려울 만큼의 맑고 환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아빠 하느님, 오빠 예수님, 엄마 마리아…. 백 수녀가 부르는 하느님과 예수님, 성모 마리아의 명칭은 아주 독특하다. 영성이 탁월해 기도와 묵상을 통해 ‘예수 오빠’와 소통하는 것으로도 천주교계에선 널리 알려져 있다.
‘예수 오빠께서 누이야 부르시면’은 백 수녀가 기도, 묵상을 하며 ‘오빠 예수’와 소통했던 내용들을 소상히 적어 세상에 알린 책. 1966년 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한 후 42년간의 수도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성과, 성령 은사의 묵상집이다.
고교 2학년때 우연히 찾았던 대구 수녀원에서 그레고리오 성가로 새벽 기도를 바치는 검은 수도복 차림의 수녀들 모습을 보고는 “여기가 바로 평생 내가 살 집이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고 한다. 원래 장로교회 신자였던 그가 단박에 천주교 수녀가 될 마음을 굳혔으니 오래 전부터 갈 길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천주교와는 아주 멀었던 부모들. “수녀가 되겠다.”는 맏딸의 고백에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부모의 가슴에 큰 아픔을 심고 서원, 수녀의 길을 걷던 중 임종의 아버지가 남긴 “네가 행복한 길을 찾아서 고맙다.”는 마지막 말씀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한다.
● 한국 찾는 외국인 신부·수녀들에 24년간 통역
사실 브라질 선교사 파견제의는 이번이 두 번째. 2000년 로마에서 열린 총회 때 만난 소로카바 수녀원의 부원장 수녀로부터 “브라질 수녀들을 위한 영어교사로 일해달라.”는 말을 듣고는 거절했었다고 한다. “두번씩이나 파견 제의를 물리칠 수 없었어요. 이 나이에 하느님이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소녀 적부터 책을 많이 읽고 문학인의 꿈을 키웠던 백 수녀는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대구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영문과에 편입, 졸업한 영문학도. 졸업하자마자 성의여자중상업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해 1년간 살았고 상지여자중상업고등학교에서도 3년간 근무한 교사 출신이다. 예수회가 경영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영어교수법’석사 학위를 받을 만큼 평소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단다.
1984년 베네딕도 로마 총원 영성쇄신코스인 ‘국제만남의 주간’행사에서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24년간 통역 일을 해왔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신부와 수녀, 평신도 등 강사들의 통역을 도맡아 했으니 외국 수도회들이 눈독을 들일 만도 하다. “대학시절 연극 주인공을 맡아 무대에 서면서 너무 즐겁고 행복했다.”는 백 수녀는 수녀가 아니었으면 연극배우가 됐을 것이라며 웃는다. 지금도 가끔씩 연극 공연장이며 영화 상영관을 찾는다고 한다.
“수도자의 삶 또한 하느님이 주신 인생의 큰 배역”이라는 백 수녀. 수녀회에 입회한 이후 서강대 교목실 근무를 포함해 29가지의 소임을 맡을 만큼 많은 일을 해보았다는 수녀는 “살아갈수록 하느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믿음이 커져만 간다.” 며 브라질 선교사 일도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 가져온 곳 : 블로그 >묵주의 9일 기도 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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