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신앙 자료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김레지나 2015. 11. 8. 22:07

연옥은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니다

 

지상에서의 소명을 다한 후 곧바로 하늘 나라로 들어갈 완덕을 갖춘 사람은 누구일까? 주님과 대면했을 때 자발적으로 지옥으로 뛰어들 사람은 누구일까?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양쪽의 경우 모두 인간 삶에서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경우, 그들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는 궁극적으로 진리와 사랑과 하느님께 내적으로 열려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이러한 만남이 주는 아픔 가운데에서 더럽고 병든 우리 삶을 분명히 깨닫게 될 때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불을 통하여’분명 고통스러운 변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그분의 눈길, 그분 마음이 어루만져 주시는 치유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받은 아픔입니다. 그분 사랑의 거룩한 힘이 불길처럼 우리를 뚫고 지나가 온전한 우리 자신, 그리하여 온전한 하느님 사람이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교황 베네딕토 16세,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46-47항).

그러므로 연옥은“징벌의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의 은총이다. 고통스런 수술을 기뻐하는 환자처럼, 확실하게 치유된다는 희망과 지극한 감사의 마음으로“불쌍한 영혼들”은 사랑의 학교이며 회개의 학교인 연옥으로 들어간다. 거기서 그들은 사랑이 너무나 부족한 자신의 상태를 고통스럽게 후회하며, 하느님과 하늘 나라를 열망한다.

연옥 영혼들은 자신을 위해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우리의 도움에 의해서만 정화되고 성화될 수 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도 연옥에서 정화를 언급했다.

“오, 영혼을 이렇게도 완전히 정화하시다니, 하느님은 얼마나 자비로우신가!”

성인들은 불쌍한 연옥 영혼들이 더 쉽고 더 빨리 하느님의 자비를 입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왔다. 에우제니아 스메트(1825-1871) 복녀는‘연옥 영혼의 조력자 수녀회’를 설립했는데, 연옥에서 고통당하는 영혼들을 위해 희생을 봉헌하는 데 첫 목적을 두었다.

 

 

연옥을 어떻게 통과할까?

 

기도로써 죽은 이들을 돕는 것은 이미 초기 유대 왕국에서부터 있었던 것임을 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다. 유다 마타베오는 전사자들의 속죄를 간청하며 속죄제물을 바치고 그들의 부활을 위하여 기도했다(2마카 12,42-45 참조).

예수님께서는 내세에서의 죄의 용서를 분명히 언급하셨다(마태 12,32 참조).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교황 대 그레고리오 성인은 그것을 연옥으로 해석했다. 사도 바오로는“그 자신은 구원을 받겠지만 불 속에서 겨우 목숨을 건지듯 할 것”(1코린 3,15)이라고 해석했다.

이미 사도시대 직후의 박해시대에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의 관습이 있었음을 3세기 카타콤바의 비문들에서 볼 수 있다. 칼릭투스 카타콤바의 수많은 비문 중 하나에 이렇게 적혀 있다.“그대들의 기도 중에 그대들보다 앞서 간 우리를 생각하라.”

5세기에 살았던 성 아우구스티노의 어머니 성녀 모니카는 임종 시에 아들에게 이렇게 청했다.

“내 시신을 어디에 묻어도 상관없지만, 부디 주님의 제대에서 나를 기억해다오!”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대답을 그 유명한<고백록>에서 볼 수 있다.

“어머니에겐 화려한 무덤도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는 훌륭한 묘비도 원하지 않으셨다. 오로지 한 가지, 오 하느님, 당신 제대에서, 채무증서를 없애는 희생제사가 봉헌된 그곳에서 당신을 기억해주기만을 원하셨다. …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언제나 당신의 제대에서 당신의 여종 모니카를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의 사랑은 연옥에 전해진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사랑이 사후까지 미칠 수 있으며 서로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죽음의 경계 너머까지 계속되어 서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확신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위안의 이유가 됩니다. … 우리는 그 누구도 온전히 홀로 동떨어진 섬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서로 관련되어 있고, 수많은 관계를 통하여 함께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 죄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 구원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이루는 것에서 다른 이들의 삶이 끊임없이 내 삶 안으로 들어옵니다. 반대로 내 삶도 다른 이들의 삶에 흘러 들어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한 나의 기도는 심지어 그가 죽은 다음에라도 그에게 무관한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희망으로 구원된 우리> 48항).

지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사랑은 불쌍한 영혼들이 심판의 순간에 있을 때 그들의 부족한 사랑을 대신하는 힘을 갖는다. 우리는 그들에게 모든 것을 보내줄 수 있다. 사랑의 참회, 자발적인 희생적 고통과 슬픔도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 1916년 봄 파티마에서 나타난 천사는 세 어린 목동에게 이 기도를 가르쳐주었다.

“오, 저의 하느님, 당신을 믿고 찬미하며 의지하고 사랑하나이다. 당신을 믿지 않고 찬미하지 않으며 의지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용서해주소서.”

이탈리아 토리노의 클라라 카푸친회의 콘솔라타 베트로네 수녀에게 발현하신 예수님께서는,“예수, 마리아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혼들을 구하소서!”라는 화살기도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모두에게 유익을 준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사랑의 행위 한 가지로도 한 영혼을 구할 수 있으니,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사랑의 행위 하나하나가 한 영혼의 영생의 복락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라!‘예수, 마리아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혼들을 구하소서.’라는 기도만이 수천 가지 죄벌을 보속하는 데 유효한 것은 아니다.”

 

 

교황들이 도움의 샘을 열었다

 

20세기에 일어난 두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전쟁터나 수용소 또는 혁명의 아수라장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목숨을 잃었다. 그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 우리 교황들은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베풀었다.

“성체의 교황”비오 10세(1903-1914년 재위)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교령을 공포했는데, 위령의 날에 성체를 영한 뒤 교황의 지향대로 기도하면 불쌍한 영혼들에게 바칠 수 있는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재위 기간에 러시아 공산혁명,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멕시코의 교회 박해를 지켜보아야했던 교황 베네딕토 15세(1914-1922년 재위)는 위령의 날에 사제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 세 번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는 칙서를 공포했다.

“지구상의 모든 사제는 기꺼이 그리고 성실히 이 유일무이한 특권을 이용해야 한다.”

교황 비오 11세(1922-1939년 재위)의 재위기간은 독재적이고 반그리스도적인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으로 특징 지울 수 있다. 죽은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그는 기도 캠페인을 벌이고, 특히 미사 봉헌을 요청했다.

 

 

연옥 영혼의 구원을 도운 사람들

 

불쌍한 연옥 영혼들이 의지하는 사람이며 참된 벗이라고 확실하게 증명된 거룩한 사람들은 모든 시대에 있었다. 연옥에서 고통당하던 영혼들은 그들에게 나타나 도움을 청했지만, 도움을 받은 후에는 다시 나타나 감사를 전하고 그 은혜를 갚을 것을 약속했다. 그들 중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이 있다.

“선한 영혼들은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졌으며, 그들의 중재로 큰 은총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통회하고 보속하고 싶다면, 이 세상의 시간에 비할 수 없이 오랫동안 자신의 죄를 보속하고 있는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을 진심으로 생각하자. … 연옥의 영혼들을 위해 많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도 지상의 우리를 위해 많이 기도해줄 것이다! 천국을 보장받고 싶다면 연옥 영혼들의 구원에 대한 열의를 지녀야 한다! 그들을 연옥에서 구하기 위해 바치는 기도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 다음으로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밤에는 연옥 영혼들을 위해서, 낮에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모든 고통을 참아 받는다.”

콘너스로이트의 데레사(1898-1962)에게도 거의 매일 밤마다, 특히 11월 2일 위령의 날에 많은 불쌍한 연옥 영혼들이 찾아왔다. 데레사는 극진한 측은지심으로 그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희생을 바치면서 그들을 도왔다. 데레사가 연옥 영혼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염려했었는지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닷새 전인 1962년 9월 13일 동생에게 남긴 유언에서 엿볼 수 있다.

페르들, 나는 잊어도 되지만 불쌍한 영혼들은 절대 잊지 마! 매일 그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기도만 하지 말고 매일 겪는 어려움을 그들을 위한 희생으로 바쳐다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너무 약소해. 그들은 우리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절대로 공짜로 바라지 않아. 몹시 고마워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를 도와준단다. 이 사실을 너만 알고 있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전해주렴. 언젠가는 그들도 오게 되겠지!

 

 

연옥 영혼을 천국을 인도하시는 자비의 어머니

 

독일의 신비가 바바라 피스터(1867-19090)는 살아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듯 연옥 영혼들과 우정 어린 친밀한 과계를 맺었다. 바바라는 수호천사의 인도로 연옥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바바라는 연옥 영혼들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서 있는 때든 걸을 때든 언제 어디서나 연옥 영혼들이‘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도 미사 때마다 그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청원하신다. 그리고 감히 말하는데, 연옥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정화된 영혼들을 하늘로 데려가기 위해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나타나실 때이다.”

바바라 피스터는, 어느 원장수녀가 성덕에 대한 명성이 자자했고 성흔까지 받았지만 동료수녀에게 이유 없이 엄격했다는 이유로 연옥에서 긴 정화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이를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긴 시간도 짧은 시간도 아니다. 연옥에는 시간 개념이 없다. 거기는 영원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바라는 그 원장수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봉헌했는데, 마침내 그 영혼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미사를 마칠 즈음 보게 되었다.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하는 순간, 그 영혼이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소리로 천상의 알렐루야를 불렀다. 그 영혼이 하늘로 오르자 천국 문이 열리고 빛나는 성흔의 구세주께서 그 영혼에게 다가오셨다. 그 순간 원장수녀의 성흔에서도 빛이 쏟아졌고, 그 영혼은 구세주의 성흔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어느 해 성탄시기에 바바라 피스터는 불쌍한 연옥 영혼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덤불과 가시로 뒤덮인 넓은 농토를 환시로 보았다. 그 환시에서 바바라에게 몹시 힘들고 끝날 줄 모르는“강림-사건”이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의 탄생 직전,“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 저는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모든 것을 뒤에 두고 갑니다. 강림-사건이 준비되었습니다.”하며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바바라는 춥고 눈 내리는 가운데 피로와 또 다른 보속의 고통을 겪으며 연옥 영혼들의 고통을 떠안았다. 성탄절에는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영혼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갔다.

부디 우리 모두가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을 열심히 돕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구세주께서는 지상의 전투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협력을 통해서, 죽음 저 너머의 고통당하는 교회 안에서 불쌍한 영혼에게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할 구원의 은총이란 임무를 우리에게 맡기실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바치는 아주 사소한 사랑의 행위 하나하나를, 희생과 기도 하나하나를 고마워하고,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 <Triumph des Herzens nr. 114>에서

- 마리아 177호 2013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