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양승국 신부님

[방주의 창] 활짝 열린 우리 교회 / 양승국 신부

김레지나 2015. 7. 13. 09:04

[방주의 창] 활짝 열린 우리 교회 / 양승국 신부

발행일 : 2015-06-28 [제2950호, 23면] 가톨릭 신문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대뜸 의정부교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암환우 쉼터 ‘베타니아’를 극구 칭찬하십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암 투병 중인데, 멀리 지방에서 올라와야 되고 입·퇴원을 반복해야 해서 걱정이 태산이었답니다. 그런데 ‘베타니아’가 모든 문제를 한방에 다 해결해주었답니다. 무료에다 종교도 따지지 않는답니다. 가급적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멀리서 온 사람들 우대한다니 이 또한 얼마나 반가운 일입니까?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을 향해 활짝 열린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되어 참으로 기뻤습니다.

살레시오회는 창립자 돈 보스코 탄생 200주년을 맞아 한국 가톨릭 신자들의 영성생활에 미력하게라도 기여할 바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무료 ‘열린 영성 강좌’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주 200여 명의 신자들이 오셔서 돈 보스코 영성의 향기에 취해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았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강의와 미사, 고해성사에다가 점심식사까지 영육의 활기를 회복하고 흐뭇한 얼굴로 돌아가는 신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열려있음’의 아름다움과 진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선종하신지 벌써 7년이 지났군요. 참으로 향기롭고 빛나는 삶을 살다 가신 선우경식 원장님. 몸과 마음이 아픈 아이들 치료차 자주 요셉의원 문턱을 넘나들었습니다. 요셉의원을 방문할 때마다 드는 느낌은 훈훈한 벽난로 앞에 앉는 느낌입니다. 그곳에 가면 편안했고 따뜻했으며 환대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늘 문전박대 당하던 가난한 형제자매들도 제 집 드나들듯이 당당히 출입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이 땅의 가장 가난한 이웃들을 향해 부드럽고 환한 미소를 던지시던 원장님을 떠올리며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그려봅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다양한 모습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은 세상을 향해 활짝 두 팔 벌리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모든 인간이 다 존귀했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생명 붙어있는 모든 인간이 다 하느님의 모상이자 거룩한 창조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앞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활짝 열린 예수님의 모습 앞에 오늘의 우리 교회 공동체는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도 개방적이셨습니다. 이 세상 단 한사람도 당신 사목의 대상,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어른이든 코흘리개 어린이들, 잘 나가는 사람이든 인생이 꼬인 사람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 기꺼이 맞이하는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몇몇 단체나 병원, 시설들이 이 땅의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더욱 자신을 낮추고 탈바꿈하는 시도들을 하고 있어 마음이 흐뭇합니다. 의료혜택을 받을 처지가 못 되는 사람만을 최우선적인 진료대상으로 선택하는 자선병원들, 그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람들만 찾아다니는 자원봉사단체들, 무료급식소들…. 진정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이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 혹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지긋지긋한 병고에 하루하루가 괴로운 사람들, 큰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지만 마땅히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데도 없는 사람들이 기쁘게 우리 교회를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그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고통스런 목소리를 경청하기를 바랍니다. 춥고 배고픈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가라’ ‘식사라도 하고 가라’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물이자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변장하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또 다른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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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살레시오회 한국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