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검사 받는 날
2015년 2월 25일
유방외과 정기검사일이다.
'나는야 10년차 암환자.'
언제부터인가 가족들에게 어디 간다 말도 없이 병원에 다닌다.
유방외과, 내분비 대사 내과, 산부인과, 심장내과, 신장내과, 혈관외과, 재활의학과, 신경정신과, 피부과, 재활의학과, 가정의학과, 동네 내과, 한의원, 안과 등.... 이젠 병력
이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오늘은 9시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평소와는 달리 일찍 일어나 나가려니 남편이 어디 가느냐고 묻기에 퉁명스럽게 병원에 간다고 말해줬다.
출근 시간이라 길이 막혀 한 시간 가량 걸려 병원에 도착했다.
전 날 아들 학교 들어가는 짐 챙기고 데려다 주느라 힘들었는지 컨디션이 엉망이다.
머리 아프지, 근육통, 관절통이 있지, 운전을 자주 했더니 팔 전체가 엄청 아리고 아프다.
여러 해째 집안 일 조금이라도 더 거들 생각을 안 하고 아침만 먹으면 나가서 자기 전에 들어오는 무심한 남편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다.
먼저 유방초음파 검사실에 가서 접수를 하고 대기석에 앉아있었다.
삼십 분이 지나도 옷을 갈아입고 대기하라는 말이 없어서 다음 검사가 이어서 있으니 빨리 검사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옆 환우가 말을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양쪽 다 전절제 한 터라 유방 엑스레이 촬영은 없어서 좋다.
초음파 이상 없음. 통과!
바삐 1층으로 내려가 씨티 촬영 접수
조영제를 투여할 거라고 한다. 전에 해봤는지, 부작용은 없었는지 간호사가 묻길래, 모르겠다고 했다.
간호사가 “발에서 채혈할 정도면 여러 번 하셨겠는데요.”한다.
기록을 확인하고는 “작년 11월에도 하셨는데요.”하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 그랬나?’ 병에 대해서 무심하면 그럴 수도 있지, 뭘~! '
조영제 맞기 위한 주사 바늘을 꽂았다.
항암, 채혈 등을 하기 위해 발등을 혹사시켜서인지 자주 발 여기저기가 붓고 아프고 당긴다.
오늘은 왼 발 안쪽 복숭아뼈 부근이 손도 못 대게 아프고, 오른쪽 발목 윗부분이 심하게 당겨서 불편하다.
간호사님에게 부탁했다.
“발등 말고 다른 곳을 개척해야할 것 같아요. 종아리라든가....”
간호사님이 여기저기 살펴보더니 “다리가 부어 있네요.”한다.
“많이 좋아진 거여요.”
이번에는 종아리 어느 부분에 바늘을 꽂았으면 했는데, 부어 있어서 역시 안 되는 모양이다.
왼 발 복숭아뼈 바깥쪽에 조영제를 맞기 위한 주사 바늘을 꽂았다.
“다음 검사 있으세요?”
“네. 핵의학과 뼈검사요.”
“혈관도 찾기 힘드니 바늘은 빼지 말라고 할게요.”
간호사가 바늘 위로 다음 검사 있다는 설명을 적은 큰 종이 쪽지를 테잎으로 붙여놓았다.
"걸을 수 없는데 어떻게 하실래요?"
"휠체어에 앉아서 한 발로 짚고 밀면 되겠지요?"
"다음에는 보호자랑 함께 오세요."
휠체어 갖다 준다는 등의 설명이 없어서, 그런 서비스는 없나보다 싶어 한 발로 폴짝폴짝 뛰어 주사실을 나왔다.
간호사님은 내가 경험이 많으니 대처 방법도 잘 알겠지 싶었나본데, '천만에, 나는 베테랑이 아니라 덜렁이 환자인 걸.'
주사실에서 촬영실 앞까지 깨금발로 뛰어서 갔다.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구한테 휠체어를 부탁할까 찾아보았는데 딱히 부탁해도 될만한 사람이 없었다.
눈치를 보다가 접수하는 간호사에게 휠체어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촬영을 하기 위해 누웠는데, 한참을 찍는 것 같더니, 조영제를 주사하고 다시 찍는다.
조영제 양을 줄였다더니 화끈한 느낌이 덜하다.
촬영 완료.
휠체어에 앉아서 한 발로 바닥을 밀면서 끌어보려고 했는데, 에그~~ 숏다리라 쉽지가 않다.
앞에 앉아 있던 남자 환자가 탈의실까지 이동시켜 주었다.
옷을 갈아 입고 나오니 그 환자가 다시 주사실까지 밀어주었다.
주사실에 벗어놓은 신발을 가지러 들어갔더니, 그제야 간호사가 이동 도우미를 호출해준다.
'그런 서비스가 있으면 진작 알려줄 일이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층 핵의학과 도착
접수하고, 주사실에 들어감. 방사선 물질을 주사 맞고 네 시간 후에 촬영이다.
남자 간호사가 다른 검사가 있느냐고 해서 채혈을 아직 못했다고 했더니
"혈관 찾기가 힘드니 주사 바늘 그대로 둘까요?"하고 묻는다.
“네, 여기서 채혈해달라고 우겨볼게요. 그냥 두세요.”했다.
다른 간호사가 “이 바늘은 조영제 넣는 바늘이고, 채혈할 때는 다른 바늘로 해야 해요.”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바늘을 뺐다.
피가 뚝뚝 떨여저서 치료실 바닥까지 젖었다.
나는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잠시 필름이 끊겼던 것같다.
간호사도 내가 알아서 하려니 하고 꼭 누르고 있으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바늘만 빼버렸고...
'아이 참, 나는 베테랑이 아니라니까~!'
간호사가 최근에 다친 적이 있거나 관절이 아프니 물었다.
“다친 적 없고요. 관절은 지금도 아파요.” 하고 대답했다
1층 입구에 휠체어를 갖다 두고, 2층 채혈실 접수.
핫팩을 받아들고 발 채혈실에 들어가서 오른 발에서 채혈하기로 하고 핫팩으로 감싸고 기다렸다.
어랏! 신기하게도 한 방에 채혈 성공.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맘씨 착한 자매님이 주사 수월하게 맞으라고 기도했단다.ㅎㅎ 분명 그 덕분이다.)
으랏차차. 이제 네 시간만 기다리면 되고, 밥도 먹어도 된다.
컨디션이 안 좋으니 더부룩해서 뭘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챙겨간 물 마시고, 쥬스 마시고, 암병동 성당으로~ 고!
오랜만에 성체조배를 하겠다 싶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바뀐 십자가상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젋은 까까머리 청년이 십자가에 매달린 게 아니라 어색하게 몸을 기대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아무리 보아도 예수님같지 않아서 차라리 눈을 감고 성체조배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바닥에 의자를 대고 앉았는데, 뭘 생각하면서 종알거릴 여력도 없어서 쉬고 싶어 심령기도를 했다.
삼사십 분쯤 지나자, 수녀님과 두 명의 자매님이 옆방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예비자 교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귀를 쫑긋 세우고 배워보려고 했는데, 넘 졸려서 꾸벅꾸벅 잤다.
한참 자고 일어나니 교리가 끝난 모양이다.
성당을 나오면서 하느님께 청했다.
“10년째 가장구실을 못하는 남편, 그 때문에 온 가족이 한 구석씩 멍이 들어서 그 상처가 발견될 때마다 몹시 마음이 아픕니다. 게다가 00 일, 00 일, 00님, 00님...... 제가 무엇 때문에 가장 심난해하는지 아시니, 한 말씀 또 주셔야지요.”
성경책을 펴고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읽었다.
“어떤 주인이 한 종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기고 떠났다면 어떻게 하여야 그 종이 과연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종이겠느냐? 주인이 돌아 올 때에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이 아니겠느냐? 그런 종은 행복하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주인은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마태)”
살짝 심술이 났다.
‘칫, 무슨 양식이요?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종이 왜 하필 저랍니까? 저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 저를 좀 챙겨보라고 해주십시오. 위로하시는 겁니까? 겁을 주시는 겁니까? 아이고, 저 지금도 충분히 외롭고 힘들거든요.’
2시 본 스캔 촬영실에 들어가니 네다섯 명이 있다가 바구니에 탈의실 열쇠 넣으라고 하고 기계 위에 눕힌다.
눕혀놓고 와르르 다른 방으로 나가고 촬영이 시작된 듯 했다.
'뭥미? 지금부터 움직이지 말라는 둥, 몇 분 걸린다는 둥, 시작한다는 둥 말도 없이?'
귀마개 없이 MRI통에 들어가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자주 해 봤을 테니,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나보다.
그러고보니 주사 맞을 때도 물을 많이 먹어야한다던가, 식사와 상관없는 검사이니 점심을 먹어도 된다던가,
소변이 옷에 닿으면 안 된다던가 하는 설명도 없었다.
'베테랑 환자 아니라니까.... ㅠㅠ'
무인 계산대에서 오픈 카드 결재를 했다.
헐~ 금액이 엄청 적다.
중증환자 십 분의 일 적용인가보다.
예전에는 보험 적용되는 검사와 치료 금액의 오 분의 일이 환자 부담이었는데..
분명 초음파 검사는 비보험이었는데....바뀌었나보다.
집에 4시 반 도착.
집안 꼴이 내가 나갈 때랑 똑같다.
까무러칠 듯 피곤하니 남편한테 화가 났다.
'점심에 들어와서 둘째 밥도 좀 챙겨주고, 청소기도 좀 돌리고 나갈 일이지..
대체 하는 일이 뭐야? $%^%%#%@. '
청소하고, 둘째랑 밥 차려서 같이 먹고, 빨래 널고...바로 곯아 떨어졌다.
2월 27일
검사 받은 지 사흘이 지났는데,
두 가지 조영제 부작용인지.. 열두 시간도 넘게 자는데도 종일 맥을 못 춘다.
인터넷으로 만난 환우 자매를 위해, J선생님의 어머님을 위해 미사봉헌을 신청한 날인데,
몸이 넘 아파서 성당에 가지 못했다. 대신 그 시간에 침대에 엎드려 묵주기도 바치고,
다시 잠들어 오후 두 시까지 잤다.
다른 미사에서 그분들을 위한 지향으로 계속 기도해야겠다.
담 주에는 유전자 검사 결과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암 유발 유전자가 있다면 또 난소절제 수술 하자고 하시겠지.
그럼 또 안 하겠다고 해야지.
전이라도 되었다면 어떻게 할까?
이젠 항암 치료 안 받겠다고 할 거다. 진짜로 다시는 안 할 거다.
발이랑 팔꿈치가 쪼갠 듯 아프고 붓는다고 이유나 물어봐야겠다.
혈관외과 선생님이 그 정도면 걷지도 못한다고 혈관이 막힌 건 아니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쬐끔 안심.
가정의학과 선생님은 ‘암성 통증’에는 뽀족한 치료법이 없다고 했었고....
"어떤 주인이 한 종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기고 떠났다면 ....."
00 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 영혼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불러다 물어보신단다.
"앞으로 네가 세상에 나가 이러이러한 일을 하게 된다면 하겠느냐?"하고.
대부분의 영혼들은 하느님께서는 꼭 맞는 임무를 맡기시는 줄 알고, 그 임무가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일임을 알기 때문에 "예, 하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한단다.
세상에 태어나면 하느님과 함께 있던 때를 잊어버리기에, 이런 저런 십자가를 지면서 불평과 의혹이 생기지만
대부분의 시련은 영혼들이 동의했기에 겪게 되는 것이란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책임을 맡기고 떠나' 계시지는 않는다.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그런 믿음이 있는 사람이 '진짜 베테랑'일 것이다.
둘째 학교 나가면 여유 시간이 좀 많아지겠지.
요런 소소한 기록도 가끔은 할 수 있을 테고...
통증도 좀 줄고, 부종도 사라지고, 편두통도 사라지도록 산책도 하고 신경을 써야겠다.
아~~ 함!
몸이 고단하니 마음이 몇 배로 힘들다.
나중에 하느님 아빠 품에 안기면 영화 국제 시장의 주인공처럼
“아빠가 맡기신 일 잘 했나요? 근데 저 정말 힘들었거든요.”하고 실컷 울어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야지.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어쩌면 하느님도 나를 베테랑 암환자로만 대하니,
하는 수 없이 베테랑인 척이라도 해야겠으니. ㅋㅋ
짝퉁 베테랑이라 하는 푸념인데,
'으앙~ 초보이던 시절이 정말 정말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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