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수녀님이 차려주신 아침밥 먹고 저녁에 따뜻하게 자고 마치 옛날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에 돌아온 것 같아 너무 좋아요.”
한때의 실수로 유흥업소에서 일하다가 탈출하여 현재 수녀님들의 보호 아래 살아가고 있는 금희의 고백이다. 또한 어릴 때 엄마가 이혼한 후에도 꾸준히 피아노와 작곡공부를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영선은 “내가 왜 힘든 상황에도 피아노를 멈출 수 없었는지 아세요? 피아노에는 엄마가 있거든요. 어릴 적 엄마가 나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의 그 사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라며 수줍게 말한다.
이 젊은 여성들의 공통점은 어릴 적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자신의 힘들고 고달픈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 밥 차려주지 않은 어머니가 어디 있겠냐마는 금희가 기억하는 것은 밥 먹는 행위가 아니다. 온전히 자신의 존재에 머물러준 어머니의 현존이다. 만약 금희 어머니가 늘 부산하고 산만하게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아이는 스마트폰이나 하면서 그냥 차려준 밥을 먹었다고 한다면, 이토록 애틋하게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지금의 평범한 삶에 만족해할까? 어머니도 아이도 그냥 서로 각자 활동하며 서로의 존재에 머물러있지 않았기에 기억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영선이 역시 어머니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피아노 치기만을 강요했다면 어머니가 떠난 후에도 어머니를 기억하며 계속 음악공부를 할 수 있었을까? 이들에게 있어서 기억되는 것은 먹이고 가르치는 어머니의 활동적인 행위가 아닌 자녀의 내면 깊이 존재해준 ‘존재자’로서의 어머니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한 대상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한 사람의 주변에 너무 많은 것들이 연결되어 있어 어디서나 어느 때나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점점 더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시간과 공간에로부터 벗어나는 일에 익숙해져 간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시간을 놓치고 있다.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바로 ‘지금’일 텐데 말이다. 우리 손에 있는 디지털기기가 늘 지금 이 순간을 멀리하게 만든다. 그래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접속하는 순간 주변의 사람들은 금방 투명인간이 되고 만다.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그만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알게 되고 즐길 수 있으니 더 몰입하게 되고 더 바쁘고 피곤하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많은 시간을 아이와 있으면서 존재(being there)하기보다 일(doing there)로 함께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는 온전히 현실대상에 주의하지 못하면 환상 속에 빠지기 마련이다. 가족과 마주앉아 있으면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음악을 들으며 좋은 느낌을 유지하고 싶은 것도 그런 이유일게다. 그러나 불편해도 온전히 그 현실 앞에 머물러야 한다. 현실에 온전히 머물지 않는데 어떻게 사랑하는 대상과 진실한 내적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분주한 활동에는 일만 있고 나는 없다. 그래서 자주 잘 잊는다.
기억하자. 어린 시절 누군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해 주었던 추억이 세상과 대면할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것을. 그러므로 어른들은 자녀들에게 아주 따뜻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가족과 함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평화로움과 식탁에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화기애애함, 그리고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고요함으로 아름다운 추억의 한 페이지를 채워나가길 바란다. 이것이 자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최고의 유산이 되지 않을까?
김용은 제오르지아 수녀(살레시오수녀회)는 미국 뉴욕대(NYU) 대학원에서 미디어생태학(Media Ecology)을 전공하고, 버클리 신학대학원(GTU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살레시오영성센터(ISS)에서 살레시오 영성을 수학했다. 현재 부산 ‘살레시오 영성의 집’ 관장을 맡고 있다.
(20) 활동과 존재
행복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지금’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때
상대방과 진실한 내적 관계 맺어
‘활동’ 보다 ‘존재’하려는 노력을
상대방과 진실한 내적 관계 맺어
‘활동’ 보다 ‘존재’하려는 노력을
발행일 : 2014-12-07 [제2922호, 17면]
김용은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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