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도반홍성남신부님(작성자 박용귀님)
요한복음 6,16~21
물 위를 걸으시다
녁때가 되자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그때에 큰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높게 일었다.그들이 배를 스물다섯이나 서른 스타디온쯤 저어 갔을 때,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나다. 두려워하지 마라.”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하는데, 배는 어느새 그들이 가려던 곳에 가 닿았다.
1. 부재체험
이 복음은 내용이 짧은 것에 비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여기서 얘기하는 배와 호수는 우리의 인생살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갈릴래아 호수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건너갈 때
예수님은 함께 하지 않으셨다
인생살이를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았고
자기네들끼리 노를 저었다는 것이다
어두움은 힘듦이 닥침,
감당하지 못할 일이 닥쳐올 때는 답답하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판단력이 정지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얘기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그런 상황을 동시에 같은 체험을 한 것이다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을 때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그 들에게 돌아오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 상태에서 거센 바람이 불고
물결이 높게 일었다고 했다
정말 어려운 상황이 닥친 것이다
평소에 사람들 사이가 좋을 때는 먹고 살기 좋은데
어려울 때는 부정적 감정이 올라온다
가장 힘겨운 상황 속에서는
사람들이 이기심이 올라와 이기적이 된다
이기심이란 본능적 욕구이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자기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자기 안의 이기적 욕구를 이겨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다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보통 때 보이지 않았던 조잡한 모습들을 많이 보인다
제자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들끼리 문제를 해결해야 되니까
여러 가지 감정들과 불편한 생각들이 올라왔을 것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그냥 그 상태로 그대로 두셨다
제자들이 대단한 것이
배를 저어 십리 길을 갔다는 것은
그런 악조건 안에서도
자기네들끼리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계속 노를 저었다는 것이다
배를 저어 거의 다 갔을 때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 오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동안 불평을 했기 때문에 무안하기도 하고
무섭기고 하고 그랬을 것이다
제자들이 탈진 상태에 빠졌을 때 나타나셨으니
두렵기도 하고 놀랐을 것이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안심하며 예수님을 받아들이려 할 때
이미 배가 땅에 닿았다고 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 깨닫는 순간이
자기의 역경이 끝나는 시점이었던 것이다
인생살이에서도 우리가 겪고 있는 힘듦의 끝이
하느님을 현존을 깨닫는 시점이라고 얘기한다
편안하게 하느님을 깨닫는 것은 유아적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힘겨움, 역경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부재에 대해서 분노와 그리움과 갈증을 체험하고
나중에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현존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 어려움을 겪는 동안 우리를 보고 계신다.
내가 성숙해가는 것을 보고 계신다
힘들 때 돌아오시지 않은 이유는
동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죽어서 누가 예수님 옆에 서 있을 것인가,
또한 누가 예수님 다음의 권력자에 대해 민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너희는 세상의 권력자가 되지 말고
발을 씻겨주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원한 것은 권력이었다
대접받고 싶었다
권력추구 과정 중 갈라지고 깨어져 나갔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는 과정 중에
제자들에게 선택하게 하시기 위해
배를 너희들끼리 저어보라고 하시고
폭풍우까지 몰아치는 선상체험을 하게 하신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한 사람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체험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는 체험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이 늘 함께 있으면 다가가지 않는다
늘 어떤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는 것이 좋은 결과를 못 얻는다
하느님의 부재체험을 해야 고마워한다
2. 공유의식
늘 함께 붙어 다니다 보면 기적 같은 것을
함께 이루었다고 착각한다
권력 같은 것을 같이 하고 싶으면 부작용이 커진다
모든 권능이 모든 능력이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 때부터 매우 오만해진다
예수님의 말씀에도 시비를 걸기 시작한다
이럴 때 자기도취를 깨는 방법은
혼자 두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자들을 비바람 폭풍우 속에 내버려 두셨더니
제 정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기들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때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이 내 삶의 중심이냐,
내가 내 삶에 중심이냐 하는 것은
표현하는 어투에서 차이가 난다
결과에 대해서 집착을 하고 있을 때는
내가 중심이 되었을 때이다
내가 씨를 다 뿌렸으니까
하느님이 무슨 일을 하시겠지 할 때는
하느님이 중심일 때인 것이다
결실에 대해 손을 놓을 때가 하느님이 중심인 것이다
이것은 기도하지 않으면 식별이 안 된다
그냥 화를 내고 있으면 자기중심일 때이다
단체 지도자나 부모들이나 똑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자식이 내가 해준 만큼 왜 안 되나 할 때
자식을 위한 사람이 아니고
자기중심적 삶일 때 그런 얘기를 한다
내가 최선을 다 했으니까
하느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 하는 것이
하느님 중심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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