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신앙의 힘 ^^*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세상의 것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참된 자유를 느껴보셨나요?
오늘 저희는 경주 남산엘 다녀왔습니다.
부산 신학교 전교생과 대구 신학교 전교생이
1년에 한 번씩 함께 만나서 친교를 나누는 행사가 있는데
이번에는 경주에서 만나 남산 문화탐방을 했답니다.
남산 문화해설사들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까
또다른 남산의 매력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밤엔 가을비라고 하기엔
제법 많은 비가 내립니다.
내일 비가 그치고나면 기온이 많이 떨어진답니다.
형제 자매님도 건강에 유의하세요. ^^*
형제 자매님,
지금 우리는 위령성월을 지내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먼저 가신 분들의 무덤을 찾아봅니다.
그런데 썩 기분이 좋진 않습니다.
인간이면 예외 없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오늘 전례의 말씀들은 부활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위령성월에 부활 메시지를 듣는다는 것이 좀 이상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들은 먼저 가신 분들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우리에게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줍니다.
쟈매님,
제 1독서는 일곱 아들들과 그 어머니의 순교 이야기입니다.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문화와 종교적으로 통일된 왕국을 건설할 목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신앙과 전통을 포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에 금지되어 있는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하여
먹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죽였습니다.
일곱 아들들과 어머니도 똑같은 강요를 받았습니다.
그들 중 하나가
“우리는 조상들의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라고 대답하자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혀를 자르고 머리 가죽을 벗겨 내고
팔다리를 자른 후에 뜨겁게 달군 솥에 넣어 태워 죽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차례대로 죽음 맞이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사람들의 손에 죽는 것이 더 낫소.”라는 넷째의 말처럼
굳은 부활신앙 덕분이었습니다.
복음에서도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부활문제는 심각하게 대두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 지도자들은 부활을 믿으며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던 바리사이파와
부활을 믿지 않으며 로마의 지배를 지지하던 사두가이파로 나뉘어져
크게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시오”(루가20,25)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은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종교적으로도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지지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자식 없이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여
형의 대를 이어주어야 한다는 율법(신명 25,5-6)을 예로 들면서,
부활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전개하며 예수님의 동의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부활한 사람은 천사들과 같아서 죽는 일이 없기에
대를 잇는 것이 주목적이던 결혼은 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장차 누릴 부활 후의 삶은 지상생명의 물질적 연장이 아닙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영광이 우리 안에 충만하게 드러나고
우리는 완전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이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체험하기 시작한 사람은
마지막 부활을 믿을 수 있고 갈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체험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모심으로써 가능합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모신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20)라고 분명히 약속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다름 아닌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둘이나 셋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참된 사람을 실천할 때
그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렇게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모시는 것은
우리 각자의 가정 안에서 보다 쉽게 이룰 수가 있습니다.
가족들은 아무래도 서로가 타인보다는 훨씬 가깝게 느끼고 있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이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가정 안에서 각자가 맡은바 소임을 충실히 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가정의 본질인 사랑을 잘 실천하고자 한다면,
서로가 자신의 뜻을 내세우기보다는
다른 가족들의 의견을 듣고 그 의견을 존중할 것이기 때문에
그 가정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부활의 삶을 누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러한 사랑과 부활의 삶에 대한 증거는
오늘 날 위기에 처한 많은 가정들에게 빛을 줄 수가 있습니다.
인간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사랑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확신과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서 누리는 기쁨과 평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사랑 받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했던 바오로 사도는 제 2독서에서,
신자들이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을 바라봄으로써 언제나 위로를 받는다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를 당신과의 일치에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사랑을 베풀어주심으로써
우리가 당신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힘입어서,
그리스도와의 결정적인 일치를 통해서 누리게 될 나의 부활을 믿을 수가 있고,
현세의 모든 것은 그분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거쳐 지나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과 나의 사랑을 통해서 다다르게 될
부활에 대한 믿음은 현세의 모든 유혹과 시련,
나아가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는 참된 무기인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서로 잘 사랑함으로써 우리 가정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모실 수 있고,
나아가서 이웃들에게 부활에 대한 희망을 전해줄 수 있도록,
가족들 서로가 사랑할 것을 새롭게 다짐하면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더 큰 은총을 주시길 청하면서
오늘의 미사를 봉헌합시다.
그리고 한 주간 동안 우리 가족들이
서로 잘 사랑하기 위해서 함께 노력합시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하양 신학관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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