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박영봉 신부님

미워해도 되나요?

김레지나 2013. 9. 10. 18:54

미워해도 되나요? ^^* (박영봉 안드레아 신부님의 강론입니다.)


- *♥* 미워해도 되나요?^^*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 동안 낮춤으로써 높아지는 것을 체험해보셨나요? 그렇게 덥던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밤에는 쌀쌀함까지 느끼게 합니다. 이러다가 바로 겨울이 오는 건 아닌지 정말 걱정이 됩니다. ^^* 오늘 액자의 사진은 체코 프라하에 있는 성 비타 성당의 많은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중 하나입니다. 알폰소 무하가 만든 것인데 아르누보 양식이라고 하죠. 마치 그림을 그린 것처럼 부드럽게 표현한 것이 보는 사람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작품이 있어도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아무 감동도 줄 수 없겠죠? ^^* 형제 자매님, 오늘 복음을 통해서 듣게 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를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중에서도 부모를 특별히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으며 혼인은 풀 수 없는 인연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들 모두를 미워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봅니다. 복음 말씀처럼 우리 신자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가정을 버려야하는데 그러면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탄하겠는가? 그러니 예수님의 이 말씀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한정된 말씀이리라. 혹시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해당된다면 예수님을 위해서 특별한 삶을 살고자하는 수도자나 성직자들에게 한정해서 하시는 말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형제 자매님,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계시니 이 말씀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옳지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마누라가 매일 바가지를 긁어 대서 미워죽겠는데 예수님께서 미워하라고 하셨으니까 실컷 욕하고 때려주자.” “내 남편은 돈은 쥐꼬리만큼 벌어오면서 매일 술은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시니 예수님이 미워하라고 했다고 하며 욕이나 실컷 해주자.” “내 동생이 얄미워 죽겠는데 마침 예수님이 형제를 미워하라고 말씀하시니 동생을 실컷 때러줘야지” 등등의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면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이 평화가 아니라 가정마다 불화를 가져다주게 되니 큰일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복음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워한다”는 말의 뜻을 올바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셈족 말의 표현에서 “미워한다”는 말은 ‘어떤 것을 일부러 둘째 자리에 두어 소홀하게 여긴다.' 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살펴보면 제자가 되려고 예수님께 오는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뒷자리로 미루어 놓고 그분을 모든 것 위에, 즉 첫자리에 모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학생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줄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내가 선물을 가장 먼저 주고 싶은 학생이 저 뒤에 있다면 “여기 앞으로 와!”라고 불러서 먼저 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맨 앞에 있는 학생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너는 저 뒤에 가서 다시 줄 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렇다고 꼭 무엇을 주어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아! 예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려야지.” 라고 생각하고 식사 전 기도를 드리는 것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끊어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 방해되는 이기적인 자아를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뜻을 고집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다른 것을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 곧 예수님을 첫 자리에 모시기 위해서 다른 것을 다 뒤로 밀쳐야 한다는 것을 의무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의무이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 사랑에 보답하는 자연스러운 생활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그 사랑을 잘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형제 자매님, 사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분열과 갈등과 미움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 신앙인들이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즉, 예수님을 따라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야기된 결과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분열과 갈등과 미움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만이 완전히 극복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그 예를 오늘의 제2독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사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한 후에는 그분의 삶을 철저히 본받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도는 참으로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모셨고 또 그분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무런 선입견이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자 노력하며 이런 사랑을 널리 전파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에 필레몬에게서 도망친 종이었던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면서 종으로 대하지 말고 귀중한 형제처럼 대하라고 당부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세상사람 모두가 평등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자신의 가족보다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고자 노력할 때 우리 가정은 전보다도 더 화목하고 참된 평화를 누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내 모든 것의 첫자리에 모실 때 우리는 더욱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우리는 단순히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 또 다른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지금 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하양 신학관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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