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은 살아있다
지난주 우리는 스승으로서 예수님의 진면목을 조명해 보았다. 스승 예수님의 가장 두드러진 차별성은 그분 말씀에서 드러난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에도 살아 있고 내일에도 성취될 것을 확고히 믿을 줄 알아야 한다.
말씀엔 삶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말씀이다(요한 6,63 참조). 사람을 세우는 것도 말씀이다(사도 20,32 참조).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도 말씀이다.
말씀을 만나서 인생행로를 바꾼 사람이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다.
그가 1866년에 발표한 그의 유명한 소설 「죄와 벌」은 이러한 변화의 결실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 청년 작가로 글줄이나 쓴다고 교만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안하무인격이었다. 그러던 그가 비밀결사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시베리아 벌판으로 유형을 떠나게 되었다. 한때는 젊은 작가로서 떨쳤던 명성도 간 곳이 없고,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는 시베리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기한도 없는 유형의 생활이 계속되었다. 낮에는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저녁이 되면 어둡고 추운 골방에서 외로이 절망의 인생을 달래가며 지냈다.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성경 한 권을 보내왔다. 그래서 그는 매일 저녁 성경을 읽게 되었다. 그렇게 그는 성경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다.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하느님 앞에서 ‘양심’이라고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침내 그가 온갖 심혈을 기울여 인생 말엽에 작품을 하나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양심의 문제를 취급한 「죄와 벌」이다. 성경 말씀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가 양심의 문제를 깊이 깨달아 성경의 진리를 극적으로, 문학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이 도스토예프스키는 말씀이 어떻게 한 인간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증인이다. 말씀 자체이셨고 말씀의 힘을 부릴 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당신 치유와 기적을 행하실 때도 말씀 ‘한 마디’로 하셨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볼 차례다.
■ 말씀은 최상의 웰빙 식단
요즘 너도 나도 웰빙 식단에 관심이 많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말씀이야 말로 최상의 웰빙 식단이라 할 수 있다. 왜? 말씀은 참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사실을 강조하시는 한편, 나아가 예수님 자신의 말씀이 하느님 말씀이나 마찬가지라고 다음과 같이 역설하셨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3).
이와 관련하여 모세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신명 8,3).
그렇다. 빵은 덧없는 인생의 육적 양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은 우리가 영원히 살도록 해주는 영적인 양식이 되어 준다. 말씀 자체가 영원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머물러 계시다.’ 바로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전해진 복음입니다”(1베드 1,24-25).
이는 공허한 주장이 아니라, 체험의 증언이다. 이 은혜로운 진술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의 고백이 될 차례다.
■ 말씀의 치유력
성경 속 대표 인물 셋을 통하여 우리는 말씀으로 치유하신 예수님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먼저 백인대장의 이야기를 보자(마태 8,5-13 루카 7,1-10 참조). 백인대장은 자기 종이 병에 걸리자 예수님께로 와 그를 고쳐달라고 청한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가자, 그래 가자” 하신다.
이에 백인대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닙니다. 오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을 우리 지붕 안에 모시기 부족합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세요. 저도 부하가 있는 사람인지라 제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가고, 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위에 있는 권한은 없기 때문에 이렇게밖에 주님을 초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에 감탄하시며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10).
그리고 이어 “네 믿음대로 될 지어다”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그의 종은 치유가 되었다. 예수님이 안수한 것도 아니고, 약 발라준 것도 아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하셨다.
두 번째 주인공은 자캐오다(루카 19,1-10 참조). 자캐오는 두 가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직업 콤플렉스였다. 그는 세리였는데, 세리는 당시 별로 좋지 않은 직업이었다. 자캐오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주님을 우리 집에 모시기 부족하다. 내가 사람들을 초대해도 그들은 부정탈까봐 오지도 않는다.”
또 하나의 콤플렉스는 키가 작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러 간다. “내가 저분을 만날 수는 없고, 멀찍이라도 하여간 보자. 뭐라고 얘기하시는지” 하여 나무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고 있는데, 예수님은 이를 놓치지 않으셨다.
“자캐오야 내려오너라. 네가 나를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는구나.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겠다.”
여기서 바로 자캐오의 직업 콤플렉스가 치유되는 것이다. “나 같은 세리한테도 주님이 찾아오시다니! 나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구나.”
그러나 또 다른 콤플렉스가 여전히 남아 있다. “나는 혈통이 안 좋아. 그래서 내가 이렇게 키가 작은 거야.”
예수님은 또 말씀하신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9-10).
이스라엘에서 제일 좋은 혈통이 무엇인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자캐오는 완전히 치유를 받았다. 사실 모든 치유 가운데 내면의 치유를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유는 없다. 예수님 말씀 한마디로 자캐오는 마음을 수술 받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티로 지방의 페니키아 여인이다. 그녀는 이방인이었다. 그런데 딸이 중병에 걸렸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시던 예수님께 여인이 매달린다(마태 15,21-28 마르 7,24-30 참조).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매몰차게 말씀하신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 왔지, 이방인을 위해서 오지 않았다.”
그래도 여인은 매달린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아니다. 주인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자기 자녀들에게 주기도 바빠.”
그랬더니 여인이 다시 말한다. “강아지도 부스러기는 얻어먹는데요. 부스러기라도…. 부스러기라도…….”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에 감탄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28).
그 길로 여인이 집에 가서 확인해 봤더니 딸은 이미 나아 있었다.
이 상황에서 모녀는 이런 대화를 주고받지 않았을까? “몇 시에 나았냐?” 여인이 묻자, 딸이 대답한다. “몇 시에 나았어요.” 여인은 놀라 감격하며 말한다. “그때가 바로 예수님이 그 말씀하실 때인데?”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렇듯 말씀을 만나면 언제 어디서 치유가 일어날지 모른다. 이 말씀만 붙들고 살아도 치유가 된다.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신나고 힘나는 신앙-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해설 (27) 복되도다, 주님 말씀에 맛들인 사람들
참 생명 양식 ‘말씀’ … 만남 만으로도 ‘치유’
발행일 : 2013-07-07 [제2853호, 13면]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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