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에 묻힌 보물/기억할 글

일베 - 방관자 콤플렉스

김레지나 2013. 6. 18. 18:53

[한겨레 프리즘] 일간베스트 국정원 / 이재성

등록 : 2013.06.16 21:34 수정 : 2013.06.16 21:34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돌아가신 아버지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아버지 대신 고백할 게 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그러니까 나의 어린 시절, 전라도 사람들은 믿을 게 못 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충청도 사람이었던 아버지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을까. 세월이 흘러서야, 그게 당시의 지배 이데올로기라는 걸 알게 됐다. 박정희와 집권세력은 유력한 경쟁자 김대중을 제압하기 위해 호남지역 차별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나의 아버지는 정권 차원의 왕따 전략을 별 비판 없이 내면화한 것이었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트라우마 한국사회>라는 책에서 지역감정의 전국적 유포 기제를 세 가지 콤플렉스로 설명한다.

독재적인 아버지가 4형제 중 큰형을 편애하면서 막내를 노골적으로 차별한다면, 큰형은 ‘편애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아버지의 편애에 도취된 큰형은 다른 형제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면서, 아버지처럼 막내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처음엔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지만, 큰형은 심적 고통을 방어하기 위해 합리화를 시도한다. ‘막내는 못됐으니까 차별당해 마땅해’ 등등. 첫째는 아버지의 편애로 획득한 기득권을 잃게 될까봐 더욱 아버지에게 충성을 바치게 된다.

둘째와 셋째는 ‘방관자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큰형을 부러워하면서 아버지한테 찍히지 않기 위해 아버지에게 충성을 바친다. 때로는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큰형보다 둘째나 셋째가 아버지에게 더 집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다. 종종 둘째나 셋째가 큰형보다 더 막내를 미워하게 되기도 한다.

막내는 ‘피학대 콤플렉스’를 갖게 된다. 첫째가 영남, 둘째와 셋째가 충청과 강원, 넷째가 호남에 해당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나의 아버지는 둘째였던 셈이다.

뜬금없이 지역감정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일베 현상’과 관련이 있다. 일간베스트저장소 이용자들이 호남지역 사람들을 거리낌없이 ‘홍어’라고 지칭하고, 급기야 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까지 욕보이는 사태가 발생한 것은 기존의 ‘댓글놀이’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국면이라고 본다. 군사독재 종식 이후 한국 사회에는, 지역감정은 나쁜 것이고, 광주민주화운동은 정치군인들이 자국민을 상대로 총칼을 휘두른 천인공노할 만행이었다는 합의가 있었는데, 그 합의가 깨지기 시작한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일베 현상은 첫째가 막내에 대해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끼던 단계를 지나 차별을 합리화하고 공격을 감행하는 단계까지 나아가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특히 일베의 ‘아우팅’이 벌어지는 장소가 공교롭게도 모두 편애를 받았던 지역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어린이를 ‘로린이’라고 표현해 물의를 빚었던 초등학교 교사, 언론에 보도되기도 전에 먼저 일베에 ‘보도’된 여대생 저수지 피살 사건, 한 마트에서 판매하는 노트북 화면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영상을 띄워놓고 일베에 자랑한 일 등으로 미뤄 보면 이 지역에서 일베는 상당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친일과 독재세력을 미화하는 정치적 토양으로 기능했던 지역이 이제 대한민국의 건전한 상식 자체를 거부하는 세력의 숙주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든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허무는 짓을 하고도 큰소리칠 수 있는 이유는 지역감정에 기반한 정치적 본전이 든든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4형제가 함께 독재자 아버지가 심어놓은 콤플렉스를 벗어던지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회복은 요원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아버지는 말년에 방관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셨다.

이재성 사회부 사건데스크 s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