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방에만 두고 레지나의 글 방으로 옮겨놓지 않은 글이네요.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한 결심.. 이란 제목으로 글을 써놓고, 글 정리하는 일을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위가 탈이 나고 몸이 더욱 안 좋아져서 하는 일 없이 6개월이 지나버렸네요.
저 아니면 안 될 일을 하는 것도 제 능력으로 되는 일은 아니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못하면 말지~ 그것도 내 욕심이지~ 하고 그동안 다 내려놓고 지냈었지요.
이제 슬슬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하다 힘들면 다시 그만 두지요.
생활의 원칙을 세웠어요.
한의원 가는 것과 운동하러 나가는 것 외의 외출은 일 주일에 한 번만 할 것.
우선순위 1 - 레지나가 아니면 안 될 일
우선순위 2 - 아들들과 관계된 일
우선순위 3- 지인들 만나는 일.
한 주간에 여러 일들이 겹치면 그중 딱 한 가지만 하려구요.
집중할 수 있을만큼의 몸상태가 되어야하니, 아주 조금씩 더디고 더딘 작없이 될 것 같습니다. ^^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한 결심
암이 재발해서 수술을 받은 후로 벌써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육체적인 고통 외에도 다른 심각한 고통들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지독한 항암 후유증으로 집중해서 긴 글을 읽기도 어려웠습니다. 아직 맘속에서 화가 와르르 올라올 때가 있고 항암 부작용들이 좋아지지 않아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 때가 있지만, 요즘에서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한숨 돌릴 만큼의 여유가 생긴 것 같습니다.
해야 할 일들은 많은데, 아직 하루에 두어 시간 집중할 수 있을 뿐인데다 오래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더욱 마음이 바쁩니다. 어제 어느 책에서 유방암에 걸렸던 이들이 치유되었다가 재발했을 때 살 수 있는 기간은 보통 2년이라는 사실을 읽었습니다. 유방암은 전이율이 높아서 재발한 환자의 70퍼센트는 3년 내에, 90퍼센트는 5년 내에 다시 재발한다는 조사결과도 찾아보았습니다. 몇 주 전에는 의사 친구들로부터 제가 이미 7년 전에 뼈전이가 되었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받았습니다. 수술 전날 한 검사에서 갈비뼈와 목뼈에 까맣게 보이는 부분이 있어서 뼈로 전이가 된 것 같다며, 항암치료 후에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암세포가 항암제에 반응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고 했었는데, 수년간 줄어든 부분도 있고, 변화가 없는 부분도 있고 새로 생기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은 “아직은 이 세상에서 할 일이 많으니까 분명히 낫게 해주실 거야.”,“네가 이렇게 밝게 사는데 하느님이 설마 죽이시겠냐?”하며 응원해주지만, 마냥 낙관적으로 지내다가 두 달 후 정기검진 후에 덜컥 항암치료를 다시 시작하게 되어 제 인생의 중간 마무리(어쩌면 최종 마무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을 것입니다.
올해에는 거부감이나 부작용이 생길까 걱정되어서 알리기를 미루어왔던 저와 하느님과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써놓은 엄청난 양의 졸글들도 다듬고 순서를 잡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여유가 더 생기면 환우 자매의 권고대로 ‘유언일기’를 써서 아들들이 살아가면서 처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조언을 담아보고도 싶습니다.
형편없는 재주로 그 일들을 다 해내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선 ‘레지나가 아니면 안 될 일’만 하고, ‘레지나가 아니어도 될 일’들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인터넷 신앙카페 온-오프라인 활동은 쉬고(환우 카페에서만 댓글 달고), 환우 이외의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고, 미사 끝나고 곧장 집으로 돌아오고, 전화통화를 줄이고, 성당 활동은 분과 모임 한 개만 하고(회식은 빠지고), 기도 모임 탈퇴하고, TV 드라마와 뉴스도 안 볼 거고, 신문이나 일반 서적은 물론이고 영적 독서 시간도 줄이고, 집안일은 웬만하면 남편한테 미루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아니면 안 될 일만 골라내어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남은 인생 동안 제가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한 결심입니다. 얼마 전에 몸도 마음도 몹시 지쳤을 때 성경을 읽다가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묵시 2,5)라는 부분에서 마음이 턱 걸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글들을 정리하고 못다 한 이야기를 쓰면서 주님께서 함께 해주셨던 순간들을 되새겨보는 시간들이 제 마음에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다시 지펴줄 거라 기대합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담담히 제 상황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낫고 싶은 간절함은 여전하니까 행여 저를 이쯤에서 불러갈 생각일랑 하덜덜덜 마세요. 재작년에 수술을 받은 후에 제가 했던 결심 기억하시지요? ‘고통을 겪는 일’을 믿음과 사랑을 완성해내기 위한 ‘작은 일’로 생각하고 ‘거룩한 지향’을 두고 견디기로 마음먹었었지요. 그때의 의연함이 무색하게도 주님과 가족들에게 못나게 굴 때가 많았네요. 죄송해요. 제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섭섭하시겠지만 일단 졸업시켜 주세요. 이젠 '고통을 겪는 일'은 그만 할래요.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그러니까 이젠 ‘아프는 일’은 그만 시키시고 건강을 웬만큼 되찾게 허락해주세요. 제가 하는 일들을 응원해주실 거라 믿고 씩씩하게 시작할게요. 고마워요.”
2013년 1월 29일 바쁘고 바쁜 엉터리 레지나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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