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레지나의 묵상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최고의 ‘힐링’

김레지나 2013. 2. 20. 18:38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최고의 ‘힐링’

 

  은혜로운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인생 최고의 정점에 오른 한 젊은 여성이 말기암 선고를 받은 후에 쓴 투병기를 읽고 예수님 수난의 은혜로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사랑을 받으며 살았던 그녀가 ‘삶의 끝에 와서야 알게 된 것들’이라는 주제로 엮은 삶의 지혜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는 명성에 걸맞는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가족과 나눈 이별의 슬픔을 함께 앓느라 울적해진 탓도 있었겠지만, 저나 제가 아는 몇몇 환우들이 처한 상황은 그녀의 삶만큼 훌륭하지 않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엉뚱하게도 화가 났습니다. 그녀는 책을 통해서 감동적인 흔적을 남김으로써 죽음을 맞이하는 데에서도, 죽은 후에도 성공하였지만, 실제 우리네 삶에서는 그녀처럼 ‘아름다운 삶이었고 후회 없는 삶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친 탓입니다.

 

  누구나 그녀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관심과 위로 속에서 품위 있게 투병생활을 할 수 있어야 마땅하겠지만, 세상에는 정의롭지 못하고 도리에 어긋난 상황 속에서 살다가 외롭게 죽음을 맞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U 환우는 삼 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는데, 오래 전 남편과 딸이 U 님이 앓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집을 나가버려 홀로 죽음을 맞을 처지에 있습니다. Y 환우는 암이 곳곳에 전이되어 키가 7센티가 줄고 허리도 펴지 못하는 상태인데, 뚜렷한 직장이 없는 남편과 초등학생인 세 아이들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 통증보다도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라며 하소연합니다. A 환우는 결혼 후 8년간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무책임한 남편 때문에 암 수술을 받고 퇴원하자마자 직장에 복귀해서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들보다 더 딱한 처지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우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그 환우들은 그녀처럼 ‘좋은 삶이었고, 세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라고 고백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녀의 책은 요즘의 대세라는 ‘힐링’ 상품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이 한창인 사람들은 그녀의 메시지에서 삶을 대하는 긍정과 희망, 가족에 대한 사랑과 건강의 소중함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몇몇 환우들의 마음을 짐작해보면서, 생의 마지막 즈음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아름다운 고백이 ‘힐링’이 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나 아까운 나이에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은 그녀의 글도 당장에 극심한 고통의 한 복판에 있는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지 못한다면, 요즘 유행하는 힐링 서적, 힐링 토크쇼, 힐링 캠프 등은 말할 것도 없이 가벼울 것입니다.

 

  문득, ‘아!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장 비천한 삶을 택하시어 가장 고통스런 죽음을 맞아야하셨구나.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수난이야말로 우리에게 최고의 ’힐링‘이구나.’하는 깨달음이 스쳤습니다.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부모가 '아이는 천국에 있을 테니 슬퍼하지 마라.'는 말보다는 자식 셋 잃은 부모가 말없이 잡아주는 손길에서 더 큰 위로를 받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위로와 치유를 받습니다.

 

  그녀는 책의 마지막에 ‘화내지 않고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고도 적었습니다. 저는 ‘고작 화내지 않고 떠나는 것’이 생의 마지막 의미가 된다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세상 소풍이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라는 천상병 시인의 말에서처럼 우리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으려면, ‘가서’ ‘말할 상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갈 곳이 영원한 행복이 있는 하늘나라이고, 말할 상대가 사랑이신 하느님이라면, 어떠한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었다고 할지라도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예수님의 수난도 은총이고, 예수님의 죽음도 은총이고, 예수님의 부활도 은총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시니, 우리는 부활의 눈으로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바라볼 수 있는 축복을 누리고 삽니다. 우리는 화내지 않고 떠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활의 희망을 품고 떠날 수도 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사랑하는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장 고귀한 믿음의 터전 위에 스스로를 세우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유다 20-21, 공동번역)

 

                                                       2013년 2월 18일, 은혜로운 사순시기에, 엉터리 레지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