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때문이야.
유지니오야, 하느님의 사랑이 훌륭하고 값지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니?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시고, 고통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에 그 사랑이 극진하고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잘 들어봐. 부모가 어려움 중에서 사랑으로 자식들을 키웠다면 자식들도 부모를 그만큼 더 깊이 사랑하겠지? 엄마가 너를 정말로 사랑하니까 네가 아프거나 다치면 엄마 마음이 정말로 아프겠지. 때로는 엄마가 대신 아프면 좋겠다고 기도하겠지?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거야. 우리를 그만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거야. 그리고 우리에게서도 그런 훌륭한 사랑을 받고 싶으신 거고.
어떤 부모가 자식한테 “내가 너한테 재산도 무지 많이 물려 줄 거고, 몸에 좋은 것들 많이 먹여줘서 오래 살게 해주겠다. 그러니까 너 나를 사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래서 자식이 좋은 것 받고 싶어서 부모한테 잘한다면, 그건 가치 있는 게 못 돼.
하느님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지금 당장 좋은 것만 받기 위해서 하느님을 믿는다면 우리 믿음을 보고 기쁘시지 않을 거야.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그런 얄팍한 사랑으로 갚는다면 안 되겠지. 인간은 그렇게 가치 없는 사랑만 할 수 있는 부족한 존재로 창조되지 않았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단 말이야. 우리도 훌륭한 사랑을 할 수 있어.
하느님께서 우리 눈에 띄지 않게, 숨어계시는 이유가 뭔지 알아? 하느님이 짠~ 하고 나타나서 “내가 너희를 만든 하느님이다. 너희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라고 한다면 누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들겠어? 그래서 나타나실 필요가 없는 거야. 또 하느님이 엄청난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내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믿어라”라고 말했다고 치자. 그러면 사람들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기는 하겠지만, 사랑할 수는 없겠지? 그래서 여기저기서 기적을 일으키실 필요도 없는 거야.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면 정말로 기쁘시대. 어떤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하느님께서 좋은 것만을 주시니까 사랑한다면 당연한 거니까 하느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겠지? 그런데 우리가 가진 좋은 것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공짜로 주신 것들이야. 하지만 고통만은 온전히 우리들 것이야. 그래서 가장 큰 기도는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고통을 봉헌하는 거래.
성모님도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셨어.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얼마나 괴로우셨겠니? 하지만 그 고통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신 거야. 성모님도 고통을 피하고 싶으셨겠지. 자유의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는데 하느님의 뜻 모두를 받아들이셨단 말이야. 하느님과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받아들인 고통이기에, 성모님의 고통이 값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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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위글에 대한 댓글로 나눈 대화입니다.
한요한님께서 그럴듯하다고 말씀해주시니까 완존 힘이 나네요.
캄솨합니다.
모 신문 기사에서 차신부님의 책에 대한 평으로
책에 고통은 철저히 자연현상이라고 책에 쓰여있다고 되어 있다 라고 했었지요.
제 맘에 들지 않는 다른
저는 책에서 고통이 사랑에 그 답이 있다는 역설적인 진실을 직관하는 것,,그 중요성에 대한 짙은 여운을 읽어내고 무릎을 쳤답니다.
읽은지 좀 되었다고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기도는 그 응답과 상관없이
이미 그 자체로 위로이며 보상입니다 "
지바고의 라라
교리도 믿지않고 전례도 믿지않는라라가 교회는 하느님의 품이라는 말이 가슴에 남았었는데
값진 자유의지 ~~```레지나글 넘 좋네
요한님 말씀마따나~~``더 극명하네
기도는 사실 고통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품> 히야~~ 정말 좋은 말씀이어요. 그 품에 안겨있으니 늘 행복해야겠지요.
위 글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당시에 <성령호칭기도>를 꽤나 열심히 바쳤는데, 기도문 중에 <고통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십시오.>라는 구절이 있어요. 고통의 가치를 알려진 바대로 말고 어떻게 더 깨달을 수가 있지? 하고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어느날 운전하고 레지오 회합 가는 길에..
"맞다. 고통이 없으면 훌륭한 사랑을 못하는구나.
레지오 회합가서 엄청 싱글벙글 웃었더니 이유를 묻더라구요.
"제가요. 고통의 의미가 뭔지 조금 깨
단원들의 반응은.."글쎄 그래서 어쨌다고
제가 그래서 설명을 시작하려다 말았던 기억이 납니다.
신앙인들이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는, 몸으로 살아내야 하는 '신비'로 남아야하는가 봐요.
아무튼 저는 그날의 깨달음 이후로
제 나름대로 하느님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하느님을 더 사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깨달음 대로 실천해볼라고 완존 순종적인 사람이 되었던 것 같구요.
근데, 요즘은 점점 그 기쁨과 사랑이 희미해져가서 심술쟁이가 된 거 같아요.ㅎㅎㅎ
울 대장님이 응원해주시면 매번 심술이 풀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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