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열둘을 뽑으시고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 6,12-19
부르심은 자격이요, 응답은 능력이다
저는 가끔 저의 신상에 대해 생각합니다. 신부가 아니었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죄도 허물도 많고, 뛰어난 능력도 없고, 잘난 것이 없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도구로 쓰고 계시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감사하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분의 자비가 크시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잘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밤을 새우시며 기도하신 예수님, 그러고 나서 많은 제자들 가운데서 열 둘을 뽑으셨습니다. 그런데 밤을 지새우신 것이 실수였습니다. 우리가 잠을 제대로 자지 않으면 비몽사몽입니다. 아마 예수님도 그러셨나 봅니다. 특별히 뽑힌 사람을 보니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그렇게도 인재가 없었나? 어떻게 힘으로 하느님의 다스림을 세우려는 혁명당원이 어떻게 주님 옆에 설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도 볼 눈이 없으셨나요? 배반자가 될 유다를 뽑으시니 말입니다. 모두가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못된 놈이라고 바라보는 세리 마태오를 뽑으시다니 그렇게도 눈치가 없으신가요? 정말, 보고야 믿겠다고 한 토마스나 아버지 하느님의 얼굴을 보여 달라고 청하던 바르톨로메오, 자신 만만했던 베드로도 자격 미달입니다.
기도하시고 뽑은 결과입니다. 저 같으면 그들은 쏙 빼놓았을 텐데 주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여 부르시고 당신의 대리자로 지정하셨습니다. 정말이지 예수님의 품이 아니라면 도저히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뽑힌 사람의 경력이나 배경, 성격, 능력은 이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신상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그를 당신의 도구로 쓰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혹 뽑힌 이들에 대해서 개인의 단점을 얘기할 수는 있으나 그의 공적인 권위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그 약점을 통해서도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12,8-10)하고 말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1코린1,27). 주님의 큰 마음과 뜻, 그리고 안배와 섭리를 생각하는 가운데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저는 요즘 고민을 합니다. 몇 번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여전히 게으르고 맡겨진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끌어안고 가라고요?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을 옆에 두고 속 끓일 생각해 보십시오. 밥맛 떨어지고 꿈에 나타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많은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 자격입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응답한다면 주님의 능력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자비가 없다면 어떻게 감히 저 같은 죄인이 주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주님의 크신 자비가 저를 지탱하게 합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주님께는 모두를 껴안을 수 있는 큰 품과 온유함이 있었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능력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만 말하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요한 8,28-29). 이렇게 주님께서는 스승이기에 앞서 제자의 삶을 충실히 살았기에 스승이시기도 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저 같은 사람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며 봉사의 기회를 거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오히려 교만함이 아닌가 합니다. 오히려 ‘부족하지만 주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상 안에서 매 순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기꺼이 응답하시길 바랍니다. 응답은 곧 능력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몸소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악령들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마태10,1)고 말씀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는 당신이 필요로 할 때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당신의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도구 삼아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분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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