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엽 신부님의 책<사도신경> p.103
6.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중에서
예수와 어머니
원점으로 돌아 와서 마리아에게 집중 조명해 보자. 성경은 예수님과 마리아의 관계를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먼저, 예수님은 어머니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의 전형으로 보았다.
어느 날 군중 속에서 한 여자가 큰 소리로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루카 11,27)하고 외쳤을 때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이 말씀은 결코 성모 마리아를 홀대한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여기의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그냥 생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한 여인이 나를 낳아서 나에게 젖을 먹였다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운 게 아니다. 처녀 마리아가 열 여섯 살 때 내 어머니로 선택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었기에 간택된 것이다. 이 세상 임금 부인될 사람도 전국에 방을 내려 간택하는데, 이 메시아를 낳은 어머니를 하늘에게 간택 안 하셨겠느냐."
간택 기준이 뭔가. 예수님 표현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다. 마리아가 바로 그 점에서 으뜸이기 때문에 간택되었으니, 그 점을 부러워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예수님은 어머니의 간섭을 수용하였다.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는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첫 기적을 베푸신 '카나의 혼인 잔치' 사건에서 엿볼 수 있다. 잔치 도중 포도주가 다 떨어지지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알리게 한다. 이에 예수님은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신다. 마리아는 주저 없이 시중꾼들에게 이르신다.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그러고 나서 뒷전으로 물러나 아들을 신뢰하며 채근하신다. 결국, 예수님은 마리아의 청에 못 이겨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행하신다.
다분히 상징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이 기적은 구세사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성모송을 바칠 수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이 기적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겠다.
2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마리아는 우리의 필요를 먼저 들으시고 예수님께 우리의 애원을 전달해 주시는 '전구자'시다. (후략)
오늘 믿음
여인 중에 복된 여인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그 곁에 서 있던 사랑하는 제자를 가리키며 유언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인류 구원의 대업을 완수하는 절정의 순간, 절체절명의 찰나에 예수님은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이 말씀을 하셨을까? 단지 제자 요한의 어머니가 되어달라고 사적인 부탁을 하신 것일까? 아니다. 요한이 상징하는 '제자단', 나아가 '교회'의 어머니가 되어줄 것을 당부하신 것이다. 자신을 사적인 아들로 묶어두지 않고 공인의 길을 가도록 묵묵히 뒷바라지하며 가장 필요한 순간에 늘 곁을 지켜주신 어머니에게 예수님은 교회를 맡기신 것이다.
사실,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과 격이 다르다. 예수님은 메시아시다. 나는 여기서 우리 구원에 대해 자신 있게 선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만 아는 사람들은 구원 받는다.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 몰라도 구원 받는다. 그러나 예수님을 모르고 성모 마리아만 아는 사람은 구원 못 받는다.
그러니까 구세사적으로 성모 마리아 없는 예수님은 어떻게 됐든 우리 안에서 의미가 있지만, 예수님 없는 성모 마리아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는 성모님도 인정하시는 바다.
하지만, 우리가 훌륭한 신앙의 삶을 산 인물을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엘리사벳은 성모 마리아를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루카 1,42참조) 여인이라 칭송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루카 1,48)라시던 말씀은 빈말이 아니었다.
알베르토 성인은 이렇게 말한다.
"성자께서는 당신의 어머니를 무한히 존귀한 존재로 만드셨다. 열매 속에 무한한 완전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 열매를 맺게 한 나무에도 어느 정도 무한한 완전함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시리아 사람 에프렘이 쓴 시는 마리아를 향한 우리의 시선에 깨달음을 준다.
오, 주님, 우리가 당신 어머님을 어떻게 물러 모셔야 할까요?
'처녀'라고 부르면 한 아이가 일어나고
'유부녀'라고 부르면 한 여인이 일어서는데
그런데 그분은 처녀면서 남편이 있으셨지요.
오, 주님, 당신에게 마리아는 누구십니까?
분명히 그분은, 그분만이, 당신의 어머님이십니다.
그런데 또한 그분은 당신의 누이요 친구시지요.
온 교회와 함께 그분은 당신의 연인이요
당신에게 모든 것입니다.
당신이 오시기 전에 그분은 당신과 약혼하셨고
성령이 당신을 데려왔을 때 당신을 잉태하셨습니다.
당신이 태어나실 때 그분은 당신 어머니가 되셨고
당신이 설교하실 때 첫 제자가 되셨습니다.
남자를 모르는 몸으로 그분은 당신을 가지셨고
당신에게 먹일 젖을 가슴에서 생산하셨습니다.
그분이 젖가슴은,
목마른 영혼들에게 영의 젖을 먹이는
당신의 자비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인(sign)이지요.
당신은 그분 안에 들어가 종이 되셨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지으신 당신이
그분 자궁에서 깊은 침묵에 잠기셨지요.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이 당신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왕들의 왕인 당신이 그분 안에서 비천한 몸이 되셨고
풍요의 샘인 당신이 그분 안에서 가난해지셨고
전사들의 전사인 당신이 그분 안에서 무력해지셨고
새들까지도 입히는 당신이 그분 안에서 벌거숭이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비천한 자를 들어 올릴 수 있고
굶주린 자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고
힘없는 자들을 힘있게 할 수 있고
벗은 자를 입힐 수 있으십니다.
이 시야말로 가장 객관적으로, 그리고 가장 감동적으로 예수님의 탄생과 성모 마리아의 관계를 읊고 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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