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마음을 드높이,
......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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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새로운 부르심을 받고 이 곳 중국 스자좡에 도착한지 어느 덧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없는 이곳에서, 중국말이라고는 ‘니하오’와 ‘짜이찌엔’ 정도를 겨우 알고 시작한 이 곳 생활에 이제는 제법 익숙해 져서 가끔씩은 뜨개질을 하며 햇볕을 쬐고 있는 중국 할머니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되지도 않는 중국말로 할머니들을 웃겨드리는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가끔씩은 번거롭게 여겨지는 세상과의 인연 때문에 항상 분주하게 보내야만 했던 서울 생활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언제나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혼자 일어나서, 혼자 기도를 하고, 혼자 미사를 드리고, 혼자 음식을 준비해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빨래를 하고, 혼자 청소를 하고, 혼자 공부를 하고, 혼자 돌아다니다, 혼자 집에 들어와서 혼자 잠자리에 들어가는 것이 요즘 내가 살아가는 하루의 모습이다. 이렇게 혼자 하루를 보내는 일이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어떤 면에서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평화로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 할 수도 있겠다. 혼자 있을 때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서 더 깊이 묵상하면서 성숙해 질 수 있다.
이렇게 혼자 지내는 일을 제법 잘 즐기는 편이면서도 혼자 하는 것이 너무 어렵고 싫은 일이 딱 한 가지 있다. 혼자 미사를 드리는 일이다. ‘주님의 평화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세상을 향해 양팔을 벌려 주님의 평화를 나누려 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그 짧은 고요가 내게는 아직 영원처럼 길게만 느껴진다. 그럴 때면 무슨 신비의 공간인양 옷장 속에 차려진 제대와 그 앞에 걸려있는 선교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제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요?’하고 하느님께 여쭙고는 한참을 멍청하게 앉아 있곤 한다. 이곳 중국에서 선교사제로 살아가면서 제일 먼저 익숙해 져야 하는 일이 이렇게 ‘혼자 미사 드리는 일’이 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만에 어느새 미사봉헌을 ‘일’이라고 말하는 신세가 되어버렸구나.
이곳 중국으로 떠나오기 바로 전에 4박 5일 간의 짧은 일정으로 대만에서 활동하는 동료 신부님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그 곳에서 만난 한 친구와 나눈 대화가 요즘 많이 생각난다.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한 친구는 최근 몇 주 동안 주일 미사에 나오는 본당신자 수가 절반으로 확 줄었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목하는 데 있어서 본당 신부가 엄청나게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걱정하는 내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다 내 부덕의 소치지 뭐. 주일 미사에 보통 4명 정도는 나왔는데 최근 몇 주 동안 2명밖에 안 나오고 있어. 여름이라서 어디 놀러들 가셨나봐. 하하하”
그때 그 친구는 어느 막노동꾼보다도 더 그을린 구릿빛 피부 속에 감춰진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소탈하게 웃었다. 주일 미사가 그 정도니 평일 미사는 당연히 텅 빈 성당에서 혼자 봉헌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자신이 빈 본당을 충실히 지킴으로 신자들이 없는 대만의 한 작은 본당에서조차 하느님께 바쳐지는 주님의 희생 제사가 끊이지 않는다는 기적에 놀라워하며 만족한다고 말했다. 몇 년 만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자기가 맡고 있는 본당이 낡아서 할 일이 많다며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가 참 건강하고 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게는 아직 그런 본당도, 한 두 분의 신자도 없지만 나 역시 내게 주어진 이 상황을 건강하고 성스럽게 맞이하고 싶다. 작은 옷장 속의 제대가 나의 본당이고 하느님께 기도를 바치면서 항상 함께 길을 걸어가는 나의 모든 친구들이 내 본당신자들이니 사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선한 의지를 가지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봉헌하면서 살아가는 나의 친구들이 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또 그들은 그곳에서 건강하고 성스럽게 살아가는 일이 우리가 이 삶의 여정의 어느 순간, 어느 공간에 머무르고 있는지에 관계없이 가장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눈을 감은 채 미안한 마음, 용서를 청하는 자세로 나의 신자들과 함께 영적인 미사를 봉헌한다. 한국에서는 미사를 드릴 때마다 본당 전체를 가득 메운 신자 분들을 대하면서도 그 분들이 이렇게까지 고맙고 소중한 분들이라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 분들이 계시기에 나와 같은 사제, 그리고 사제들의 직무가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사실도 뼛속 깊이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단 한 달 만에, 이렇게 아무런 응답이 없는 미사를 봉헌한지 단 한 달 만에 교회 안에서, 그리고 사제들에게 있어서 신자 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인지를 새록새록 깨우쳐가고 있다. 신자들이 없다면 도대체 교회는, 또 사제는 어느 곳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은 참 용하시다. 신자 한 분 없는 이곳에서 살게 하심으로 당신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께서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를 깨닫게 하시니 하느님은 참 용하시다. 아직 욕심이 많고 철없는 사제를 신자 한 분 없는 이곳으로 불러 주심으로 오히려 신자 분들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 분들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조금씩 사제로서 철들게 하시니 하느님은 참으로 용하시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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