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손님을 배웅하고 로마 시내로 들어오는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부터 속이 불편하다 싶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화장실이 급했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차가 막히지 않아도 40분가량 걸리는 거리인데 그날따라 교통체증까지 심해서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장담을 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시간이 점점 경과함에 따라 식은땀까지 흘러내릴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기도가 절로 바쳐졌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에다 신앙고백까지 다 바쳐가면서 ‘제발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시면 정말 착하게 살겠다’고 약속까지 드렸건만 하느님은 계속 모른 체 하고 계셨다. 거기다가 정신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옆에 앉은 사람은 속도 모르고 자꾸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결국 화를 버럭 내버렸다. 그 사람은 ‘참 이상한 사람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차창으로 돌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잠을 청하는 그의 여유가 그때처럼 행복해 보였을까.
얼마나 힘을 주고 참았는지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달아올랐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절망에 가까운 심정이 되어 앞으로의 일이야 어찌 되든지 일단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소리를 지르려는 찰라, 갑자기 내 앞에 펼쳐지는 상황을 보고 기절을 할 정도로 놀랐다. 내 앞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버스의 가운데 문 계단으로 내려가서 유유히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맞다! 왜 유럽의 버스에는 화장실이 있다는 사실이 생각나지 않았을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거늘 나는 너무나 급한 나머지 정신을 잃고 미련하게도 오로지 참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 빠져나갈 길이 있는데도 그 길을 보지 못하고 엄한 고생을 한 것이다. 흔들거리는 버스의 변기에 앉아 같이 따라 흔들거리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만약 내 앞의 젊은 친구가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 행운이 내게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을 하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실은 행운이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인데......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상황에 빠질 때도 있다. 가끔씩 인생을 포기한 듯 절망의 나날을 지내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들은 어떤 대단한 행운이 찾아와서 한 순간에 자기의 팔자가 뒤바뀌기를 바라는 일확천금의 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행복은 언제나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그 행복을 체험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들은 실제로 불행한 사람들이다.
네 잎 클로버를 찾게 되면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흐뭇한 마음이 들지만 네 잎 클로버를 찾기란 쉽지 않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란다.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우리가 무심코 짓밟고 서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 잎 클로버. 그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란다.
뜬구름 같은 행운을 쫓아 헤매면서 자신의 행복을 짓밝는 것만큼 인생을 허비하는 것도 없을 듯하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미 얼마나 행복한지를 헤아릴 수 있는 여유가 우리를 좀 더 깊고 풍요롭게 존재할 수 있는 길로 이끌어 줄 것이다. 행운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아니, 정 반대로 이미 행복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잊지 말아라, 죽음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과 무덤에 갈 시간을 너는 모르고 있다. 죽기 전에 친구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네 힘껏 그들을 도와주어라. 오늘의 행복을 마다지 말고 너의 정당한 욕망을 채울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집회14,12-14)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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