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갈 수록 땀을 뻘뻘 흘리며 몸뚱이를 움직이며 살아가야만 하는 선교지에서의 삶이 더욱 기다려진다. 주룩주룩 끝없이 내리고 있는 겨울비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는데 문득 십 여년 전 파푸아 뉴기니에서 만났던 배리 놉스 신부님이 떠올랐다.
그 분은 호주 출신으로 삼십년 이상을 파푸아 뉴기니의 정글 속에서 원주민 형제들과 함께 사셨던 분이셨다. 어느 날 그 분과 함께 정글 속에 있는 공소를 방문하기 위해 길을 걷고 있었다. 신부님은 기다란 ‘정글도Bush knife’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는 좁은 통로를 가로막고 있는 나뭇가지들을 툭툭 자르면서 앞으로 나아갔는데 가끔씩은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 편안한 길에서도 그런 행동을 계속하는 것이 내게는 조금 의아해 보였다.
그 의문은 정글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곧바로 풀렸다. 길을 잃고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때 나뭇가지들을 툭툭 쳐가면서 남겼던 흔적을 따라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정글에서의 강자는 길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기보다 길을 잃었을 때 재빨리 되돌아 나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 우리들의 신앙과 관련하여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
나는 왜 믿고 있는가?
나는 어떻게 믿고 있는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가끔씩 우리는 위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시기를 겪게 되기도 한다. 나는 바로 그때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의 첫마음으로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회개’의 은총이 강하게 우리에게 내리는 때라고 생각하는데, 주님께로 다시 되돌아오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이 곧 우리들 삶에 있어서의 죄와 상처의 흔적들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서 죄와 상처의 순간들, 그 흔적들을 찾지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회개도 어렵다. 진정한 신앙인은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죄와 그 흔적들을 잘 돌아보고 주님께 돌아오는 길을 잘 찾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바로 회개하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한 해의 화두가 다시 ‘회개’이다. 내게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소가 바로 ‘겸손’과 ‘선함’이다. 그 어떤 화려한 능력을 가진 사제도 겸손하고 착한 사제보다 더 신자들을 감동시키며 회개의 은총으로 초대할 수는 없다.
겸손하고 착하신 목자, 우리 주 그리스도를 닮은 사제가 길 잃은 한 마리 어린 양을 찾아 기꺼이 길을 떠나고 그를 살려낼 수 있다. 착하신 목자를 많이 닮은 착한 사제로 올 한 해를 살아가고 싶다. 진정으로 내가 먼저 회개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게 맡겨주시는 착한 영혼들과 더불어 착하게 살아가고 싶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요한10,11)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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