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이수철 신부님

아름답고 거룩한 순종

김레지나 2011. 7. 2. 23:28

2011.6.30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창세22,1-19 마태9,1-8

 

 

 

 

"아름답고 거룩한 순종"

 

 

 

오늘은 ‘순종’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삶은 순종이자 무조건적 지상명령입니다.

순종의 아름다움이요 순종의 감동입니다.

순종의 삶 앞에는 저절로 침묵이요 승복입니다.

 

어제 본원에서 세월의 풍화작용에 몸은 노쇠했어도

늘 그 자리에서 바위 같이 사시는 수도형제들을 보며

새삼 ‘삶은 순종’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삶 자체가 감동이요 살아있는 강론입니다.

본원에 가는 도중 차 안에서 도반과의 대화중에

몇 가지 공감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1.“아빠스님이 예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진 것 같습니다.”

제 말에 대한 도반의 즉각적인 대답입니다.

“공동체에서 제일 많이 부딪히는 분이 아빠스님이 아닙니까?

흐르는 격랑의 물살 속에 바위와도 같습니다.

이런저런 물살에 닦이고 깎여

둥글둥글 부드럽고 너그러워질 수뿐이 없습니다.

그런 바위 위에 희망의 소나무 한 그루 있으면 참 멋지겠습니다.”

 

 

폭소를 터뜨렸지만 깊이 공감했습니다.

공동체 생활 중에 순종의 수련으로 둥글둥글 원만해 지는 수도형제들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살을

고스란히 직면하며 살아가는 바위 같은 삶, 그대로 순종의 삶을 상징합니다.

요즘 들어 더욱 마음이 끌리는 주변의 바위들입니다.

 

2.“예전의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그 도반에게서 두 번째 듣는 이야기입니다.

“배나무 밑에서 일하다가 깨달았어요.

한 나무인데 나무 가지마다 배 달린 위치가 다 달랐고

크기와 모양도 다 달랐습니다.

자기 탓 없이 주어진 자리에 열매였습니다.

안 좋은 자리에 작은 배 열매들도 꼭 붙어있었습니다.

때가 되어 주인이 딸 때까지 꼭 붙어있을 것입니다.

아, 저렇게 살아야 되는구나. 깨달았습니다.”

 

자리 탓하지도 비교하지도 말고 하느님이 수확하실 때 까지

주어진 제 자리에 끝까지 충실한 삶이 바로 순종의 삶이요 정주의 삶입니다.

정주는 바로 순종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자유롭게 하고 성소를 굳건히 하고

불평불만도 눈 녹듯 사라지게 합니다.

 

3. “민들레 홀씨가 사방으로 흩어지듯 정주하며 순종의 삶에 충실할 때,

때가 되면 순종의 향기는, 순종의 홀씨는 멀리 멀리 흩어질 것입니다.

원장 수사님의 최근 발간한 책 역시

순종의 홀씨 같이 세상 멀리 멀리 퍼져가고 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순종의 향기, 순종의 열매를 보시는 하느님이요 믿는 이들입니다.

 

3. 제 젊은 조카의 삶도 참 신선하여 감격입니다.

가정생활, 직장생활로 빡빡한 일정 중에도

말기 암으로 투병중인 아버지의 간호에도 최선을 다합니다.

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잘 해결해가면서

전화할 때 마다 늘 쾌활하고 거침없고 씩씩한 모습을 감지하니

저절로 신뢰가 갑니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삶의 현실을 직면하여 받아들이는

순종의 자세가 참 훌륭하여 고마움을 느낍니다.

 

오늘 창세기의 아브라함의 순종도 감동적입니다.

“아브라함아!” 부를 때 “예, 여기 있습니다.”라는 즉각적인 대답에서

늘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 깨어있는 삶의 자세가 감지됩니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이 겪는 시련이 너무 큽니다.

시련을 통해 아브라함의 순종을 정화, 단련시키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삶의 모든 시련들은 순종의 계기임을 깨닫습니다.

 

“아브라함은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고

두 하인과 함께 아들 이사악을 데리고서는, 번제물을 사를 장작을 팬 뒤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

 

이런저런 핑계나 변명 없이 곧이곧대로 순종하는 아브라함입니다.

극히 절제된 표현이지만

하나뿐인 유일한 희망인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칠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얼마나 착잡했겠는 지요.

이런 순종의 시련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믿음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순종의 믿음에 감격하신 주님의 축복입니다.

복음의 예수님 역시

주어진 불리한 상황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직면하여 해결합니다.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율법학자들의 태클에 개의치 않고

중풍병자의 영육을 치유해 주십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의 자세입니다.

 

“예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불리한 주위 환경에도 불구하고

중풍병자를 구원해 주신 주님이십니다.

이 일을 보고 군중은 두려워하며,

사람들에게 그런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순종의 삶 자체가 주님께는 찬양과 영광이 됨을 봅니다.

 

삶은 순종입니다.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님이십니다.

이런저런 시련을 순종의 계기로 삼아 순종의 삶에 충실할 때

마지막 순종인 죽음도 잘 맞이할 수 있습니다.

 

참 아름답고 거룩한 삶은 순종의 삶입니다.

 

매일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순종의 삶에 항구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