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N신부님을 2006년 본당 사순특강에서 처음 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본당은 N신부님 계신 곳에서 차로 7시간 넘게 달려야하는 먼 곳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건강도 좋지 않으시고 오전에도 다른 곳에서 강의하셨다는데, 먼 길을 마다 않고 오셔서 오후 2시부터 저녁 9시 반까지 열강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항암주사를 맞는 중이라서 가발을 쓰고 강의에 갔습니다. 긴 시간 동안 어찌나 열강을 하시든지, 피곤함도 잊고서 강의를 끝까지 들었습니다.
N 신부님께서 해외선교에 대한 꿈을 말씀하셨습니다.
“묵상을 할 때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 하시고는 한참을 울먹이시느라 말씀을 못 이으셨습니다.
“........하느님의 그 사랑이 얼마나 간절한지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렇게 먼 곳까지 강의하러 옵니다.”
신부님께서는 꽤 오랫동안 눈물을 글썽이셨는데, 저도 하느님 사랑에 취해있을 때라서 같이 울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N 신부님의 왕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N 신부님의 왕팬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드물게 있습니다.
가장 흔한 비난 중 하나가 “N신부님께서 가르치시는 믿음은 수준이 낮다. 성숙한 믿음을 가지려면 N신부님을 극복해야한다.”라는 것입니다. N신부님의 강의 중 극히 일부분을 들은 것으로 N신부님의 신앙 수준을 판단하려 드는 태도에서 나오는, 잘못된 비난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 중 한 문장만 떼어놓고 삐딱하게 생각하면, 쉽게 설명하시려 쉬운 용어를 사용하시거나 포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오해를 살만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N신부님의 믿음이 성숙하지 못하다는 비난은 천부당만부당합니다. 믿음은 신앙이 성숙한 사제라 할지라도 꾸준히 더하여지도록 청해야할 대상일 것이고, 어떤 단계의 믿음이라도 완전한 믿음을 이루는 부분일 것입니다. 수준 높은 믿음을 위해 버려야하는 수준 낮은 믿음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살아있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의 현존과 실재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N신부님의 묵상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제 것으로 느낄 수 있었고, 하느님의 현존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 '이곳'이 세상의 중심임을 깨닫고 감사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N 신부님은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믿음을 가르쳐주시는 분이시지, 하느님을 만나 복을 얻는 요령을 알려주시는 수준 낮은 믿음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또 다른 비난은 신부님의 유명세에 대한 것입니다. 신부님이 그 많은 일들을 유명해지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하시는 거라고 단정하고, “종교인은 유명해지면 안 됩니다.”라고 화를 내는 분을 보고 너무나 가슴 아팠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N신부님의 세속적 인기가 신부님의 좋지 않은 건강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지고 가셔야할 십자가라고 생각합니다. 드러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안전하고 편안한 길입니다. 말씀을 전해야하는 소명이 얼마나 버거운 짐인지 짐작 못하는 사람들은 신부님께서 '인기'를 즐기는 것이라고 얕잡아보고 수군대겠지만, 성령께서는 오직 하느님을 전하려는 순수한 마음만 남도록 일부러 마음속에 심한 저항을 불어넣어주시고 박해자를 허락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저는 신부님의 성찰과 묵상에서 성인들께서 겪으셨던 ‘영광스런’ 내적, 외적 갈등을 감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묵묵히 힘쓰시는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N 신부님의 왕팬으로서 신부님에 대해 가장 자랑하고 싶은 점은 ‘신부님께서는 큰 사랑으로 작은 일들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지역으로 N신부님께서 오시면 차량봉사를 해주시는 자매님이 있습니다. 그 자매님이 신부님 일행의 저녁식사를 대접할 기회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날은 7시간 걸리는 자동차 대신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시기로 되어 있었는데,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신부님께서 상담전화를 받으셨고, 비행기 시간이 임박한데다, 그 자리의 다른 분들이 모두 식사를 못하고 기다리는데도 30분 가까이 친절하게 상담해주셨다고 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자살하고 싶던 차에 우연히 신부님의 강의를 들었고, 전화연락을 해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를 더 해보자고 하실 수도 있으셨는데, 그 사람이 먼저 끊겠다고 할 때까지 부러 기다리시면서 희망을 가질 것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어 거듭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 자매님이 곁에서 듣기에는 상대편에서 한소리 또 하고 또 하고 짜증나게 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전화 끊자는 말을 먼저 하면 상처받을까봐 이런저런 말씀으로 위로해주시고 다음에 만나주시겠다는 약속까지 하시고, 전화를 끊고도 허허 웃으시는 신부님의 모습에 그 자매님은 크게 감동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신부님의 사랑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살하겠다는 형제님의 이야기를 차분히 다 들어주시고 함께 고민해주시는 모습과 7시간 걸려 오셔서 강의해주시는 열정적인 모습은 그 동기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영혼 하나하나를 위해 품은 큰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온 인류를 사랑하는 것보다 지금 곁에 있는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명예롭고 폼 나는 일을 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고 작은 일을 하는 것보다 쉽습니다. N신부님께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아무리 멀고 아무리 작은 본당이라도 찾아주시고, 아무리 모르는 사람의 귀찮은 전화라도 따뜻하게 응대해주시는 것은 그만큼 큰 사랑을 품으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N신부님과 동시대에 살면서 신부님의의 왕팬임을 자처할 수 있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도 미약하나마 하느님의 사랑으로 많은 사람들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찾아 해보렵니다. 제가 작은 일들을 통해서 신부님의 만 분의 일쯤의 사랑이라도 키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 일일수록 우리의 사랑은 커야합니다.”
2011년 2월 5일 엉터리 레지나 씀
'신앙 고백 > 레지나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참한 존재임을 고백하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0) | 2011.07.15 |
---|---|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사랑의 방주'에 태우셨으니 (0) | 2011.06.27 |
위대한 사람 (0) | 2011.05.08 |
잡채여, 잡채여! (0) | 2011.05.08 |
낫기를 원하느냐? (0) | 2011.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