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 원 신부님

☆ 십자가가 그분 안에서는 의미가 되고, 구원의 도구가 되기 때문에

김레지나 2011. 3. 13. 19:37

2011년 3월 10일 목요일[(자)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9,22-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22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도 사는데, 너는 왜 아까운 생명을 포기하려고 하는 거니?” 높은 산벼랑 위에 서 있는 나무가, 삶의 의미를 잃고 생을 마감하려고 산에 올라갔던 ‘우종영’ 씨에게 건넨 말입니다. 농사일마저 실패하고 서른 살이 되도록 제대로 한 것이 없다며 삶을 놓아 버리려고 하던 찰나, 나무가 그를 붙잡았던 것입니다.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숙명처럼 평생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나무, 불평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한결같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무, 겨울의 추위를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초연함을 가진 나무. 나중에 ‘나무 의사’가 된 우종영 씨는 늘 우리 가까이 있는 한 그루 나무에게서 자신이 살아야 할 삶의 가치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사실, 모든 피조물에게는 이렇게 숙명처럼 살아 내야 할 자신의 자리가 있습니다. 나무들이 비록 척박한 땅일지라도 처음 뿌리를 내린 자리에서 살아 내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예외는 아니어서, 때로는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산다는 것’은 모든 피조물이 그러하듯,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제 십자가를 지고 ‘제 갈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운명처럼 지고 사는 삶의 어려움들을 예수님 안에서 바라보며 그 의미와 가치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벗어 버리고 싶은 삶의 십자가가 그분 안에서는 우리 삶의 의미가 되고, 우리 구원의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묵상 글;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서울대교구 제기 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