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27 연중 제8주일
이사49,14-15 1코린4,1-5 마태6,24-34
"관상가(觀想家)의 삶"
벌써 입춘과 우수가 지났고 머지않아 경칩입니다.
봄입니다.
지난밤에 봄비가 내리니 아침의 봄 냄새가 향기롭습니다.
하늘 은총 가득한 봄입니다.
봄길, 봄빛, 봄비, 봄날, 봄꽃, 봄꿈 등
‘봄’자가 들어가는 말도 모두가 예쁩니다.
봄비만 내리면 아주 예전에 쓴 시가 생각납니다.
“마음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 하늘 은총
내 딸아이 하나 있다면
이름은 무조건
'봄비’로 하겠다.”
메말랐던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봄비처럼,
메마른 마음들을 촉촉이 적시는 봄비 같은 은총의 사람을
‘딸’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봄비 같은 하늘 은총의 사람이,
하늘 위로의 사람이 참으로 그리운 시절입니다.
하늘 은총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만물입니다.
하여 온 땅과 마음을 합하여 하느님의 봄비들이 되어
하느님을 찬미함으로 하루를 시작한 여기 수도승들입니다.
“온 땅은 춤추며 하느님을 기리라.
그 이름의 영광을 노래하여라.
빛나는 찬미를 당신께 드려라.
온 땅이 당신 앞에 꿇어 엎드려 당신의 이름을 높이 찬양하나이다.”
봄비가 상징하는바 하늘 은총, 하늘 위로를 전하는 관상가입니다.
봄비 같은 관상가는 우리 모두의 성소입니다.
소수의 영적엘리트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관상가의 삶으로 불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주제는 관상가의 삶으로
하느님의 관상가가 되는 길을 소개해 드립니다.
첫째, 보라(Look) 입니다.
보는 사람이 관상가입니다.
하여 관상가의 ‘관(觀)’자에는 ‘볼(見)’자가 들어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하느님의 얼굴을 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를 보고 깨달아 배우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진정 관상가입니다.
신구약 성경만 렉시오디비나 할 게 아니라
자연 성경도 렉시오디비나 하는 자가 참 관상가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자연성경을 렉시오디비나 한 결과입니다.
공부 많이 안 해도 누구나 잘 들여다보면
곧 깨달아 알 수 있는 누구나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자연성경입니다.
경외심의 상실로 인한 이런 자연성경책을
무분별하게 착취, 파괴하는 불경의 죄가 참으로 큽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라(Look at the birds in the sky).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귀하지 않느냐?”
몰라서, 믿음이 없어서
하느님 하실 걱정까지 도맡아 걱정하는 우리들입니다.
하여 시편저자는
‘너희는 와서 하느님의 일들을 보라. 인간에게 하신 그 놀라우신 일들을.’
하며 침묵 중에 끊임없이 일하시는 주님을 보라 하십니다.
눈만 열리면 일하시는 하느님으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봄비의 부드러운 손길로 대지를 깨우신 주님은
싹티우랴, 꽃피우랴 한 참 바쁘시게 되었습니다.
말없는 중에 분주히 일하시는 하느님을 보라고,
‘봄(見)’에서 나온 ‘봄(春)’이 아닌가 하는 생각됩니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Learn from the way
the wild flowers grow).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솔로몬도 그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도 차려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자연성경 렉시오디비나가 참 공감이 갑니다.
‘지켜보아라.’ 대신 영어 그대로
‘배우라(learn)'고 했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자연성경을 보고, 배우고, 깨달아가면서 깊어가는 하느님 체험에,
하느님 공부에 참 관상가입니다.
둘째, 찾으라(Seek)입니다.
무엇을 찾는가에 따라 형성되는 사람의 꼴입니다.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절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평생 사람이 되는 공부를 해야 사람이 됩니다.
저는 자연성경에 이어 내 삶의 성경을 렉시오디비나 할 것을 권합니다.
참 소중한 한 권뿐이 없는 내 삶의 성경이라면
도저히 함부로 막 살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며,
한쪽은 떠 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하느님을 섬기는 삶입니까, 혹은 재물을 섬기는 삶입니까?
내 삶의 성경을 렉시오디비나 하면 금방 들어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내 삶의 성경입니다.
이를 깨달아야 하느님은 내 삶의 줏대가 되고
하느님을 중심한,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신 삶을 삽니다.
내 삶의 성경은 아지 미완성입니다.
매일이 내 삶의 성경의 한 페이지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써가는 내 삶의 성경입니다.
그러니 지위, 명예, 지식, 재물, 권력 등
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을 찾으십시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함을 아십니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십시오(Seek first
the kingdom and his righteousness).
그러면 이 모든 것들은 곁들여 받게 될 것입니다.
주목되는 단어는 ‘찾는다(seek)’입니다.
부단히 하느님을 찾을 때 튼튼해지는 믿음과 더불어
하느님을 닮아 삶은 단순해지고 본질적이 됩니다.
저절로 걱정, 근심, 불안,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을 찾으며 내 삶의 성경을 써가는 자가,
렉시오디비나하는 자가 진정 관상가입니다.
셋째, '믿어라' 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습니까?
믿음이 없어 걱정이요 두려움입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오늘 지금 여기를 사는 게 믿음입니다.
이래야 충만한 행복한 삶입니다.
불신의 유혹에 단연코 맞서십시오.
하느님의 성경을 부단히 렉시오디나 하시며 믿음을 키우십시오.
성경공부를 통해 튼튼해지는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는 망상들 그럴듯한 유혹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하느님의 답을 이사야 예언자가 알려줍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성경렉시오디비나를 하지 않으면
이런 하느님의 말씀 어디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정말 사도 바오로 믿음의 대가입니다.
이런 확신 그대로 나의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이런 믿음이 진정 자유롭게 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이 진정 관상가입니다.
성경렉시오디비나 하지 않으면
이런 사도 바오로의 믿음을 어디서 배웁니까?
누가 뭐래도 하느님 앞에서 떳떳한 믿음이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 누구도 판단하지 않고
누구의 판단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또 자신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비하신 주님만이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시고,
마음 속 생각을 드러내십니다.
누구나 관상가의 삶으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찾으십시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믿으십시오. 사랑의 주님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보고 찾고 믿는 관상가의 삶에 충실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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