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이수철 신부님

소통과 구원

김레지나 2011. 2. 1. 18:1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1.2.1 연중 제4주간 화요일

히브12,1-4 마르5,21-43

 

  

 

 

"소통과 구원"

 

 

 

제일 소통하기 어려운 게 사람입니다.

하여 함께 사는 일이 그리도 힘듭니다.

 

“만물과 소통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기자의 질문에 ‘트위터계의 간달프’ 이 외수 씨의 대답입니다.

 

“사랑이다. 대상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소통은 불가능하다.”

 

소통은 사랑입니다.

소통은 생명입니다.

오늘날 시대의 화두는 소통입니다.

불통으로 인해 파생되는 온갖 문제들입니다.

소통은 사랑의 공감이자 교감입니다.

공감하며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게 사랑입니다.

공감하는 사랑이 연민입니다.

불쌍히, 가엾이, 측은히 여기는 연민의 사랑 있어 원활한 소통입니다.

이어 다음의 대담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인터넷 글쓰기에 대해 고민할수록

  인터넷은 이해와 설득의 공간이 아니라,

  공감과 교감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느낌에 솔직해지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선생님의 60만 팔로어를 만든 비결인 것 같다.

  설득하지 않고 공감하게 만드는 것.”

 

기자의 질문에 이 외수 씨의 화답입니다.

 

“팔로어수 5위권에 안에 있는 사람들 글이 대개 그렇다.

  느끼게 하는 글이 중심이다.

  그것이 감성이 아니겠나.

  설명하면 이성이 되는 거고, 느끼게 하면 감성이 되는 것이다.

  20세기는 이성이 주가 되었지만, 21세기는 감성이 시대를 주도한다.”

 

공감합니다.

수도원을 찾는 이들 대부분

충고와 조언이 아닌 위로와 격려를 바라고 옵니다.

공감 받고 위로 받을 때 저절로 치유와 구원입니다.

바야흐로 감성의 시대, 공감의 소통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영성과 연결될 때 활짝 꽃피어나는 감성입니다.

공감의 소통인 사랑입니다.

소통의 원조는 공감의 대가는 두말할 것 없이 예수님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으로 영성 충만한 주님이셨기에

충만한 감성에 공감의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공감의 소통은 매력의 원천이자 치유의 원천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무수한 사람들이 주님과 소통하기 위해 주님을 찾습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의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과 불통에서 기인한 병이요 죽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온전히 주님께 공감하는 믿음을 촉구하신 후 그의 딸을 살려내십니다.

당신에게 전적으로 공감하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만 대동하시고

당신에게 공감하지 않는 이들은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가 있는 곳에 들어갑니다.

 

“탈리타 쿰!”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

 하며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믿음의 기적이자 공감의 기적입니다.

주님을 믿어 주님과 소통의 공감으로 하나 될 때 치유요 구원입니다.

열두 해 하혈했던 여자의 주님과의 소통 욕구가 참 간절합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며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출혈은 멈추고 병은 나았습니다.

 

곧 이은 주님의 구원 선언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주님과의 믿음의 소통으로 치유, 구원 받은 하혈하던 여자입니다.

주님과 믿음의 소통으로 공감하여 하나가 될 때

예수님 마음이 내 마음이 될 때 치유와 구원입니다.

소통의 능력은 사랑의 능력이자 공감의 능력입니다.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 때마다

주님과 공감하여 소통의 기도를 바칠 때

증대되는 우리의 공감의 능력, 사랑의 능력입니다.

 

믿음은 개방의 소통입니다.

소통의 원조, 공감의 대가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온갖 짐과 죄를 벗어버리고 그분만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주님과의 끊임없는 공감의 소통이 있을 때 항구한 인내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이신 하느님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옥좌 오른 쪽에 앉으셨습니다.

바로 이게 우리가 갈 믿음의 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과는 물론 형제들과의 소통을 원활케 해주심으로

우리 모두를 치유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