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말씀 (가나다순)/전삼용 신부님

신앙이란 무릎 꿇는 것

김레지나 2010. 4. 11. 17:58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부활 8부 축제 내 금요일 - 신앙이란 무릎 꿇는 것

 


 

 페데리꼬라고 하는 이태리 젊은 밴드 연주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해야하는지 어머니를 사랑해야하는지의 갈등 속에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랍니다.

결국 안 좋은 형들과 어울리면서 마약에 손을 댑니다. 마약에 손을 댄 이유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사람을 대하는 것이 두려워서 마약의 힘으로 자신감을 얻어 인간관계를 잘해보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마약의 힘으로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망상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마약 중독자로 길거리에서 몇 년간을 살게 됩니다. 처참한 삶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권유로 체나꼴로라는 공동체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약을 전혀 쓰지 않고 오직 기도와 노동으로 마약중독자들을 치유하는 공동체입니다.

일단 처음 그 공동체에 들어오면 수호천사가 달라붙습니다. 몇 년 동안 그 공동체에 살면서 거의 마약중독을 이겨가고 있는 선배입니다. 그 수호천사는 화장실까지 따라올 정도로 처음 들어온 사람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필요한 것을 도우려고 합니다.

페데리꼬는 자기의 수호천사가 매우 미웠다고 합니다. 그가 추구하던 것은 자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공동체에 매우 큰 불만을 지니고 있었고 하느님께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처음 기도시간에 들어갔더니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더랍니다. 그는 그렇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위선자들처럼 느껴졌고 더 두려운 사람들로 여겨졌습니다.

몇 달이 지났지만 그는 혼자 여전히 맨 뒤에서 팔짱을 끼고 간신히 기도만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자신도 무릎을 한 번 꿇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자신을 보고 있는지 주위를 살피면서 살짝 ‘무릎’을 꿇었습니다. 아주 천천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랬더니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마음의 평화’가 밀려왔습니다.

자신이 찾던 자유가 마약을 하며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고 길거리에서 살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약과 두려움에 의한 노예생활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 무릎 꿇음이 구속이 아니라 참 자유요 평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소젖을 짜는 것에서, 공동체를 위해 일을 하고 자신도 한 명의 수호천사로 또 다른 중독자를 돕는 것 안에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 것 안에서 자신도 무엇인가 주는 삶을 산다는 것에서 매우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6개월만 살다가 나오겠다고 했지만 그는 항상 묵주를 들고 어린이와 같은 얼굴을 하고 6년째 그 공동체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3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십니다. 제자들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 제자들을 포함해 일곱명이 물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이는 교황과 주교들, 또 사제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상징합니다.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즉 영혼을 낚으려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아올 때, 즉 주님께서 빛으로 오시는 때에 멀리서 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오른 쪽에 그물을 던져보아라.”

평생 어부 일을 해 온 베드로는 그 말에 순종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한 이후로 어린이에게도 순종할 수 있을 정도로 겸손해져 있습니다. 하느님께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을 정도로 겸손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름 모를 사람의 말에 겸손하게 따릅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 때서야 베드로는 그 목소리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목소리였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겸손한 이에게 다른 사람의 음성을 통하여 나타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우리를 겸손하게 하십니다. 밤새 아무리 노력해봐야 소용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을 버리고 겸손해지는 일입니다.

 

겸손해 진 베드로와 제자들, 그들이 자신들을 버리고 어떤 사람에게도 순종할 수 있는 겸손을 갖추었을 때 열매를 맺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자신을 비우고 겸손하게 되었을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다가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해 성사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면서도 많이 강조되지 않는 부분이 바로 ‘사제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이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이미 죄가 거의 용서받은 것입니다. 사제는 그 겸손 앞에서 사죄경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에게 무릎을 꿇은 것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못난 죄인이라는 것을 베드로처럼 느끼며 무릎을 꿇을 수 있는 겸손한 사람이 됩시다.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많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짧은 묵상>>

 예수님은 베드로의 겸손을 통해 물고기를 잡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하룻밤 만에 세 번씩이나 배반한 ‘죄인’이고, 또 그리스도는 그런 자신을 용서하고 교회의 수장으로 뽑아주신 ‘자비’로우신 분임을 깨닫고 겸손해졌습니다. 겸손은 바로 자신과 하느님을 온전히 알아감으로써 갖게 되는 덕이고 그것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겸손해진 베드로를 통해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불에 굽습니다. 불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불에 구워지는 고기는 본질이 변화됩니다. 즉, 교회에 낚인 영혼들은 성령님이 주시는 성사를 통하여 원숭이에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빵도 함께 있었다는 것은 이것이 성찬례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미리 굽고 계신 물고기도 있었습니다. 이는 교회 밖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잡으신 고기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교회의 손이 뻗치지 못하는 곳에서도 당신 스스로 영혼을 구해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포함한 당신 일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빵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겸손으로 그 분 말씀만을 따랐을 뿐인 당신 어부들에게도 ‘영혼 구원의 영광’을 함께 나누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혼이 구원된 이들은 영원한 삶 안에서 자신의 구원에 협력해 준 사람들에게 영원히 감사하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잡는 일보다 영혼을 낚는 일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베드로를 통해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가치와 영광에 대해 보여주시고 그 길로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com/30jose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