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전투’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의학적인 발견과 치료법 사이의 차이 커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해
암에 관한 기사를 쓸 때는 한 가지 따라야 할 불문율이 있다.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는 내용이라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들이다. 정기적인 유방 X선 검사에서 조기에 종양을 발견해 수술과 치료를 받고 수십 년 뒤에도 아무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여성.
악성 세포의 성장 촉진 분자를 표적으로 삼는 새로운 요법으로 암을 퇴치한 남성. 1996년 고환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화학요법으로 투병한 다음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에서 7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인간 승리의 상징 랜스 암스트롱. 또는 1970년대만 해도 사망률이 75%였던 소아 백혈병을 생존율 73%로 바꿔 놓는 쾌거를 올린 과학자들 등―.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여기서 로버트 메이베리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02년 정기검진을 할 때 그의 폐에서 종양이 발견됐다. 악성이었지만 전이는 안 된 상태였다. 미국 최고의 암 치료 전문병원으로 알려진 텍사스대 MD 앤더슨 암센터(휴스턴)에서 의사들은 수술로 그 암 덩어리를 들어내고는 메이베리에게 완치됐다고 통보했다.
“폐암의 경우는 원래 그렇다”고 메이베리를 치료한 종양 전문의 에드워드 킴이 말했다. “종양을 제거한 뒤 ‘이제 완치됐으니 여생을 즐기십시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재발하기 전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2년 뒤 메이베리에게 암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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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베리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것으로 뇌 종양이 움츠러들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미 그 정도로 전이됐다면 완치는 불가능하고 종양을 제어하는 수준의 치료가 가능할 뿐”이라고 킴이 말했다. 급기야 메이베리의 뼈에도 종양이 생기자 킴은 타르세바(Tarceva)를 처방했다.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라는 분자를 차단하는 새로운 표적 치료제다. EGFR은 지옥의 안테나 같은 역할을 한다. 암을 둘러싼 조직에서 나오는 성장촉진 신호를 포착해 그것을 이용해 암의 증식을 자극한다. 타르세바를 투여한 지 6개월이 지난 2005년 가을, 드디어 암이 물러났다.
암이 뇌간과 뼈까지 침투했을 때는 걸을 수도 없었지만 이제 다시 골프도 칠 수 있게 됐다. “왜 그에게만 타르세바가 들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킴이 말했다. “같은 증상의 환자들에게 똑같은 약을 투여했는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메이베리에게 암이 또다시 찾아왔다. 이제는 간까지 퍼졌다. 결국 지난해 여름 메이베리는 세상을 떠났다.
좀 더 큰 그림을 보자. 올해 미국인 약 56만5650명이 암으로 사망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루 1500명 이상이 숨을 거두는 셈이다. 1년 내내 매일 점보 제트기 3대씩 추락해 전원이 사망하는 인명 피해와 맞먹는다. 우리가 메이베리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의 경우가 그토록 암의 치사율이 높은 이유를 추적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선 메이베리의 사례는 과학이 밝혀낸 암에 관한 지식과 의사들의 치료 방법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수술로 완치될 수 있는 것은 희귀암뿐이라는 사실을 적어도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의사는 잔뜩 겁을 먹은 수많은 환자에게 “암을 모조리 제거했다”고 말해 왔다. 메이베리의 경우를 두고 킴은 이렇게 말했다
‘작은 전투’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의학적인 발견과 치료법 사이의 차이 커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해
“폐 종양 세포가 다른 곳으로 이동해 증식할 때만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수치가 너무 낮아 아무리 정밀검사를 해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내 직감이다.” 그러나 지금도 암 환자들은 수술을 받고 난 뒤, 또 일부 암의 경우 수술과 방사선 치료, 화학 요법을 받은 후 그냥 일상 생활로 돌아간다.
은밀한 곳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암세포들이 전이성 암으로 발전하거나 원래의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는 전혀 없다. 메이베리의 이야기는 타르세바 같은 ‘표적’ 암치료제의 한계도 단적으로 보여준다. 표적 치료제는 암유전학과 분자생물학의 황금기에 탄생했다.
그러나 그 약이 개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자들은 암세포가 뛰어난 군사 책략가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원래 계획한 침투로가 차단되면 다른 경로로 이동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신체 기관 전체를 유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메이베리를 서두에서 예로 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보스턴의 암 전문의로 자신도 암 생존자인 테레즈 멀베이가 들려준 이야기 때문이다. 멀베이는 19년 동안 암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동안 눈부신 발전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녀는 학계나 언론이 암 생존자, 암 연구의 새로운 돌파구, 또는 기적의 약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암과 ‘싸운다’는 표현은 승리의 가능성을 암시한다”고 멀베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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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암에 걸리면 죽음이 선택이 아니라 필연인 경우가 적지 않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원래는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연두 국정연설에서 ‘암과의 전쟁’(그 자신은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을 선포했다. 그러고는 암 정복을 국가적인 과제로 삼는 ‘국가암법’에 서명했다. 대담한 목표였다.
사실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나빴을 것이다. 그러나 닉슨이 암을 상대로 하는 전투에 내보낸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원래 우리가 가졌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암은 퇴치는커녕 이제는 미국인들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가는 질병으로 심장병을 능가할 태세다. 내년 1월이면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선다.
또 새로 설립된 미국 암퇴치 기관 ‘스탠드 투 캔서(Stand to Cancer)’가 지난 9월 5일 미국 주요 방송사(ABC·CBS·NBC)를 통한 모금 캠페인으로 1억 달러 이상을 확보했다. 따라서 바로 지금이 미국의 암과의 전쟁을 진지하게 재고해야 하는 시기일 것이다. 2008년 미국인 암 사망자는 1971년보다 23만 명(69%) 정도 늘어난 56만 56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그동안 인구가 50% 늘었고 평균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에 단순한 수치 비교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더 공정한 방법은 연령 보정(조사 결과를 연령 차이를 감안해 일반화함으로써 오차를 줄이는 방법) 사망률의 비교다. 그 수치도 결코 고무적이지 않다. 미 국립암연구소(NCI)가 정확한 연령 보정 데이터를 산출한 첫해인 1975년의 암 사망률은 10만 명 중 199명이었다.
그 비율은 다행히 1991년 215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더는 올라가지 않았다. 2005년에는 사망률이 10만 명 중 184명으로 떨어졌다. 겉보기엔 1975년에 비해 상당한 진전이다. 그러나 좀 더 긴 역사를 보면 상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닉슨의 국정연설 직후 미국 암학회(ACS)가 실시한 분석에 따르면 1950∼67년 여성의 경우 암에 의한 연령 보정 사망률도 10만 명 중 120명에서 109명으로 낮아졌다.
‘작은 전투’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의학적인 발견과 치료법 사이의 차이 커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해
단순히 비율로만 본다면 그 17년 동안 적어도 암으로 인한 여성의 사망을 막는 데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당시는 암 연구가 직감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하는 가내공업 수준이었는데도 분자생물학과 유전학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뤄진 1975년 이후보다 더 나았다. 암과의 전쟁이 4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지만 승리의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NCI 웹사이트에는 이런 암울한 글이 올라 있다. “100가지 이상의 암에서 나타나는 메커니즘이 70년대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것으로 판명됐다.” 심각한 상황에서 무슨 농담이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종양 하나가 100명의 뛰어난 암 과학자보다 더 똑똑하다”는 ACS 간부 오티스 브롤리의 언급에는 상당한 진실이 담겨 있다.
이런 미흡한 결과가 나온 것은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1971년 이후 미국 연방 정부, 사설 재단, 기업들은 암 치료책을 찾는 데 약 200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 돈으로 우리는 약 150만 건의 과학 연구 논문을 얻었다. 거기에는 암의 기본 생물학에 관한 방대한 지식이 담겨 있다. 아울러 여러 전선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었다.
암 치료에 따르는 구토증이나 변통 같은 부작용을 다스리는 약의 발명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이런 약들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며 암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줬다”고 멀베이가 말했다. 닉슨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몇 달 뒤 피츠버그대 버너드 피셔는 유방암 환자가 유방, 흉벽(胸壁) 근육, 겨드랑이 조직을 잘라내는 당시의 표준 치료법 대신 유방 절제 수술만 받아도 생존 가능성이 마찬가지로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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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노렸다가 홈런을 칠 수도 있지만 때로는 1루타나 2루타로 점수를 낼 수도 있다. 우리는 아직 홈런을 때리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도 유방암을 완벽하게 예방하거나 완치할 수 없다.”그러나 닉슨이 여성들의 외관 손상을 줄이려고 전투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었다. 목표는 “암을 완치하는 치료책을 찾는 것”이었다.
그 점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1975∼2005년 유방암 사망률이 10만 명당 31명에서 24명으로 낮아졌다. 조기 발견과 더불어 개선된 치료 덕분이었다. 대장암 사망률도 10만 명당 28명에서 17명으로 떨어졌다. 개선된 화학 요법, 그리고 특히 정밀검사 덕분이었다. 대장 내시경으로 전암(前癌) 증상이 있는 용종을 발견하면 악성으로 발전하기 전에 잘라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전선에서 고르게 진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폐암 사망률은 1975년 10만 명당 43명에서 2005년 53명으로 높아졌다. 흑색종 사망률도 거의 30%가 늘었다. 간암과 담관(膽管)암은 10만 명당 2.8명에서 5.3명으로 거의 2배가 됐다. 췌장암은 10.7명에서 10.8명으로 약간 늘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진전은 암이 아니라 미국인들의 최대 사망 원인인 심장병에서 나타났다. 흡연율 감소, 고혈압과 콜레스테롤을 통제하는 개선된 방법, 더 나은 급성환자 치료책 덕분에 심장병의 연령 보정 사망률은 전반적인 암 사망률이 7.5% 낮아진 기간에 70%나 떨어졌다.
따라서 “특히 다른 주요 질병과 비교할 때 암이 현대 의학에 의해 가장 제어되지 않는 병으로 간주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고 NCI 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뉴욕의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 원장인 해럴드 바머스가 2006년 말했다. 50년 전 과학자들이 암에 관해 알았던 것은 암세포가 일반 세포보다 더 빨리 자신의 DNA를 복제해 증식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작은 전투’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의학적인 발견과 치료법 사이의 차이 커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해
1940년대에 보스턴의 종양학자 시드니 파버는 세포가 새로운 DNA를 합성하려면 엽산이라는 생화학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항엽산제를 쓰면 이런 합성을 막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학회사에 다니던 한 친구에게 부탁해 항엽산제(메토트렉세이트)를 만들어 암환자들에게 투여했다.
그랬더니 일부 환자에게서 단기적으로 종양이 줄어들었다고 파버는 1948년 학계에 보고했다. [그 2년 전 과학자들은 화학무기인 겨자가스(미란성 독가스)가 비호지킨 림프종 환자의 종양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그러나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그것을 계기로 화학요법의 시대가 열렸다.
화학요법은 지금도 주된 암 치료법의 하나로 여전히 DNA 복제와 세포 분열을 막으면 암의 진전을 막을 수 있다는 단순한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면서 세포 증식으로 이어지는 경로의 하나 또는 여럿을 표적으로 하는 화학 치료제 수십 가지가 쏟아져 나왔다. 70∼90년대에 승인된 이 치료제 대부분은 이론적으로 파버의 전략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었다.
암세포가 자신의 DNA를 복제해 증식하는 과정에 생화학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암의 증식을 막는다는 기본 전략을 말한다. 다시 말해 암세포가 증식의 귀재인 이유를 알아내 치료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아니었다. “임상 연구자들은 단지 화학요법에 사용되는 여러 치료제를 이리저리 혼합해 최적의 효과를 찾아내는 데만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데니스 슬라먼이 당시를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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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치료가 더 효과적일 뿐 아니라 건강한 세포들을 화학요법보다 덜 손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화학요법을 쓰면 특히 내장, 골수, 구강, 모낭 등에서 정상적으로 분열하는 세포도 죽는다. 1970년대에 암 과학자들은 DNA를 개조하는 암 바이러스를 동물에서 발견했다. 그러자 한동안 사람에게서도 바이러스가 암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자궁경부암은 인간 유두종 바이러스가 일으키지만 인간의 다른 암은 바이러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70년대와 80년대에 과학자들은 인간의 유전자 변이가 암을 촉발하거나 진전시킨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 종양 억제 유전자도 발견됐다. 하지만 이 유전자는 건강할 때는 종양을 억제하지만 손상되면 암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문의 빗장을 풀어버린다.
유전자 연구가 격조 높은 과학으로 인식되면서 중요한 연구 논문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실제로 환자들의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사들이 사용하는 방법엔 거의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바머스가 말했다. 암 발생의 메커니즘에 대한 기초과학의 연구와 임상적인 암 통제 노력은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듯했다”고 그는 말했다.
실제로 암 과학자들은 명성을 얻고 보조금을 받고 상을 타고 교수직을 얻고 주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며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환자 한 명이라도 단 하루를 더 살게 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문 세계에서는 반드시 현실의 상황 개선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압력이 없다.
따라서 기초과학 부문의 발견에서 유용한 치료책이 나오는 비율이 형편없는 것도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다른 질병의 경우 기초 생물학적 발견에서 비롯된 새로운 합성물질 중 약 20%가 FDA의 신약 승인을 얻는다. 그러나 암은 그 비율이 8%에 불과하다. 2004년 포춘지에 실린 ‘우리는 왜 암과의 전쟁에서 지고 있는가’라는 기사는 큰 논란을 불러왔다.
‘작은 전투’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의학적인 발견과 치료법 사이의 차이 커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해
그 기사는 그 이유를 학자들이 실험실의 동물 연구에만 매달린 탓으로 돌렸다. 실제로 동물 연구에 관해서는 비판할 여지가 많다. 70년대에 시작된 기초 연구는 실험실 접시에서 인간 암세포를 배양한 다음 그것을 실험용 쥐(인간 암세포를 거부하지 않도록 면역체계를 조작한다)에 이식하고는 시험적인 약을 투여해 어떻게 되는지 관찰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실험용 쥐에서 거둔 성공 중에서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동물은 인간 암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프랜 비스코가 말했다. 그녀는 1987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4년 뒤 환자권익단체인 미국 유방암연맹을 설립했다. “우리는 동물에서는 암을 정복했지만 인간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동물 모델을 사용해 암 치료에 실제로 중대한 기여를 한 과학자들도 같은 생각이다. MIT의 로버트 와인버그는 “무엇보다도 도움이 되는 동물 모델이 없다는 것이 암 연구의 발목을 잡는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지난 30년 동안 실험용 쥐에서 이룬 주요 성공 사례를 조사했다. 쥐는 살고 사람은 죽은 이유를 밝힐 단서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는 두 사례로 요약됐다. 1982년 와인버그 팀이 인체에서 발암 유전자(ras라고 불린다)를 발견하자 과학계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ras의 기능을 차단하면 암을 물리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바로 그런 역할을 하는 약(‘파네실 전이효소 억제제’ 또는 FTI로 불린다)을 시험하기 시작했다.
실험용 쥐에 이식한 인간 암을 대상으로 FTI를 투여하자 실제로 암이 사라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체에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쥐에 이식된 암이 수년 동안 실험실 접시에서 배양된 종양이기 때문이리라고 과학자들은 추정했다. ras만이 아니라 수많은 악성 유전자가 축적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FTI가 ras의 기능은 억제하지만 다른 변이들을 건드리지 않는 것은 공격해 오는 적을 맞아 저격수를 동원해 그 소대원 한 명만 제거하는 것과 같았다. 적군 한 명이 죽어도 나머지 소대원들은 계속 진군해 온다. 이처럼 단 하나의 암에서 나타나는 악성이라고 해도 그 이유가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일반 원칙이 수년 동안 암 연구와 치료를 방해했다.
1980년대에 와서 종양괴사인자(TNF)가 발견됐다. 그러자 그 합성물질이 이름 그대로 종양을 없애는 효과를 내리라는 기대가 컸다. 인간 암을 이식한 쥐에 그 약을 주사하자 암이 녹아 없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인체 임상시험에서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동물 모델은 특정 약이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나타낼지 알 수 있는 적합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국제폐암연구학회를 이끄는 종양학자 폴 번이 말했다.
“우리는 인간 종양을 쥐의 표피 아래에 집어넣는다. 그런 미소서식환경은 인간의 환경을 반영하지 않는다. 인간의 혈관, 염증세포, 또는 면역세포 등 이 모든 것이 암환자 예후와 생존에 영향을 미친다.” 실험용 쥐 모델에서 과학자들은 인간의 종양을 쥐에 이식한 뒤 선택한 무기로 그 종양을 공격한다. 여기서 한 가지 결함은 이식된 종양이 거의 전이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1970년대에도 원래의 종양에서 떨어져 나온 세포가 다른 곳에서 치명적인 역할을 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인체에서 발견됐다. 1975년 과학자들의 발표에 따르면 유방암 환자가 수술 후 육안으로 식별할 수는 없지만 남아 있는 모든 악성 세포를 말끔히 없애기 위해 화학요법을 받을 경우 다른 기관에 전이되지 않고, 그런 ‘보조’ 요법을 받지 않은 환자보다 더 오래 살았다. ACS의 브롤리는 이렇게 말했다.
“보조 요법에 관한 모든 연구는 그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종양이 유방이나 림프절의 첫 단계에만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에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는 전이성 세포를 죽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대장암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외과의사들이 종양을 모두 완전히 제거했다고 장담했을 때도 화학요법을 받은 환자가 더 오래 살았고 재발도 더 나중에 일어났다.
‘작은 전투’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의학적인 발견과 치료법 사이의 차이 커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해
사실 암으로 인한 사망의 90%가 그 전이성 세포 때문이다. 이런 분명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암과의 전쟁은 수년 동안 그런 전이성 세포들을 무시했다. 과학자들은 전이가 일어나지도 않는 동물 모델에 계속 의존했다. 80∼90년대를 통틀어 “연구자들은 암 발생 이면의 미세한 분자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암을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고 비스코가 말했다.
“그보다는 암이 전이되는 이유 같은 진짜 중요한 문제를 파헤치는 게 더 옳지 않았을까? 그래야 환자들을 더 빨리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로 다른 방법이 있었다. 분자생물학자들이 비상한 관심을 끌며 멋진 분자학적 완치책을 찾는 동안 소아암 연구자들은 다른 길을 택했다. 오랫동안 소아암 진단은 곧 사형선고였다.
파버 시절에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들이 3개월 이상 생존하는 경우가 드물었다(부시 대통령의 동생 로빈은 세 살 때인 1953년 소아암으로 숨졌다). 그러나 2008년으로 와 보면 상황이 크게 다르다. 지금은 소아암 환자의 80%가 성인기를 넘어서도 생존한다. 그런 쾌거는 소아암 연구자들이 강도 높은 합동 연구를 추진한 결과다.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특정 암을 가진 전체 어린이의 80%가 새로운 치료법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성인의 임상시험 참여율은 오랫동안 1%도 안 됐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분자학적 방법이나 신약 발견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기존 약품의 양을 어떻게 조절할지, 어떤 약을 함께 투여할지, 또 어떤 차례로 언제 투여하면 효과가 좋은지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약들을 어떻게 더 잘 사용할지를 연구했다”고 데이너-파버 암연구소와 보스턴 아동병원에서 일하는 리자 딜러가 말했다. 1994년이 되자 네 가지 약을 혼합해 투여하는 방식으로 소아 백혈병 환자의 75%(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의 95%에 해당한다)가 암을 물리쳤다. 가장 강적은 소아 뇌암이었지만 이 경우도 70년대의 생존율 10%가 현재 45%로 늘었다.
성인암 대부분보다 더 큰 진전이다. 물론 성인암을 연구하는 과학자 중 일부는 소아암 연구자들의 ‘고매한’ 합동연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데 넌더리를 낸다. 소아암, 특히 백혈병은 다른 암보다 단순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주로 단 하나의 유전자 변이만 신경 쓰면 되기 때문에 완치율이 높다는 것이다.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전문가들은 양쪽이 모두 옳다고 말한다. 소아암 과학자들이 새롭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문제에 접근했고, 또 소아암은 대부분의 성인암보다 덜 까다롭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소아암 연구의 성공을 일축하는 경향이 있다. 멋진 세포 생물학적 발견 없이 그저 꾸준히 매달려서 낸 성적일 뿐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분자생물학의 홈런이 아니라 이런 ‘1루타’가 사람들이 암에 걸려 죽을지 않을지에 큰 차이를 불러왔다.
예를 들면 흡연자가 줄고(1971년에는 남성의 54%가 흡연했지만 지금은 21%로 줄었다), 유방 X선 검사를 받는 여성이 늘고, 호르몬 요법을 받는 사람이 줄어든(2002년 호르몬 대체요법이 유방 종양의 성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뒤 1년 사이 유방암 발병률이 7%나 떨어졌다) 이런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가 연방 정부에서 거액을 지원받는 기초과학 연구실의 업적보다 더 큰 기여를 했을지 모른다.
마찬가지로 자궁경부 세포에서 전암 증상의 변화를 알아내는 도말표본검사(Pap smear)가 보편화되면서 자궁경부암 발병률과 사망률이 크게 줄었다. 발병률은 75년 이후 약 65% 낮아졌고 사망률은 60% 이상 떨어졌다. 따라서 80년대에 와서 암과의 전쟁이 국가 세입의 많은 부분을 이런 실질적인 진전을 추구하는 데보다 수많은 쥐만 치료하는 우아한 과학에 사용한다고 지적하는 비판자들이 늘어났다.
여기서 말하는 ‘비판자’는 불만을 가진 일반인들을 말하지 않는다. UCLA에서 데니스 슬라먼은 MIT의 로버트 와인버그가 1982년 인간 발암유전자 ras를 처음 발견하자 큰 영감을 얻었다. 이 유전자를 직접 진압하는 약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 발견은 “암의 유전학과 분자학을 연구하자”는 환원주의적 접근법의 첫 성공으로 이어졌다.
‘작은 전투’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의학적인 발견과 치료법 사이의 차이 커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해
슬라먼은 처음엔 다른 과학자들처럼 DNA 변화 조짐을 찾기 위해 동물암을 연구했다. 그러나 1982년 새로운 발상을 했다. 인간 종양에서 채취한 조직 샘플에서 특이 유전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는 NCI에 자금 지원을 신청했다. 슬라먼은 이렇게 돌이켰다.
“거의 조롱 조로 기각됐다. 그들은 나의 제안이 과학적 가설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그저 깊이를 모르는 물속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무작정 아무 물고기나 잡으려고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논리를 설명했다. 암이 유전자 제어에서 생기는 문제라면 변이된 유전자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연구 자금을 따내지 못했다.”
NCI가 슬라먼의 발상에 코웃음을 친 바로 그해에 MIT의 와인버그 팀은 암과 관련된 또 다른 유전자를 발견했다. 상피 성장인자 수용체2형(HER2)이다. 이 유전자는 세포 외벽에서 안테나 기능을 한다. 성장 신호를 감지하면 세포핵에 급속 증식 메시지를 전한다. 슬라먼은 HER2가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주요 암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1984년 슬라먼은 민간 후원자의 지원으로 유방암의 27%가 HER2를 과도하게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다음 10년 동안 그의 팀은 HER2가 암을 일으킨다는 것을 입증했다. 또 그들은 HER2에 들러붙어 증식 신호를 감지하지 못하게 하는 항체도 발견했다. 1998년 FDA는 허셉틴(Herceptin)이라 불리는 그 항체를 HER2에 의해 발생하는 유방암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허셉틴은 세포 복제의 초기 과정에서 정상 세포가 아닌 암세포만의 증식을 자극하는 분자를 무력화하는 약이 개발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다. 그로써 수많은 여성이 목숨을 구했다. 슬라먼의 1984년 발견 이후 NCI는 슬라먼에게 기꺼이 연구자금을 댔다. “우리 연구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뒤에야 자금을 대줬다”고 슬라먼이 안타까운 듯이 말했다. “사실 그건 돈을 아주 보수적으로 쓰는 방식이다.”
NCI가 새로운 획기적인 치료법의 모색보다는 우아한 분자생물학 연구를 선호한다는 것을 깨달은 과학자는 슬라먼만이 아니었다. 1990년대 중반 오리건 보건과학대 암연구소의 브레인 드러커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과 관련된 분자를 연구하고 싶었다. 그 분자를 제어하면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완치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뭐가 새롭고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그들이 말하는 ‘새롭고 다른 것’은 과학적으로 처음이며, 우아하고, 기본 세포 성장 과정에 새로운 통찰력을 주는 것을 의미했다. 드러커는 NCI에 연구 자금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시간 낭비라는 걸 알았다”고 그가 말했다. “그들은 내가 하려는 연구를 보고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을 게 뻔하다.
그래서 나는 기초과학 연구에서 자금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접근법을 택했다.” 그것은 백혈병 세포의 수용체가 끌어당겨 세포핵에 증식 명령을 보내는 분자가 세포 증식을 조절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이 연구는 유익한 임상시험으로 이어졌다. NCI가 아니라 민간 재단의 후원을 받은 이 연구를 계기로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특효약인 글리벡(Gleevec)이 탄생했다.
우연히 닉슨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바로 그해 무명의 생물학자 주다 포크먼은 전이성 세포의 경우 자신들이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 있는 혈관을 만들어야만 살아남아 치명적인 암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과정은 신생혈관형성(angiogenesis)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암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연구자들이 집중하는 유전자·단백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포크먼(올해 초 사망했다)은 1998년 뉴스위크에 이렇게 말했다. “70년대의 반응은 대개 적대적이거나 조롱 조였다. 다른 학자들은 내게 ‘정말 그렇게 믿는 건 아니지요’라고 묻곤 했다.” 포크먼은 NCI에 연구자금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그들은 암 전이에서 혈관 생성이 중요하다는 포커먼의 주장이 “순전히 공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작은 전투’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의학적인 발견과 치료법 사이의 차이 커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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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신생혈관형성 억제제 개발의 기초를 놓았다. 그 최초의 약인 아바스틴(Avastin)이 2004년 대장암 치료제로 승인됐다. 1990년대는 세포의 성장 과정과 암세포 고유의 분자를 확인한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DNA를 공격해 세포 복제를 막으려고 과잉 포화를 가하다 보니 건강한 세포까지 죽이게 됐다.
반면 2000년대의 초점은 치료의 개인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암세포들이 표준 화학요법 치료제에 저항력을 갖게 되면서 그 세포들이 이제는 아바스틴, 글리벡, 허셉틴 같은 표적 치료제까지 회피하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바스틴의 임상시험에서 그 약은 진전된 대장암 환자의 수명을 약 4개월 연장해 줬다.
그러나 나중 연구에서는 진전된 폐암 환자의 수명을 두 달 정도만 연장해 주었을 뿐이라고 MD 앤더슨 암센터의 폐암 전문의 로이 허브스트가 말했다. 왜 그 정도밖에 연장되지 않았을까? “신생혈관형성에는 수많은 경로가 있다”고 허브스트가 설명했다. “대다수 세포는 아바스틴이 차단하는 혈관내피성장인자(VEGF)를 이용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12가지 정도의 다른 경로가 있다. 아바스틴은 그 나머지는 차단하지 못한다.” 그래서 VEGF가 차단되면 악성 세포들은 다른 대안을 찾는다. 폐암 치료제인 타르세바를 보자. 이 약은 폐암과 다른 암의 세포 증식을 촉진하는 상피세포 성장인자 수용체(EGFR)라는 분자를 차단한다.
“이 약은 60∼80%의 경우 종양을 위축시키며 그 효과가 1년 정도 지속된다”고 밴더빌트대 잉그램 암센터의 흉부암 전문의인 데이비드 존슨이 말했다. 그러나 종양이나 전이성 부위의 악성 세포 중 일부라도 EGFR 이외의 증식 경로를 사용하면 타르세바는 무용지물이다. 대다수 환자는 3년 내에 사망한다.
데이너-파버 암연구소의 조지 디메트리는 2000년 글리벡으로 희귀 위암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중 85%는 5년 뒤 글리벡에 저항력을 갖게 됐다(하지만 글리벡이 나오기 전엔 이 암을 가진 환자는 6주 만에 사망했다). 악성 세포들이 글리벡이 차단하는 분자의 형태를 교묘하게 바꾸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면 자기 방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걸 원치 않는 청소년이 엄마가 방문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물쇠를 바꿔버리는 식이다. 표적 요법의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과학자들은 획기적인 발상을 하고 있다. 단일 암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암은 복수로 거론된다.
각 암은 변이 유전자도 서로 다르고, 약과 싸우는 무기도 서로 다르다. “암세포가 10개라면 암 종류는 여덟 가지가 될 수 있다”고 디메트리가 말했다. “세포마다 서로 다른 경로를 사용한다.” 암환자가 계속 목숨을 잃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한 여성은 2002년 유방에 멍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유방 X선 검사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은 지 9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에서 그녀를 치료한 줄리 그랠로에 따르면 그녀는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고 잔존 악성 세포를 없애는 화학요법을 받았다. 그 후 3년간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05년 검진에서 골육종(뼈암)이 발견됐다. 다음 3년간 여섯 가지의 다른 화학요법을 받았다. 그러다가 지난 3월 뇌에서 암이 발견됐다.
그래서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화학요법 치료제는 대개 혈액뇌장벽(혈관을 통해 이물질들이 뇌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장치)을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뇌암에는 화학요법보다는 주로 방사선 요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지난 7월 종양이 몸 전체에 퍼져 그 달에 사망했다. 암 사망률을 줄이려면 여러 가지 암을 모두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작은 전투’에선 이겼을지 몰라도 의학적인 발견과 치료법 사이의 차이 커 정복의 길은 멀기만 해
암세포가 증식에 사용하는 수십 가지 경로를 모두 차단해야 한다는 얘기다. 바로 그것이 현재 암 치료 연구의 첨단이다. 환자의 종양 세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판단하고, 여러 가지 약을 동시 또는 순차적으로 사용해 그 경로들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 약들은 각각 성장, 복제, 신생혈관형성 경로들 중 하나를 표적으로 한다.
“종양의 종류를 약과 일치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로이 허브스트가 말했다. “이제 각 환자에게 꼭 맞는 약을 찾는 다음 단계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 모두 암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따라서 지금이 암과의 전쟁을 치러온 지난 37년 동안 놓친 기회를 살펴보기에 적절한 시기다.
그중 가장 큰 것이 예방이다. 닉슨은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단지 과학자들에게 치료책을 찾으라고 지시했을 뿐이다. 암 연구 예산의 대부분이 정상 세포가 악성으로 바뀌는 것을 막기보다는 악성 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을 찾는 데 투입된 것도 부분적으로는 그 때문이다. “자금을 대는 사람들은 마법의 탄환을 찾는 연구에 관심을 갖는데 그것이 수익을 내기 때문”이라고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의 종양학자 앤서니 배크가 말했다.
“브로콜리 싹이 대장암을 막을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으로는 관심을 끌지 못한다. 자금 할당을 담당하는 검토자가 ‘그것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겁니까?’라며 일축할 게 뻔하다.” 게다가 브로콜리는 특허를 낼 수 없기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암 예방법을 연구할 의욕이 없어진다. 또 다른 놓친 기회는 종양 세포 주변의 환경에 관한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암세포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고 암세포를 다루는 연구를 했다”고 MIT의 와인버그가 말했다. “세포 속의 유전자를 연구함으로써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많은 종양이 외부, 다시 말해 염증세포나 면역세포 등에서 받는 신호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을 안다. 악성으로 발전하고 전이되는 것은 종양 안팎의 신호 교류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세 번째 놓친 기회로 이어진다. 자연 물질을 사용하거나 약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말한다. 암에 해로운 미소서식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줄이는 조치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암세포는 혈류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흡수하는 수용체를 갖고 있다. 그 호르몬을 신생혈관형성에 사용한다.
“연구 자금은 연구하기 쉬운 분야로 흘러갔다”고 MD 앤더슨에서 통합치료센터를 이끄는 로렌조 코언이 말했다. “예를 들면 특정 약이 암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섭식, 운동, 스트레스 감소 기법을 적절히 혼합해 미소서식환경을 암에게 적대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보다 훨씬 단순하다고 그는 지적했다.
또 암 사망률을 줄이는 방법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유방암을 가진 흑인 여성의 7%가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한다. 또 35%는 표준 치료법인 유방 절제술 이후 방사선 치료를 받지 못한다(백인 여성은 그 비율이 26%). 과학자들이 암을 물리칠 방법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현실 세계에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획기적인 발견이 연구실에서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과학자들은 첨단 기법을 동원해 어느 때보다 더 빨리 유망한 신약을 개발할 것이다. 바로 얼마 전 서로 다른 과학자 집단들은 가장 흔한 뇌암인 신경교아세포종과 췌장암에 관련된 유전자 수십 가지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그로써 유전자 변이가 암을 일으킨다는 가설의 신빙성이 높아졌다. 아울러 그들이 이용하는 경로가 차단될 수 있다면 암을 물리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다. 익히 들어온 이야기라고? 좋다. 이제 그만하겠다. 다만 그런 발견이 흥미는 있지만 환자들과는 별 상관이 없는 수많은 연구 결과의 목록에 추가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With ANNE UNDERWOOD and JENEEN INTERLANDI in New York and MARY CARMICHAEL in 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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