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시사, 정보

이연걸의 또 다른 역할

김레지나 2008. 11. 16. 22:59
월드 스타의 또 다른 역할
The Tsunami That Changed My Life
쿵후 스타 이연걸, 몰디브 쓰나미 체험 계기로 자선재단 세우고 기부 활동
JET LI

2004년 12월 25일 밤 늦게 몰디브의 포시즌스 호텔에 도착했다. 아내와 어린 두 딸(한 살배기와 네 살배기)과 함께였다. 바깥은 컴컴했어도 섬이 참으로 아름답고 고요하다고 느꼈다.

다음날 아침 7시50분 땅이 흔들렸다. 중국과 샌프란시스코에서 몇 번 겪어본 일이라 지진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두 딸이 빨리 바닷가로 나가자고 보채 우리는 예정보다 서둘러 10시10분쯤 출발했다.

호텔을 막 나와 풀장을 지나는 중이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해변인데 그때 물이 밀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거대한 파도는 아니었다. 물은 그저 빠른 속도로 높아지면서 모래사장에서 해수욕하던 이들을 덮쳤다.

사람들이 호텔 쪽으로 뛰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웃는 표정이었다. 나는 네 살배기 제인을 안았고 유모는 제이다를 안고 호텔 쪽으로 돌아섰다. 바로 그 순간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두 걸음을 떼니 물이 엉덩이까지 올라왔다. 두 걸음을 더 뗐을 땐 가슴 높이였다. 그러고는 이내 코밑까지 찼다. 난 제인을 어깨에 올리고 유모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녀는 머리가 이미 물속에 잠겨 허둥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해변이고 풀장이고 모든 게 사라졌다. 난 아무것도 없는 바닷물 속에 서 있었다. 유모의 손을 꼭 붙들려고 애썼지만 그녀와 제이다는 거센 물결에 밀려 점점 멀어졌다. 다행히 내 얼굴이 알려진 터라 사람들은 내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모두 나를 보고 있었다. 목청껏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네 남자가 우리 쪽으로 헤엄쳐 와 제이다와 유모를 구했다. 나는 괜찮았다. 물이 내 입 높이에서 더는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앙이 덮친 직후의 그 찰나에는 생각하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그냥 앞으로 본능대로 움직일 뿐이다. 물이 빠지고 나서 보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전기도 나가고 호텔의 위성전화를 빼놓곤 통신마저 두절됐다. 식수는 닷새 치, 식량은 사흘 치가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날 밤엔 모두 호텔 로비에 진을 치고 밤을 새웠다. 제이다는 내 품에 안겨 잠들었지만 난 잠이 오지 않았다.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내가 하느님 덕분에 살아났다면 뭔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몰디브에서의 그날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41년의 인생을 내 멋대로 살면서 내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스타라는 사실을 입증하려 했다. 내가 한 모든 일이 자기 중심적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피부색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면서 서로 돕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들이 여자와 노약자를 우대했다.

영화에서 본 그대로였다. 모두가 돕는다면, 모두가 약간씩 기여한다면 커다란 차이가 생기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상의 돈과 권력을 몽땅 준다 해도 물에 빠진 나를 구할 수 없으리란 사실도 깨달았다. 그날 밤 난 은퇴하는 날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곧바로 뭔가 해야만 했다.

며칠 뒤 일기금(壹基金) 재단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나의 조국인 중국에서 뭔가 하고 싶었다. 제대로 하고 싶었다. 우선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조사하고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는 데 2년쯤 걸렸다. 마침내 2007년 일기금을 세웠다. 내 공식은 간단하다.

한 사람+한 달 1위안=하나의 대가족.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조금씩만 기부하면 우리 모두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물론 정부와 기업이 국민과 소비자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난 모든 개개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신념을 퍼뜨리고 싶었다. 반드시 백만장자가 된 뒤에, 기업의 수장이 된 뒤에, 또는 인기 스타가 된 뒤에 할 일이 아니다. 모두가 조금씩 도우면서 시작하면 된다.

현 단계에서 일기금은 주로 이재민을 돕는다. 설립 이래 쓰촨(四川) 지진을 비롯해 벌써 일곱 건의 재난 구호에 참여했다. 내가 이재민을 돕기로 한 이유는 몰디브의 체험 때문이다. 보통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소식을 듣고 화면으로 현장을 본 뒤 성금을 낸다.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전달될 때까진 며칠, 또는 몇 주가 걸린다는 뜻이다.

난 미리 준비하고 싶다. 곧바로 행동에 돌입할 수 있도록 식량과 식수를 구입할 돈을 얼마만큼 미리 배정해두고 싶다. 물질만 관계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난을 당한 사람에게는 자신을 도우러 올 사람이 있다는 믿음을 줄 필요가 있다. 경험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버티면서 반드시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품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도움의 손길이 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일기금 일에 전념하느라 1년 동안 영화 작업을 중단했다. 내년에는 다시 영화로 돌아갈 계획이다. 국제적 영화배우라는 사실이 우리 기금을 알리는 데 좋은 발판이기 때문이다. 돈을 모으는 것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켜 사랑의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리고자 한다. 내 이름을 이용해 좋은 일을 하고 세상에 되돌려주고 싶다. 지금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필자는 영화배우이자 자선재단 일기금(onefoundation.cn)의 창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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